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미국 (브로드웨이)에 뗏목을 타고서라도 가겠다고 하셨다. 그 기개가 이어져 오늘날 우리 뮤지컬이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안호상 세종문화회관 사장은 4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창작 뮤지컬 '명성황후'의 초연 30주년을 기념하는 리셉션에서 명성황후를 만든 윤호진 연출가를 이같이 상찬했다. 윤호진 연출은 1991년 극단 에이콤을 설립(1993년 뮤지컬 전문 회사 에이콤 인터내셔널 설립)하고 꼬박 5년을 준비해 명성황후를 무대에 올린 주역이다.
한국 창작 뮤지컬 최초로 누적 관객 100만명 돌파, 1000회 공연, 뉴욕 브로드웨이 공연 등의 역사를 써온 뮤지컬 명성황후가 초연 30주년을 맞았다. 명성황후 3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이 지난달 21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개막했다. 신영숙, 김소현, 차지연, 강필석, 손준호, 김주택, 양준모, 박민성, 백형훈 등이 출연한 이번 공연은 오는 30일까지 이어진다.
명성황후는 1995년 12월30일 예술의전당에서 초연했다. 안호상 세종문화회관 사장이 예술의전당에서 공연부장을 맡은 첫 해였다. 안 사장은 "윤호진 연출이 공연을 무조건 1995년에 해야 한다고 저를 어찌나 달달 볶으셨는지… 결국 원래 계획했던 발레 '호두까기 인형' 공연 일정을 잘라서 12월30일 첫 공연을 했다"고 말했다.
윤호진 연출이 고집을 부린 이유는 1995년이 명성황후 시해 100주년이었기 때문이다. 애초 윤 연출은 시해 날짜까지 맞춰 명성황후를 10월8일 개막하려 했다. 윤호진 연출은 리셉션에서 개막을 늦출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돈 때문이었다"며 좌중에 웃음을 안겼다.
윤 연출은 애초 연극을 공부했다. 뮤지컬에 눈을 뜬 것은 연극을 배우러 영국 런던에 연수를 갔던 1982년이었다. 세계적인 뮤지컬 거장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 '캣츠'가 초연하던 해였다. 윤 연출은 런던에 도착한 뒤 첫 작품으로 뉴런던 시어터에서 캣츠를 관람했고 압도적인 무대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캣츠를 보면서 나도 저런 대중적인 매력을 지닌 창작 뮤지컬을 만들어 보자고 생각했다"고 했다.
윤 연출은 30주년을 기념해 명성황후의 제작부터 30주년 공연까지의 역사를 기록한 책 '명성황후(나무와 숲)'도 출간했다. 그는 책에서 캣츠를 자신의 인생을 뒤바꾼 작품이라고 썼다.
극단 에이콤에는 어렸을 때부터 동갑내기 친구였던 소설가 이문열도 참여시켰다. 이문열 작가는 명성황후의 원작인 희곡 '여우사냥'을 썼다. 리셉션에서 이문열 작가는 명성황후 이야기는 별로 쓰고 싶지 않은 소재였는데 몇 년간 이어진 윤호진 연출의 끈질긴 성화에 못 이겨 쓴 것이라고 실토해 좌중을 웃음을 안겼다.
명성황후는 1997년 8월15일 한국 뮤지컬 사상 처음으로 브로드웨이에서 공연했다. 열흘간 12회 공연했고 이듬해 7월31일 같은 무대에서 두 번째 뉴욕 공연을 했다. 하지만 두 번째 뉴욕 공연 당시에는 한국이 국가 부도를 맞아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받은 뒤였다. 환율이 치솟으면서 윤 연출은 20억원이 넘는 손해를 봤다. 윤 연출은 당시 죽음을 생각할만큼 힘들었다고 했다. 그는 "명성황후가 저에게 효녀 같은 작품이지만 말썽 한 번 안 피운 그런 효녀는 아니었다"고 했다.
30년 전 한국은 뮤지컬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창작 뮤지컬 명성황후는 무모한 도전처럼 보였지만 윤호진 연출의 뚝심에 숱한 고비를 넘기며 오늘날 한국 뮤지컬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작품으로 자리매김했다.
윤호진 연출은 "애초 30년을 공연할 것이라고 생각도 못 했지만 30주년도 그저 지나가는 점일 뿐"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다만 그는 "명성황후 30년의 발자취가 저와 같은 꿈을 꾸는 젊은이들에게 희망의 이정표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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