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석수 밀어 부치는 정치, 국민 용납 안해"
스웨덴 타협 핵심 국가조사보고서(SOU)
이민 문제로 우경화됐지만 '얀테의 법칙' 존중

쟁점법안을 가장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선진국 중 하나인 스웨덴은 충분한 협의를 거쳐 타협안을 이끌어내는 장치들이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국가조사보고서(SOU) 제도다.


스웨덴은 사회갈등의 야기하는 정책의 경우 정부가 여야 정치인을 포함해 전문가 집단, 국민 의견 등을 충분히 수렴해 조사와 숙의를 거쳐 법 개정안을 만든다. 이 과정을 보고서로 담은 것이 SOU다. 법안을 만드는 단계부터 정부와 의회·전문가 집단·국민이 머리를 맞대고 치열하게 토론한다. 평균 1년6개월 가량의 시간이 소요되지만, 제도 개혁과 사회 갈등을 예방하기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절차로 인식됐다. 이슈가 터질 때마다 떠밀리듯 입법에 나서는데다, 다수당의 입법 독주와 이로 인한 여야 대립이 일상화된 우리나라 정치권에선 낯선 모습이다.

사진=스웨덴 국회의사당 전경. 스웨덴은 법 개정안을 만들 때 여야 정치인을 포함해 전문가 집단, 국민 의견 등을 충분히 수렴해 조사와 숙의를 거쳐 만든다. 이 과정을 담은 게 국가조사보고서(SOU) 제도다. 법안 마련을 위한 숙의에 평균 1.6개월이 걸린다. 10년 걸리는 조사도 있다. 이슈에 떠밀려 도깨비방망이처럼 법안을 뚝딱 만들어내는 법이 없다. 이후에는 국민 의견 수렴 절차인 '레미스'라는 과정을 한번 더 거친다. 스웨덴은 이러한 절차를 '민주주의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사진=스웨덴 국회의사당 전경. 스웨덴은 법 개정안을 만들 때 여야 정치인을 포함해 전문가 집단, 국민 의견 등을 충분히 수렴해 조사와 숙의를 거쳐 만든다. 이 과정을 담은 게 국가조사보고서(SOU) 제도다. 법안 마련을 위한 숙의에 평균 1.6개월이 걸린다. 10년 걸리는 조사도 있다. 이슈에 떠밀려 도깨비방망이처럼 법안을 뚝딱 만들어내는 법이 없다. 이후에는 국민 의견 수렴 절차인 '레미스'라는 과정을 한번 더 거친다. 스웨덴은 이러한 절차를 '민주주의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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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민주주의 핵심은 'SOU'

스웨덴 역사학자인 라스 트레고르드 웁살라 대학교 객원교수는 지난달 스톡홀름 개인 집무실에서 진행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에서 "SOU는 스웨덴 민주주의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SOU에는 300개 안팎의 법안이 논의 중이다.


스웨덴은 국왕이 있는 입헌군주제의 의원내각제로, 의회는 임기 4년의 단원제다. 현재 총 8개 정당이 의회를 구성하고 있는 다당제인만큼 덴마크와 마찬가지로 '협치'는 정치의 기본이다. 이 때문에 사회적 갈등이 큰 이슈일수록 SOU에서 오랜시간 논의하면서 합의점을 찾는다.

트레고르드 교수는 "쟁점이 있는 법안은 특별위원회의 사전 조사를 거쳐 의회와 전문가 집단, 국민이 숙의를 통해 최종 법안으로 도출될 수 있도록 한다"면서 "1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는 것이 태반이며, 어떤 조사는 10년도 걸렸다"고 전했다. 트레고르드 교수는 2007년에 저술한 책 '북유럽의 국가 및 시민사회(State and Civil Society in Northern Europe:The Swedish Model Reconsidered)에서 SOU 제도와 관련해 형성 과정을 분석한 바 있다.


이같은 숙의를 통한 입법이 가능한 것은 높은 시민의식 덕분이다. 한국처럼 다수당이 소수당과 합의 없이 의석수로 밀어붙이는 정치는 스웨덴에선 국민이 용납하지 않는다. 트레고르드 교수는 "시간이 걸리지만, 제대로 하자는 것"이라며 "스웨덴은 충분한 조사, 의견 수렴 없이 빨리 진행하게 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세금 제도와 교육, 선거 제도와 같은 민감한 이슈는 더욱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SOU를 통해 이미 참여자들이 합의를 이끌어내기 때문에 의회에서 여야가 다툴 일이 없다. 국회 상임위원회는 이미 숙의를 거친 법안들만 통과시키기 때문이다.


트레고르드 교수는 "스웨덴에서는 여야 의원들이 고성을 내며 싸우는 일은 적어도 국회에서 벌어지지 않는다"며 "그러한 치열한 과정은 이미 SOU 특별위원회 단계에서 끝났으며, 법안이 상임위에 올랐다는 것 자체가 이미 여야가 합의를 마친, 통과가 기정사실로 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사진=라스 트레고르드가 두꺼운 SOU 보고서 책을 직접 보여주며 "쟁점이 있는 법안은 특별위원회의 사전 조사를 거쳐 의회와 전문가 집단, 국민이 숙의를 통해 최종 법안으로 도출될 수 있도록 한다"고 설명했다.

사진=라스 트레고르드가 두꺼운 SOU 보고서 책을 직접 보여주며 "쟁점이 있는 법안은 특별위원회의 사전 조사를 거쳐 의회와 전문가 집단, 국민이 숙의를 통해 최종 법안으로 도출될 수 있도록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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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트레고르드 교수가 SOU 절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트레고르드 교수가 SOU 절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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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의될 때까지 '비공개 끝장 토론'

우리나라는 국회의원의 법안 발의부터 상임위원회 상정 및 소위를 거쳐 전체회의, 법사위원회, 본회의까지 법안 처리 과정이 모두 공개된다. 새해 예산안을 비롯해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법안의 경우 '소소위'라는 법률적 근거가 없는 밀실 회의가 열리기도 하지만, 대부분 여야 입장이 그대로 노출된다. 이 때문에 입법의 타당성보다는 정쟁에 초점이 맞춰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스웨덴의 SOU는 비공개 회의다. 참여자들의 입장이 노출될 경우 자유로운 의견 개진이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트레고르드 교수는 "토론을 하다 보면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다 설득이 돼 입장을 바꿀 수 있게 되지 않느냐"며 "그런데 언론에 이미 특정인의 입장이 노출된 상태라면, 입장 변경을 하기 쉽지 않다"고 전했다. 이어 "비공개이기 때문에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고, 언론을 의식해 정치인들이 자극적인 행동(주목받기 위한 선동적인 언행 등)을 할 필요가 없다"고 덧붙였다.

[매직넘버 90%]⑧'참사뒤 벼락 입법' 스웨덴에선 안통해…"숙의기간 기본이 1년" 원본보기 아이콘


[매직넘버 90%]⑧'참사뒤 벼락 입법' 스웨덴에선 안통해…"숙의기간 기본이 1년" 원본보기 아이콘

비공개 회의가 끝나면 법안과 관련된 기관(경제 및 노동 등)과 시민단체 등에 공개하고 또 한 번 의견을 수렴한다. 이 절차가 바로 '레미스(Remiss)'다. 스웨덴어로 '회람'이라는 뜻의 레미스는 법 제정시 필수적으로 밟아야 하는 의견수렴 절차다. 여기서 유관기관, 시민단체 등의 목소리를 다시 한번 청취하고 수정할 부분을 반영해 국회로 정식 법안의 형태로 보내진다. 스웨덴의 법안은 이 과정을 모두 완료해야만 만들어진다.


트레고르드 교수는 "스웨덴 제도가 완전하다고 할 수 없다. 스웨덴도 정치인들이 인기를 얻기 위해 본인 의견을 칼럼 등 기고를 통해 끌어가는 게 있다"면서도 "하지만 SOU 제도, 레미스 과정은 단단한 기반을 통해 법률이 만들어지도록 하는 핵심이다. 이런 것이 민주주의"라고 강조했다.



박병석 국회의장이 27일 국회 본회의에 ‘검수완박’(검찰 수사·기소권 분리) 내용의 검찰청법 일부개정안을 상정하자 국민의힘 의원들 항의하고 있다./윤동주 기자 doso7@

박병석 국회의장이 27일 국회 본회의에 ‘검수완박’(검찰 수사·기소권 분리) 내용의 검찰청법 일부개정안을 상정하자 국민의힘 의원들 항의하고 있다./윤동주 기자 doso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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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전원 비례대표…스웨덴의 선거 제도

스웨덴은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다. 국회의원 349명이 모두 비례대표 의원이다. 선거구별 정당 득표율을 전국 단위 정당 득표율 기준으로 배분하는데, 이 차이를 조정하기 위한 보충 의석이 39석(11.17%)이다. 전국구 비례대표라고 보면 된다. 나머지 310석은 지역구 비례대표다. 310석은 29개의 선거구의 유권자 수에 기초해 배정되며, 지역별 인구 규모에 따라 선거구 당 적으면 2석, 많으면 30석 이상 규모인 중·대선거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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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구 비례대표 의석은 한 정당이 4% 이상 득표할 경우 배정받을 수 있고, 지역별 비례대표 의석은 해당 선거구에서 12% 이상 득표하면 의석을 배정받을 수 있다. 선거 주기는 4년이며, 1990년부터 2008년까지 치러진 의회 총선거 투표율 평균은 84%를 웃돌았다.


비례대표제를 활용하는 다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스웨덴 역시 한 정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기 쉽지 않다. 이념이 비슷한 여러 정당과 연립해 과반 의석을 이루고, 그 연립 정당 중에서 총리를 배출한다.


1914년 총선 이래 줄곧 제1당 지위를 지켜온 사민당도 총 의석수는 107석(30.6%)이다. 특히 사민당은 1932년에서 1976년까지 44년 장기집권하면서 오늘날 스웨덴의 복지국가 모델을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 난민 문제 때문에 우파 세력이 확대되면서 여당 지위를 뺏겼다.


현재 스웨덴의 집권여당은 스웨덴의 중도우파 성향의 온건당이다. 울프 크리스테르손 총리가 당수다. 의석수는 63석(18.0%)이다. 지난해 총선에서 반이민 정책을 내세운 극우 정당이 제2당(73석, 20.9%)으로 올라서면서 스웨덴 정치권이 우경화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과거보다 정당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얀테의 법칙'이 문화로 자리잡은 까닭에 이념이 달라도 서로 존중하는 모습은 갖춘다.


얀테의 법칙은 스웨덴 사람들의 행동 양식과 문화적 특징을 소개할 때 자주 등장하는데 ▲네가 엄청 뛰어난 사람이라 생각지 마라 ▲네가 무언가를 가르쳐 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남을 비웃지 마라 등 10가지 규칙을 담고 있다. 총리직을 후임에게 내려놓고, 상임위원장 자리도 후배 정치인에게 양보하는 등의 모습에서 이런 태도를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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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스톡홀름=오주연 기자 moon17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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