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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연재 "아시안게임 메달, 마음에 둔 색깔 있어요"(인터뷰①)

최종수정 2010.07.19 09:56 기사입력 2010.07.1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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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범자 기자]월드컵 열기가 뜨겁던 지난 6월. '요정'은 차가운 매트 위에서 가쁜 숨을 토해냈다. 시니어 무대에 데뷔한 올해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것을 준비해야 했다. 세계를 뒤흔든 월드컵 열기에 눈 돌릴 새가 없었다. 그리고 지난 11일 귀국하자마자 출전한 회장배대회에서 가뿐히 6관왕 석권. 대회 후 만난 그는 피곤한 기색도 잠깐 뿐이었다. 리듬체조 얘기를 시작하자 그 작은 얼굴이 햇살처럼 빛났다.

'리듬체조 스타' 손연재(16ㆍ세종고)가 성인 무대에서 화려한 날갯짓을 폈다. 시니어 무대 데뷔 첫 해,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두근두근 가슴이 설레는 열여섯 체조 요정을 만났다.
새 작품에 만족..후프 완성도 높이는 게 숙제

손연재는 대회 후 미니홈피에 짧은 글을 올렸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당..나도 수고한 거 같아.하하하.'

미니홈피 얘기를 하자 그는 배시시 웃으며 "헤헤, 사실 이번엔 좀 힘들었거든요. 실수가 많아 좀 아쉽긴 해요. 그래도 새 작품을 끝까지 했다는 데 의미를 두려고 해요" 한다.
욕심많은 아가씨에게 6관왕이라는 타이틀은 자랑거리가 아니었다. 이번 러시아 전지훈련에서 새롭게 받은 줄과 후프 작품이 아직 몸에 익지 않아 몇차례 실수를 한 게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았다. 손연재는 줄(25.575점), 후프(24.150점), 볼(26.350점), 리본(25.325점) 등 출전한 4종목에서 모두 정상을 차지했고 팀 경기와 개인종합 우승까지 합쳐 고등부에 걸린 금메달 6개를 모두 가져갔다. 줄과 리본에서는 국가대표 선배 신수지(19ㆍ세종대)를 앞질러 경쟁구도에 불을 지피기도 했다.

"새 작품이 2주 전에야 완성됐고 한국에 오기 전날까지 수정에 수정을 거쳐서 저 스스로 너무 불안했어요. 그런 불안감이 경기 중에 나타나면서 실수로 이어졌는데, 후프 빼고 다른 종목은 만족스러워요. 빨리 후프를 보완해야죠."

[사진=IB스포츠]

귀여운 요정에서 카리스마 여왕으로

손연재는 시니어 데뷔해인 올해 3월 그리스 칼라마타에서 열린 국제체조연맹(FIG) 리듬체조 월드컵시리즈 개인종합에서 98.450점을 받았다. 참가 선수 27명 중 12위. 이어 열린 월드컵 시리즈 중 최고 권위의 콜베이 대회에서는 개인종합 11위를 차지했다. 한국 리듬체조 사상 가장 좋은 성적이다.

연재의 가장 큰 장점은 수구(줄, 후프 등 리듬체조 도구)를 다루는 기술과 표현력이다. 몸에 비해 길쭉길쭉한 팔다리도 표현력을 한층 풍부하게 만든다. 그에게 스스로 생각하는 경쟁무기를 물어봤더니 "특별히 잘 하는 것도 없고 그렇다고 딱히 못하는 것도 없다"며 부끄러운 듯 웃었다.

하지만 이번 콜베이대회에서 그의 연기를 본 많은 국제심판과 FIG 관계자들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마리아 페트로바(불가리아) FIG 기술위원은 "어린 나이지만 노련하고 기구 다루는 솜씨가 이미 세계적 수준에 올라왔다"고 놀라워 했고 일본인인 세키타 시호코 FIG 기술분과위원회 부위원장은 "무한한 가능성이 보인다. 외모는 어린 소녀같이 보이지만 경기할 땐 강렬한 카리스마가 느껴진다"고 평가했다.

이번 대회에서 의외로 많이 들었던 말이 "어린 나이인데도 카리스마가 있다"는 얘기였다. 스스로도 예상하지 못한 평가였다.

"키가 커져서 그런 느낌을 받으시나봐요. 3년 간 키가 10cm 넘게 컸거든요. 작년까지만 해도 체구가 왜소해서 선생님들이 걱정하셨거든요. 시니어답게 연기할 수 있을까 해서요. 그런데 중학교 1학년 때 150cm가 겨우 되던 키가 올해 164cm 넘게 자라니까 저보다 선생님들이 더 기뻐하고 흡족해 하세요. 이제야 매트가 꽉 차보인다면서요."(웃음)

[사진=IB스포츠]

첫 국제대회서 5위, 다시 시작한 체조인생

연재가 리듬체조를 시작한 건 다섯살 때였다. 집 근처에 있는 세종대 사회복지학과에서 문화강좌를 열었는데 엄마 윤현숙 씨의 눈에 들어왔다. 이제 다섯살 된 딸을 뭘 만들어 보겠다는 욕심은 애초에 없었다. 윤씨는 "모든 딸 가진 부모 마음처럼 그냥 하나 있는 딸 예쁘게 키우고 싶었어요. 그래서 리듬체조인 줄도 모르고 그저 무용하는 수업인가보다 해서 보냈죠" 한다. 그런데 연재의 재능이 금세 도드라졌다. 어린 나이인데도 근성 또한 보통이 아니었다.

하지만 또래보다 늘 월등한 것도 마냥 좋은 일이 아니었다. 목표의식도, 성취감도 자연스럽게 사라졌기 때문이다. 결국 리듬체조를 그만둘 뻔한 위기가 닥쳤다.

"1년에 국내 대회가 2개 정도 있어요. 출전하면 항상 1위였어요. 게다가 학교와 체육관을 오가는 생활도 지루했죠. 그래서 중학교 1학년 땐 그만두겠다고 선언하고 연습에 나가지 않았어요."

하지만 1주일을 채 못갔다. 집에만 있는 자신이 영 어색했다. 어머니 윤씨는 "집에 있으면 엄마가 공부시킬 게 뻔하니까 다시 운동하러 나간 것같다"며 웃었다. 그런데 곧 연재에게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그만뒀던 운동을 다시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슬로베니아에서 열린 주니어 월드컵에 나갔다. 생애 첫 국제대회였다. 부담없이, 기대없이 나간 대회에서 당당히 5위. 모두가 깜짝 놀랐다.

"이거구나 싶었어요. 갑자기 막 가슴이 설레면서 내가 할 일을 찾은 것같았어요. 국제대회 나가보니 나보다 잘하는 선수도 많고, 대회도 신기하고. 모든 게 너무 재미있는 거에요. 그때 처음으로 목표의식이 생긴 것같아요. 1등을 해보자는 근성이 발동한 거죠."

결국 연재는 지난해 슬로베니아 챌린저 대회에서 우승을 하고 화려하게 주니어 무대를 마쳤다.

[사진=IB스포츠]

올해 꿈은 사상 첫 아시안게임 메달

훅 불면 날아갈 것같은 가냘픈 체구지만 강단만큼은 결코 가냘프지 않다. '제2의 김연아' '리듬체조계의 김연아'라는 수식어와 화려한 조명을 받으면 부담감에 지레 주눅들 법 한데도 마냥 생글생글이다.

"아직 어려서인지 부담감은 잘 못느껴요, 헤헤. 하지만 나중에 좀 더 커서 부담감이란 걸 느끼면 어쩌나 걱정되기도 해요. 연아 언니도 밴쿠버 올림픽 전에 부담감 때문에 힘들었다고 하잖아요."

부담감은 커녕 지금 자신이 딛고 서 있는 이 상황이 감사하기만 하다. 나이답지 않게 어른스럽다.

"솔직히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너무 막막했어요. 사람들이 리듬체조에 관심도 없고, 국제대회에도 출전해 본 적이 없으니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막막한 거죠. 그런데 몇 년 사이 국제대회 출전, 전지훈련 경험을 많이 쌓으면서 확 달라졌어요. 시니어대회에서 기대 이상의 성적이 나와 신기하기도 하고요."

새로 받은 프로그램의 완성도를 높이는 게 당장 첫번째 목표다. 오는 28일부터 시작되는 국가대표 선발전과 8월 이탈리아 페사로에서 열리는 월드컵 시리즈, 9월 모스크바 세계선수권 등 굵직굵직한 대회가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11월 광저우 아시안게임. 한국 리듬체조 사상 첫 메달을 노린다.

"아시안게임에서 꼭 메달을 따고 싶어요. 메달 색깔이요? 음, 속으로 생각한 건 있지만..말 안할래요, 하하하."
메달을 목에 건 모습을 상상했나. 갑자기 까르르 웃음이 터진 요정을 따라 같이 웃었다.



조범자 기자 anju1015@
사진 최준용 기자 yjchoi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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