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세계 무역질서, 양자주의로 변화…'룰 세팅' 다시 해야"

19일 KBS 대담 프로 '일요진단'에 출연
"수출주도형 경제모델에 변화 필요"
글로벌 연대·투자 다각화·해외시민 유입 제안
AI 패권전쟁 전략엔 "선택과 집중 필요"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겸 SK그룹 회장은 트럼프 2기 정부 출범을 하루 앞둔 19일 오전 KBS 시사대담 프로그램 '일요진단'에 출연해 "세계 무역질서가 세계무역기구(WTO)를 중심으로 한 '다자주의'에서 일대일 '양자주의' 체제로 바뀌고 있다"며 우리 스스로 '룰 세팅'을 다시 하고 함께 연대해서 목소리를 낼 파트너국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겸 SK그룹 회장이 19일 KBS 시사대담 프로 '일요진단'에 출연해 의견을 말하고 있다. 사진=대한상공회의소 제공

최 회장은 "수십년간 활용했던 수출주도형 경제모델은 현재의 무역질서에서 과거처럼 작동하기 어렵다"며 이와 같이 강조했다. 그는 "세계 경제 질서가 바뀐다는 것은 마치 씨름에서 수영으로 경기의 종목과 룰이 바뀌는 것과 같다"며 "지금까지 씨름을 잘해왔던 선수라도 (씨름 방식으로) 수영에서 경쟁하면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피나는 노력으로 수영 선수로 탈바꿈하거나 최소한 물속에서 씨름을 하자고 목소리를 내 룰 세팅을 다시 해야 한다는 취지다.

그러면서 우리나라가 추구해야 할 최우선 과제로 '글로벌 경제연대'를 꼽았다. 최 회장은 "지금 (세계 경제) 룰(rule)을 결정하는 나라는 1위 미국, 2위 중국, 3위 EU 경제블록 정도"라며 "우리 혼자서는 국제질서의 룰을 바꿀 힘이 부족하다. 함께 연대할 파트너와 추구해야 할 방향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언뜻 생각나는 것은 일본 같은 나라다. 우리보다 경제규모는 크지만, 룰을 만들기보다 수용하는데 익숙하다는 것도 비슷하다"고 했다.

올해 경제전망을 묻는 질문에는 "소비, 고용, 수출 등 각종 경제지표가 좋지 않다"며 "미국 주도의 관세 인상과 이에 따른 인플레이션 압력, 인공지능(AI)의 빠른 기술적 변화 등의 불안요소가 삼각파도로 다가오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한 실제 우리나라의 대미(對美) 흑자액이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엔 약 600억불 정도였는데, 바이든 정부 때는 약 1500억불을 기록해, 이것이 통상압력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고도 내다봤다.

최 회장은 '해외투자'나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 등 기존 수출 방식을 대체할 모델도 제시했다. 그는 "우리는 경제 규모에 비해 해외에 전략적인 투자를 체계적으로 하고 있지 않다"며 "엔비디아가 크게 성장했을 때 엔비디아 안에 우리나라의 포션(투자비중)이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투자 다각화'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소프트 파워'와 관련해선 "통상압박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문화 상품들을 좀 더 체계적으로 만들어 판매할 필요가 있다"며 "만약 한식이 요리법, 먹는 방식, 식기류나 부엌의 구조, 요리하는 사람에 대한 훈련 등이 지금보다 더 체계적으로 세계화된다면 우리가 그 안에서 얻을 부가가치는 훨씬 커질 것"이라고 했다.

'해외 시민 유입을 통한 내수 확대'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저출산 고령화 문제를 이른 시일 안에 해소하기는 쉽지 않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최 회장은 "해외 시민을 유입해 단순 관광 정도가 아니라 장기 거주해 국내에서 일도 하고 세금도 내고 소비도 늘리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특히 "우리는 인구의 약 10%인 500여만명의 해외인력 유입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했다.

최 회장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사람들에게 보상해주자는 아이디어도 냈다. 그는 "많은 창의적인 사람들이 사회문제를 해결하도록 체계적인 방법론을 갖춰주면, 사회적 비용(소셜 코스트)도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고 주장했다.

AI 패권전쟁에 대한 전략도 제시했다. 최 회장은 "무엇보다 AI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 나갈지에 대한 컨센서스 즉 국가 차원의 전략이 중요하다"며 "AI의 범위가 워낙 넓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잘하겠다’가 아니라 그중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부문에 대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가령, AI를 활용해 제조 공정의 효율을 높이는 '제조 AI'와 '한국 차원의 거대언어모델(LLM)'은 꼭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빅테크 중에서도 챗 GPT로 표현되는 파운데이션 모델을 연구하고 한국이 그대로 만드는 것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지만, 대한민국의 나름대로 AI 산업 진입을 위한 특장점을 가진 분야를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이 글로벌 AI 기업에 종속된 AI 푸어 국가가 되어선 안 된다"며 "제조업 분야 AI에 대한 시급한 개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 회장은 마지막으로 "경제정책은 자원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배분할 것이냐가 핵심이고 외부 변화에 대응하려면 자원을 새롭게 배분해야 한다"면서 "우리 경제도 변화에 맞게 자원배분이 빠르게 진행돼야 하며 모든 것을 법으로 해결하는 것보다 모든 경제주체가 토의와 컨센서스로 속도감 있게 돌파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김형민 기자 khm193@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