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지 국지적 상승…대선 앞두고 재건축 기대 반영
신규 택지 한계에 '지방 갈아타기' 수요까지 유입
상반기 강세 하반기 둔화…"관망·고점 부담 공존"
토지거래허가구역(토허구역) 재지정 이후 두 달간 강남3구(강남·서초·송파)와 용산구 거래량은 10분의 1로 급감했지만 재건축 단지 중심으로 신고가가 속출하고 있다. 규제가 수요를 막기보다는 진입장벽으로 작용하면서 오히려 상급지 희소성이 부각됐다는 분석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재건축 규제는 완화할 것"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된 가운데 시장의 시선은 대선 이후 세제와 공급 정책 방향으로 쏠리고 있다. 다만 18일 열린 대선 후보자 초청 1차 토론회에서는 부동산 시장 관련 공약은 나오지 않았다.
토허제 두 달 "거래 줄었다"
19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시스템에 따르면 서울시가 토허구역을 확대 재지정한 지난 3월24일부터 이달 18일까지 약 두 달 동안 서울 전체 아파트 매매 신고 건수는 7582건이었다. 이 중 강남3구와 용산구 거래는 357건으로, 전체의 4.7%에 불과했다. 토허제가 풀렸던 2월13일~3월23일(39일)에는 같은 지역에서 4000건이 거래됐다. 당시 서울 전체 거래량(1만3132건)의 30.5%를 차지하는 수준이다.
거래량이 이렇게 급감하면 집값도 약세를 보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서울 아파트값은 15주째 뛰었다. 특히 토허제로 묶인 강남권 재건축 단지에서는 신고가가 이어지고 있다. 압구정동 한양 1차(전용면적 78㎡·9층)는 지난달 12일 60억원에 팔렸다. 직전 최고가(면적·층 동일)보다 12억5000만원 오른 금액이다. 현대 8차 111㎡(2층)는 지난달 28일 56억5000만원, 163㎡(7층)는 지난달 26일 75억원에 계약됐다. 직전 거래보다 각각 13억5000만원, 10억5000만원 뛴 금액으로 신고가다. 신현대 11차(183㎡·6층)는 지난달 말 99억5000만원에 팔리면서 직전 거래보다 7억5000만원 올랐다.
"누가 돼도 규제는 푼다"
전문가들은 '주택 공급 부족'과 '대선주자들의 재건축 규제 완화 공약에 대한 기대감'을 집값 상승의 이유로 꼽는다.
윤지해 부동산R114 프롭테크리서치랩장은 "서울은 신규 택지 확보가 어려워 재건축 외엔 뾰족한 공급 수단이 없다"며 "더불어민주당에서도 용적률 상향 등 규제 완화를 언급하면서 이에 대한 기대가 가격에 반영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방에 여러 채를 가진 자산가들이 중과세를 피하기 위해 서울 고가 주택 한 채로 갈아타는 수요도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 원장은 "누가 당선되든 재건축 규제 완화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며 "투자 가치가 유망한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로 쏠림 현상이 이어지면서 초양극화가 심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신축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에 규제 완화 기대까지 겹쳤다"며 "재건축을 투자 상품으로 여기는 투자 심리도 최근 다시 살아나고 있다"고 밝혔다.
토허제가 상급지 선호와 가격 상승 기대를 키우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윤 랩장은 "투기 차단이 목적이었지만 오히려 '희소가치'를 부각하고 있다"며 "진입 장벽이 높아질수록 상급지로서 상징성은 더 커진다"고 말했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신고가 지역 대부분이 토허구역"이라며 "공급은 적고 대기 수요가 많아 매도자들도 호가를 쉽게 낮추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고 원장은 "규제로 인한 풍선효과로 동대문·강동 등 인근 지역까지 가격 상승세가 번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와 서울시가 강남 3구와 용산구 아파트 전체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한지 일주일째인 지난 3월 30일 서울 송파구 잠실 한 부동산 중개업소에 '매물접수' 안내가 붙어있다. 연합뉴스
원본보기 아이콘상고하중 전망…상반기 강세·하반기 둔화
전문가들은 당분간 서울 주요 지역 중심으로 국지적 상승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김은선 직방 빅데이터랩실 랩장은 "지금은 수요가 사라진 게 아니라 관망 중인 상태"라며 "오는 7월 3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시행 이후에는 자금 여력이 있는 수요자들의 선택적 매수가 부각되면서 일부 지역 중심으로 가격이 계속 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함 랩장은 "강남권, 목동 등 재건축 기대 단지를 중심으로 상승 흐름이 이어질 전망"이라며 "새 정부 부동산 정책이 구체화하기 전까지는 관망세와 고점 부담이 시장에 영향을 주면서 오름폭이 다소 둔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고 원장은 "부동산 가격이 2021년 10월에 고점을 찍은 뒤 전국적으로 하락세"라며 "부동산 경기는 5, 6년 오르면 4, 5년 내리는 조정기를 겪는데 하락 사이클 말기에 접어들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주식이 뉴욕증시와 연동되듯 부동산 역시 글로벌 동조화 흐름을 보인다"며 "일본 등 해외 주요국 부동산이 급락하지 않는 상황에서 한국만 계속 떨어지긴 어렵다"고 전망했다.
올해 하반기에는 상반기보다 상승세가 둔화할 수 있다는 진단도 나왔다. 박 위원은 "DSR 3단계가 오는 7월부터 시행되면 지금처럼 대출 규제 전에 사려는 '선소비 수요'는 꺾일 수 있다"며 "집값이 다른 자산에 비해 과도하게 오른 상태여서 단기 상승에 따른 피로감과 대체 투자자산 대비 메리트 약화로 '상고하중(상반기 강세 하반기 완만)' 양상으로 전환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윤 랩장은 "시장 전망의 핵심은 세제 개편에 달려 있다"고 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 시절 도입된 다주택 중과세를 현 정부 3년간 손대지 못한 사이 서울이 양극화 최대 수혜지가 됐다"며 "차기 정부가 세제 방향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시장 흐름이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
시장 외적 변수로는 통화량 변화와 공공기관 지방 이전이 거론된다. 박 위원은 "광의 통화량(M2) 증가세가 꺾이면 시장에 풀린 돈이 줄어 고가 주택부터 가격이 내려갈 수 있다"며 "이 경우 지역 간 가격 격차는 줄겠지만 대출에 의존하는 실수요자 매수 여건이 나빠지면 자금 여력이 있는 수요만 남게 되고, 이들은 미래 가치가 확실한 서울 등 인기 지역에 집중 투자하기에 양극화가 더 심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대선 공약으로 나온 공공기관 지방 이전도 수도권 주택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2012년 지방 이전 당시처럼 수요 유출이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최서윤 기자 sychoi@asiae.co.kr
꼭 봐야할 주요뉴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