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의 대기' 브릭스가 글로벌 질서의 주도권을 틀어쥐고 있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말이 도전장이지 선전포고에 가깝다. 비유하자면 친선경기가 아니라 전쟁이라도 치르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서방국들을 상대하는 전략도 예전과는 180도 바뀌었다. 맨투맨식 각계격파가 아니라 넷이 똘똘 뭉쳐 팀플레이를 펼치겠다는 구상이다.

이 구상을 구체화하기 위해 4개국이 지난 16일 저녁 처음으로 러시아 도시 예카테린부르크에 모였다. 반나절도 안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4개국 정상들은 머리를 맞대고 새로운 국제질서 확립을 위한 아이디어 짜기에 골몰했다.
이렇게 해서 합의된 내용을 바탕으로 16개안의 성명서가 발표됐다. 대부분 정치ㆍ외교ㆍ경제에서 상호협력에 관련된 내용으로 이 가운데 가장 큰 관심사는 기축통화체제를 어떻게 바꿀 것이냐였다.

첫 만남이었던 탓일까. 달러를 위협하는 새로운 통화 구상에 대한 구체적인 '알맹이'는 없었다. 다만 현재의 특정 통화 중심에서 벗어나 다원화된 글로벌 통화체제를 갖춰야 한다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공동의 노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기대가 컸던 만큼 아쉬움도 컸다. 하지만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법. 브릭스 정상들은 회담을 정례화하고 내년에 브라질에서 다시 모이기로 다짐했다.

◆'기대반 우려반' 브릭스의 향방= 내년에는 더욱 일치단결하고 진일보한 모습을 보일 수 있을까. 벌써부터 기대와 우려가 반반씩 나오고 있다. 브릭스가 비슷한 면도 많지만 입장이 다른 면도 적지 않고 심지어 적대적인 면도 상존하기 때문에 현재 이상의 모습을 보여주기 힘들 것이라는 분석도 공감을 얻고 있다.

브릭스의 가장 큰 공통점이라면 방대한 국토와 인구, 풍부한 천연자원 등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하드웨어를 두루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아직 미발달된 분야가 많아 잠재력이 크고 기존 서구 중심의 글로벌 체제에 반기를 들고 있다는 점도 공통분모다.

하지만 다른 점도 적지 않다. 러시아는 유럽으로 분류되고 중국은 동아시아, 인도는 서남아, 브라질은 남미에 속해 지역 및 역사적으로 볼때 유대감을 찾기 어렵다. 민족과 인종도 달라 사고방식에서도 차이가 난다.

무엇보다 이들의 공감대 형성을 저해하는 요인은 경제규모가 서로 상이하다는 점이다.
이들 가운데 주축은 중국이며 러시아가 견제세력으로 부상했다. 브라질도 이들과 보조를 맞추는 형세지만 브라질과 인도는 아직 여러모로 밀린다.
'2강2약' 혹은 '2강1중1약'이나 '1강2중1약' 등 여러가지로 판세가 요약되는데 처한 입장이 다르다보니 네나라 입맛에 맞는 공통의 관심사가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원론에서는 논의가 되다가도 각론에 들어가면 입장 차이가 드러난다.
기축통화체제 변경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번 회담에서 러시아가 가장 강경하게 달러를 배격하는 발언을 여러차례 했다.
그동안 달러 공격의 선봉장이었던 중국은 미국과의 관계와 내부 득실 문제로 주판알을 튕기다 결국 뒷짐만 졌다.
루블화나 위안화에 비해 화폐 파워가 약한 브라질은 기축통화 변경을 주도할 입장이 아니다. 경제력이 가장 약한 인도는 아예 입을 닫았다.

브릭스가 대립하는 경우도 여러 측면에서 나타난다. 국경을 접하고 있는 러시아ㆍ중국과 중국ㆍ인도는 끊임없는 영토분쟁과 민족갈등이 이어지고 있고 기업들의 현지 진출시 이해관계가 충돌하기도 한다.
브라질은 지리적으로 떨어져있다보니 다른 3개국에 비해 상호교류가 적다는 점도 지적된다.
브릭스 정상회담에 앞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에서도 나타났지만 지역 맹주를 차지하기 위한 중국과 러시아간 주도권 쟁탈전도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브릭스 세력화, 장기과제로 삼아야= 하지만 브릭스 모임에 대한 전망을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원론에서 의견이 일치하는 것만도 현재로선 큰 소득이다. 가령 국제통화기금(IMF) 등에서 입지를 넓히겠다는 문제에 있어 세부적인 해법은 각자의 몫인 만큼 공감대만 형성해도 사태 해결이 한결 쉬워진다.

경제력 문제는 당장 해결될 일이 아닌 만큼 장기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현재 이들의 경제력이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5% 가량. 10년전에 비해 딱 두배로 성장했고 20년 뒤면 이들의 경제력이 G7을 앞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들이 차근차근 경제력을 키우고 현안을 풀어나가다보면 지금보다 훨씬 막강한 세력집단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서로 상이한 경제구조를 갖고 있다는 점도 실보다는 득이 더 많을 수 있다.
중국은 세계 제1위 제조업 국가이고 러시아와 브라질은 천연자원과 원자재 수출국이며 인도는 정보통신(IT)산업이 강하다. 서로 비교우위를 갖고 있는 산업 중심으로 무역거래를 하고 특화된 산업을 서로 교류하면 경쟁력은 배가될 수 있다.
자원대국인 러시아와 브라질, 신흥 철강 및 자동차 생산 강국으로 떠오르고 있는 중국과 인도는 서로 협력할 분야도 늘어날 공산이 크다.

또한 실제 협력 여부와 상관없이 제스처만 취해도 서방세계를 압박하는 효과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브릭스 모임이 글로벌 관심사가 되면서 논의될 이슈가 주요 뉴스로 떠오르며 세계 증시를 들었다내렸다한 점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김동환 베이징특파원 don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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