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제한성 중대할 경우 관련매출액 20% 과징금
국내 빅4 시중은행의 담보인정비율(LTV) 담합 의혹 재심사에 대한 경쟁당국의 판단이 곧 나온다. 이들 은행이 담보대출 거래 조건을 공유하며 고객들에게 유리한 대출 조건이 설정되지 않도록 담합을 벌였고, 그 결과 대출 유치에 나서기 위한 시장 경쟁이 사라지고 소비자 후생이 저해됐다는 게 경쟁당국의 판단이다. 재심사 과정에서 법 위반 행위 관련 매출액이 늘어나면서 과징금 규모도 불어날 전망이다.
공정위, 혐의 사실에 대한 새로운 근거 제시
23일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가 지난 18일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각 은행에 전달한 심사보고서에는 주요 혐의 사실을 입증할 새로운 근거를 제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 관계자는 "지난 1차 심사보고서에서 담지 않은 완전히 새로운 주장이 제기되지는 않았지만, 담합 행위에 따른 경쟁제한성을 입증할 새로운 근거가 제시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재심사 과정에서 경쟁제한성 입증력을 높이기 위해 기업대출 전반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본 것으로 전해진다. 공정거래법상 담합 행위가 경쟁제한에 미치는 영향이 중대하고 그 근거가 확연하게 입증될 경우 관련 매출액의 최대 20%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구체적인 과징금 부과 액수가 담기진 않았지만 과징금 산정의 기준이 되는 관련 매출액을 지난 1차 심사보고서 때보다 상향했다. 공정위 과징금은 관련 매출액에 위반 행위의 중대성(공정거래법 40조)에 따른 부과 요율을 곱해 산출하는데, 관련 매출액이 상향되면서 과징금 액수는 더 늘어나게 된다. 업계에서는 조원 단위의 과징금 부과 가능성도 점치고 있다. 공정위는 이 심사보고서에 대한 은행들의 의견서를 회신받고, 회신된 의견서에 대한 검토가 끝나는 대로 전원회의를 열어 이르면 오는 6월 최종 제재 수위를 결정할 방침이다.
공정위는 이들 은행이 경쟁 회피를 위해 LTV 자료를 주고받으며 자신들의 LTV를 의도적으로 낮게 유지했다고 보고 있다. LTV란 은행들이 부동산 담보 대출을 해줄 때 대출 가능한 한도를 나타내는 비율이다. 은행들이 아파트, 토지, 공장 등 부동산에 대해 전국 시군구별로 LTV를 다르게 매기는데, 은행들이 이 LTV 정보를 주고받으며 인위적으로 비슷하게 조정했다는 것이다. 공정위 조사 결과 은행들이 수년간 주고받은 자료는 부동산의 종류별·토지별 LTV 자료 2만2500건이 넘는다.
관건은 이 같은 정보 교환이 경쟁제한으로 이어졌느냐다. LTV가 올라갈수록 빌릴 수 있는 돈도 늘어나기 때문에 대출자들은 높은 LTV를 선호하고, LTV는 은행 간 경쟁 요소가 된다. LTV가 낮으면 부동산 가격이 하락해도 은행들의 손실 위험이 적어지기 때문에, 낮은 LTV는 은행들에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LTV 수준이 대출량과 대출금리 등 대출 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경쟁상 민감한 정보'에 해당한다는 것이 공정위의 판단이다. LTV 수준 차이로 고객을 뺏고 빼앗기는 고객 확보 경쟁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의미다. 은행들의 LTV 하향 담합으로 은행들이 굳이 LTV를 높여서 경쟁할 필요가 없어졌고, 그로 인해 경쟁이 제한됐다는 게 공정위의 시각이다.
은행들, 경쟁상 민감정보 등 위법성 4대 요인 모두 부인
은행 측은 제기되는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경쟁상 민감정보의 교환, 정보 교환 합의의 존재, 실질적 경쟁제한성, 효율성 증대 효과 불성립 등 위법 요건 4가지를 모두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은행들은 '정보 교환은 있었지만 이는 담보물에 대한 리스크 관리 차원'이었고 '정보 공유에 따른 부당 이득도 없었다'는 논리로 공정위 조사에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 대형 로펌 관계자는 "고객이 맡기는 담보물 가치를 낮게 인정한다는 건 돈을 빌려주는 은행들의 거래상 지위를 더 강화하는 유인이기도 하다"며 "LTV 정보 공유가 리스크 관리 차원이라는 은행 측 논리는 이 또한 은행 이자를 부담하는 소비자들의 손해로 리스크를 보전해왔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고 짚었다. 다만 "대출량이 늘어나는 건 직관적으로 보이지만, 대출 금리는 그렇지 않아 입증에 다툼의 여지가 있는 만큼 공정위가 재심의 과정에서 얼마나 확연한 증거를 제시하느냐에 따라 (과징금 액수 등) 최종 결론이 달라질 수 있을 것"으로 관측했다.
세종=조유진 기자 tin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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