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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훈칼럼]어디 '사외이사' 한자리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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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창생 이사회' 그들만의 리그
훗날대비 내 식구 심기 치열


[아시아경제 박명훈 주필]트위터,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가 세상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지만, 한국에서 역사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여전히 개인적 연고(緣故) 네트워크다. 지연, 혈연, 학연에 종교적 인연까지 얽혀 있는 한국적 네트워크의 견고함은 느슨한 인터넷 소셜 네트워크에 비할 바 아니다. 정치권에서 '고소영'이니, '영포라인'이니 하는 말이 끊임없이 오르내리는 연유도 그런 데 있다고 하겠다.
정치권만을 탓할 게 없다. 학연만 해도 그렇다. 학벌주의 타파를 그렇게 강조하는 언론을 보라. 서울대 합격생을 많이 낸 순서로 전국 고등학교를 줄 세워 대문짝 만하게 싣는 나라다. 동창회는 학창시절을 추억하며 끈끈한 인연을 확인하는 자리다. '국적은 바꿀 수 있지만 모교는 영원하다'는 구호를 외치고, 교가를 합창하면 동창회 분위기는 절정에 이른다.

동창회는 유쾌하다. 잘못이 없다. 문제는 학연이 동창회 울타리를 뛰어넘었을 때다. 누구나 알 만한 대기업의 이사회. 중요한 정책방향을 결정하는 자리. 5명의 사외이사가 참석했다. 2명은 오너 회장의 고교 동기동창, 2명은 오너의 2년 후배다. 회장이 "회사 방침은 이렇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하고 물었다면 사외이사들은 어떻게 답할까. 장담하건대 99.9%는 '예스'라 할 것이다.

넘겨 짚는 게 아니다. 통계가 증명한다. 우리나라에 사외이사 제도가 도입된 12년간 대기업에서 사외이사 반대로 인수합병, 신사업과 같은 주요 사안에 제동이 걸린 사례는 없다. 골프회원권 등기 부결, 이웃돕기 지원 반대 정도가 그나마 큰 반란에 속한다. 하물며 동창생으로 짜여진 이사회에서 누가 오너에 반기를 들겠는가.
동창회를 방불케 하는 이사회 풍경은 소설이 아니다. 실제 상황이다. 경제개혁연구소 조사를 보면 지난해 기준 67개 그룹 278개 상장사의 사외이사 854명 중 '회사와 이해관계에 있는 이사'의 비중이 32.2%(275명)에 달한다. 계열사, 소송대리인, 정부ㆍ채권단, 거래업체 등 직접적 관계가 있는 곳의 임직원은 144명, 지배주주와 학연으로 얽힌 사외이사만도 131명에 이른다. 사외이사 전원이 이해관계자인 대기업도 있다.

얼마 전 금융시장을 뒤흔든 신한금융 사태 와중에서 주인공인 '최고경영진 3인방' 못지않게 성토의 대상이 된 사람들이 있었다. 사외이사다. 회장의 장기 독주를 견제하지 못한 무력함, 사태 수습 과정에서 무기력, 후임 선출에서 보여준 파벌 대변인 역할. 급기야 회장 후보에 올랐던 김병주 서강대 명예교수가 "사외이사들이 올바른 자세를 보이라"고 직격탄을 날리기에 이르렀다. (이후 신한금융 이사회는 라응찬 전 회장의 스톡옵션 행사에 손을 들어줘 다시 '정신 못 차렸다'는 소리를 들었다.)

신한사태는 사외이사들이 제 역할을 찾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까. 비관적이다. 오너와 경영진에게 엉뚱한 학습 효과를 남겼다. 비상상황을 대비키 위해서라도 '내 식구'를 앉히자. 동창회면 어떻고 향우회면 어떤가, 확실한 내 편이라면….

사외이사 지망생들이 끊임없이 몰리는 현실도 불길한 징조다. 끈 떨어진 전직 관료나 정치권을 맴돌던 백수들 사이에 사외이사는 로비를 불사하고 차지해야 할 황금의자다. 본업을 팽개치고 겹치기로 뛰는 전문가급 사외이사도 적지 않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들과 경영진의 속셈이 짝짜꿍을 이룬다는 데 있다.

바야흐로 주총 시즌이다. 정권 후반기에 접어들었으니 사외이사도 이제 막차다. 대기업, 금융기관, 공기업의 뒤쪽에서 연줄 찾아 떠도는 분주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어디 괜찮은 사외이사 자리 하나 없소?"



박명훈 주필 pmh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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