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정부 실책에 늦어진 경기부양, 제대로 해야
"전 정부가 너무 재정만 바라보다가 침체에 대응하지 못했다."
기획재정부에서 거시경제와 국제금융을 담당했던 한 전직 고위 관료가 최근 기자와 만나 한 말이다. 올해 한국 경제가 고꾸라진 0%대 성장에 그칠 거라는 한국은행 전망이 나온 뒤였다. 주저앉은 내수를 진작할 과감한 재정 처방이 시급한데, 재정의 건전성에만 매몰된 윤석열 정부가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에 주저해 경기 대응 시기를 놓쳤다는 비판이었다.
나라곳간 열쇠를 넘겨받은 이재명 대통령은 이 같은 윤 정부 실책을 비판하며 확장재정으로의 복귀를 선언했다. 취임 일성으로 '불황과의 일전'을 외치며 추경 편성을 서두르고 있다. 나랏빚을 더 내더라도 재정을 마중물 삼아 침체에 빠진 경제를 반등시키겠다는 것이다. 그는 "나라가 공짜 돈 주면 왜 안 되느냐. 나라가 빚지면 안 된다는 건 무식한 소리"라며 강한 재정지출 의지를 드러냈고, "다른 나라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110%, 220%가 넘는데 우리는 50% 이하"라며 부채를 더 늘려도 된다는 주장도 펼쳤다.
정부가 위기에 재정을 풀어 자영업자·소상공인 숨통을 틔워 줘야 한다는 덴 이견이 없다. 규모감 있는 추경을 통해 내수 살리기에 마중물을 부어줘야 한다. 문제는 생산이 빠져 있어 승수효과가 낮은 지역화폐 확대 같은 선심성 돈풀기가 내수 진작의 근본 해법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이다. 내수 침체는 저출생·초고령화라는 사회구조적 요인과 겹쳐있다. 구조개혁을 병행하지 않고는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이 대통령도 이런 상황을 인식해 '낡은 경제 구조를 바꾸는 체질 개선과 제도개혁' 말을 앞세웠지만 정작 핵심 과제들은 지역화폐 국고지원 의무화, 아동수당 지급 대상 확대, 농어촌기본소득 도입 등 대규모 재정 사업들로 채웠다.
한국의 재정 상태는 이런 선심성 퍼주기를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에 놓여있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에 매년 100조원 안팎의 적자가 나고 있고, 0%대 잠재성장률 추락 경고가 끊이지 않는다. 만성적자국이 되면서 지난해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46.1%)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25.7%) 이후 2배 가까이 늘었다. 재정위기를 겪은 국가를 제외하고는 이렇게 빠른 속도로 부채가 증가한 곳을 찾아보기 힘들다. 나랏빚 확대에 신중해야 한다는 국내외 기관들의 경고가 쏟아지는 이유다.
이 대통령 말대로 '나랏빚 걱정은 무식한 소리'가 될 수 없다. 이 대통령이 언급한 채무비율 110%, 220%가 넘는 나라는 선진국 중에서도 미국·일본과 같은 (준)기축통화국이다. 기축통화국은 재정 투자 확대의 역사가 긴데다 전쟁을 거치면서 빚이 급격히 늘어난 국가들이다. 국채 수요가 많아 금리 상승 부담 없이 빚을 계속해서 늘릴 수 있고, 상대적으로 신용등급 강등 위험도 낮다. 채권 수요가 낮고 금리 여건이 불리한 한국과 같은 비기축통화국과는 채무의 적정선 자체가 다르다.
소득주도성장에 얽매인 문재인 정권은 세수 호황에도 재정이 크게 악화했고, 이를 극복한다며 3년 내내 건전재정만 외쳐댄 윤석열 정권은 경기 대응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비판을 받았다. 팬데믹 탓도 있지만 한쪽은 너무 쓰겠다고 하고, 다른 한쪽은 너무 안 쓰겠다고 했다. 경기 사이클이나 정책 환경에 맞춰 운용돼야 할 경제정책이 정치화, 이념화됐기 때문이다. 정치 이념에 기반한 포퓰리즘으로는 경제 반등도 지속 가능한 성장도 만들어 낼 수 없다. 표를 의식한 공약이거나 득보다 실이 많다는 판단이 선다면 향후 정책 수립 과정에서 수정하는 것이 이 대통령의 실용 코드와도 맞을 것이다.
조유진 세종중부취재본부 차장 tin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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