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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우의경제레터] '할매' 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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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도 모른다는 서울 ‘신당동 할매떡볶이’의 양념노하우. ‘현풍 할매곰탕’ ‘장충동 할매족발’ ‘원조할매보쌈’ 등은 ‘할매’를 전면에 내세워 마케팅에 성공한 사례입니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할매란 단어는 할배보다 훨씬 신뢰 받는 존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원조’를 자처하는 음식점은 거의 할머니들이 일군 유산이었습니다. 브랜드로서 ‘할매’가 상징하는 것은 구차한 설명이 필요 없으며, 그 속에는 정성과 솜씨, 순수와 전통 등을 총괄하는 믿음이 손맛으로 녹아 전승된 것입니다.
‘처갓집’이나 ‘외갓집’ ‘장모님’이란 브랜드도 실은 ‘할매’브랜드의 변형된 표현에 불과하죠. 욕을 먹어가면서라도 멀리까지 찾아갔던 전국의 수많은 ‘욕쟁이 할머니집’들이나, 옛날 고갯마루에서 뚝배기국밥 한 그릇으로 지친 나그네의 허기를 채워주던 주막집의 주모도 마찬가집니다.

그런데 세상살이가 팍팍해져서 일까요. 할머니들이 가난한 노인들을 상대로 중국산 싸구려 약초를 ‘만병통치약’으로 속여 수억원을 챙겼다지요. 더구나 효과적인 범행을 위해 여러 명이 오래 전부터 역할을 분담하여 조직적으로 동업을 했다는 이른바 ‘할매사기단’이란 씁쓸한 뉴스.

혼자서도 당당한 할머니들이 서너 명씩 조를 짜서 움직였으니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겁니다. 문제의 한약재인 보골지는 발기부전과 양기회복에 사용되는 약재로써, 그 할매들의 약점을 잡은 어느 비겁한 할배가 협박하여 매월 상납금을 받았다고도 합니다.
우리나라 성인의 평균수명이 79세. 평균 은퇴연령은 53세로, 무려 26년간 더 살아남아야만 합니다. 전체인구의 약 15%가 50대 이후세대에 속하고, 게다가 매년 40여만 명의 건강한 퇴직자들이 새로이 시니어군단으로 충원되고 있습니다. 그들 대다수가 생산보다는 소비인구로 편입되는 실정이니 자연히 경제는 활력이 떨어지게 되겠죠.

머잖아 베이비붐 세대들이 할매나 할배들에 본격적으로 합류되어서, 새로운 창업을 하는 대신에 생계형범죄를 모의하고 실행하는 날에는 그야말로 큰 사회문제가 아닐 수 없겠지요. 특히 ‘할매’란 친근하고 격의 없는 브랜드를 앞세워 사회적 약자들끼리 작당하여 서로를 기만하는 지경이 된다면, 그동안 인식된 할매들에 대한 좋은 이미지는 회복이 불능한 상태로 추락하고 말 것입니다.

격렬하게 대치하는 시위현장에서 달랑 지팡이 하나만 들고도 전투경찰들을 호통치고 물러서게 할 수 있었던 노인들. 그 밑바닥에는 원로 어르신으로서의 통념적인 권위를 아직은 우리가 인정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시니어들의 존재가 사회의 눈총을 받는 신세로 전락하기 전에 그들의 여가선용과 소일거리에 비중 있는 공적관심이 필요한 시점에 와 있습니다. 그러잖아도 드세다는 평판을 받는 한국 아줌마들이 본격적으로 할매조직으로 편입되는 날을 대비해서라도….

이제 손자 손녀들의 배를 문지르던 할매의 투박한 손이 약손이던 시대는 점점 멀어져가고, 함께 졸면서 읊조렸던 할머니들의 자장가도 먼 나라의 동화같은 얘기가 되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경찰이 발표한 ‘할매사기단’이란 의기양양한 명칭은 아무래도 신중하지 못한 조어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충무할매김밥’ 같은 할매의 브랜드가치를 생각해서 앞으로 ‘할매사기단’이란 용어는 가급적 자제함이 좋겠죠. 아무렴, 할매들이 할배들보다 범죄에 밝을 수는 없을 테니.

시사평론가 김대우(pdik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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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우 시사평론가 pdik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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