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미중 화폐전쟁'
지난 100년간 달러 위주로 세계 경제 구축
신흥국, 달러 의존도 높아 경제 불안정성 상존
미국과 대립하는 중국, 탈달러화에 집중
향후 경제제재 탈피 등 화폐전쟁 양상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은 러시아 은행들을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서 배제하는 제재를 단행했다. 세계 1만5000여 개 은행이 가입한 SWIFT에서의 퇴출은 곧 국가 간 지급 결제의 중단을 의미했다. 이와 함께 유럽 등 서방 국가들은 자국 내에 예치된 러시아의 외환보유액을 동결했다. 러시아가 보유한 달러·유로 자산이 사실상 볼모로 잡힌 상황이나 마찬가지였다.
2024년에는 서방 국가들이 동결된 러시아 자산에서 발생한 이자 수익을 우크라이나에 지원하기로 합의하면서, 러시아는 자국 자산이 전쟁 상대국을 지원하는 데 사용되는 굴욕까지 겪게 됐다. 이러한 금융 제재는 대만 문제를 둘러싸고 미국과 언제든 충돌할 가능성이 있는 중국이 달러 패권에 도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KB금융 경영연구소장을 지낸 글로벌 통화정책 전문가인 저자는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미국과 서방 동맹국의 제재에 대비해 달러 중심의 체제에 균열을 시도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경제 전쟁이 발발할 경우 중국의 3조2000억 달러 규모 외환보유액이 동결되고, 중국 기업과 개인의 무역 거래 및 결제도 중단될 수 있는 만큼, 중국은 자국 외환보유액을 보호할 방안을 오랫동안 고민해 왔다는 것이다. "중국은 대만 침공 시뮬레이션에 군사 작전뿐만 아니라 금융 시스템 방어, 금융제재에 대비한 훈련도 병행하고 있다."
저자는 위안화 국제화를 중국이 서방 제재에 대비하는 핵심 전략으로 꼽는다. 위안화 국제화 전략은 국가 간 통화스와프 체결, 해외 직거래시장 개설, 자체 결제망 구축으로 구성되며, 그 핵심은 달러 중심 국제 금융 질서를 흔드는 것이다. 기존 달러 체제 위에서 미국과 맞서 싸우는 것은 백전백패가 자명하기 때문이다.
국가 간 통화스와프는 중국이 가장 전략적으로 공들이는 수단이다. 신흥국의 경우 세계 금융시장이 흔들릴 때마다 유동성 부족과 환율 급변동으로 경제적 충격을 받기 쉬우며, 비기축통화국일수록 달러 체제의 영향에 더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실제로 2013년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오랫동안 유지해온 양적완화 정책을 중단할 것이란 신호를 보내자 신흥국 금융시장은 큰 충격에 빠졌다. 당시 벤 버냉키 의장이 "채권 매입 규모를 점진적으로 축소할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하자 금리는 급등하고, 신흥국 자금이 대거 빠져나가 혼란이 빚어졌다. 이른바 '테이퍼 텐트럼' 현상이었다.
저자는 미국의 통화스와프가 서방 선진국을 중심으로 이뤄진 반면, 중국은 신흥국을 주요 대상으로 삼아 글로벌 달러 의존도를 낮추고 있다고 설명한다. 2025년 기준으로 중국은 40개국 이상과 통화스와프 협정을 체결했으며, 한국도 2008년 말 중국과 처음 협정을 맺었다. 이후 2020년 10월 협정을 연장하면서 규모는 기존 64조원에서 70조원으로 확대됐다.
중국인민은행의 위안화 국제화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9월 기준 위안화 직거래시장은 전 세계 29개국 31개 도시에 개설돼 있다. 2003년 홍콩을 시작으로 2012년 대만·마카오, 2013년 싱가포르, 2014년 런던·프랑크푸르트·파리·서울, 2022년 브라질 상파울루, 카자흐스탄, 파키스탄, 라오스 등으로 네트워크를 확장 중이다. 2024년 1~9월 기준 서울 원/위안 직거래시장 거래 규모는 26억3000만 달러로, 최근 10년간 26% 성장했다. 이는 싱가포르, 영국, 홍콩에 이은 4위 수준이다.
저자는 "직거래시장이 개설되면 현지 통화와 위안화 간 환율이 달러를 경유하는 간접적인 재정환율 방식이 아닌,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 직접 결정되는 장점이 있다. 이는 외환 거래뿐 아니라 결제 서비스, 금융상품 개발, 투자 기회 확대 등의 효과를 가져온다. 또한 위안화 결제와 청산 절차를 편리하게 만든다"고 설명한다.
유니온페이는 비자카드와 마스터카드에 대항하는 중국의 글로벌 카드사로 주목받고 있다. 해외 결제 시 국내 카드를 사용하더라도 기존에는 비자나 마스터카드를 거쳐야 했지만, 유니온페이는 이러한 구조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가장 큰 경쟁력은 낮은 수수료다. 2025년 3월 기준 유니온페이의 해외 브랜드 수수료는 0.25%로, 비자와 마스터카드(약 1%)보다 저렴하다. 2024년 말 기준으로 중국 본토 외 84개국에서 2억5000만장이 발급됐으며, 현재 세계 183개국에서 사용이 가능하다.
저자는 이러한 중국의 위안화 전략이 단기적 충격보다는 장기적, 점진적 탈달러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전망한다. 미국이 반복적으로 전략적 실수를 범하고, 동맹국과의 관계가 악화되며, 국제사회의 신뢰를 잃고, 경제 보복이나 무역전쟁을 통해 스스로 소프트파워를 약화시킨다면 중국에 기회가 생길 수 있다는 분석이다. "중국은 늘 그래왔듯이 '시간은 우리 편'이라는 입장이다. 그들은 국제 질서의 혼란기가 반드시 자국에 불리하게 작용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관점을 견지하고 있다."
달러 패권에 균열을 가하려는 중국의 전략을 체계적이고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이 책은 현상을 이해하는 데 충분한 배경지식과 통찰력을 제공한다.
미중 화폐전쟁 | 조경엽 지음 | 미래의창 | 232쪽 | 1만9000원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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