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260명이 검찰 송치된 K제약 리베이트 사건의 비밀장부 엑셀 파일명은 ‘BM’이다. 수사 중인 서울경찰청에 따르면 BM은 ‘블랙 머니’의 암호다.
어느 제약회사든 리베이트를 제공할 때는 수사로 드러난 것만 봐도 ‘보물지도(대상자 명단)’ ‘점유율(지급비율)’ ‘싹콜(선지급)’ 같은 저마다의 암호를 쓴다. ‘리베이트’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거나 문서에 남기지 않는다. 하지만 사내에서 금기어를 안 쓴다고 리베이트 뿌리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특히 최고경영자는 모를 수가 없다. 영업은 당연하고 비자금 조성(재무), 장부 조작(회계), 제품 출고(판매), 영업사원 실적평가(인사)까지 리베이트는 전사 경영에 걸치기 때문이다. 최고경영자가 정말 모르고 있었다면 주주총회에서 업무태만으로 해임당해 마땅하다.
주는 제약회사와 받는 의사를 함께 처벌하는 쌍벌제가 14년 전 시행되자 제약업계가 긴장했다. 몇 년 뒤 A제약사 회장이 리베이트로 구속돼 만기출소 때까지 복역한 것을 목도한 제약업계 고위 인사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때부터 최고경영자 보호가 리베이트 사건이 터진 제약회사 법무팀의 필사적 임무가 됐다. 리베이트에 암호를 쓰는 큰 이유가 "실무자끼리 몰래 했고 위에선 몰랐다"며 선을 긋기 위해서다.
상부 보호를 위한 신종 수법이 영업대행업체(CSO)를 통한 우회 리베이트다. 위장 CSO를 설립하고 허위 용약계약을 체결해 비자금을 조성한 뒤 리베이트에 쓴 제약회사를 국세청이 지난 9월 적발했다. 제약회사는 "CSO 혼자 저지른 일"이라고 발뺌한다.
높이 올라가더라도 담당임원 선에서 그치는 리베이트 수사 결과가 많다. K제약 사건에서 경찰은 지금까지 돈 받은 의사와 거래병원 직원 1명씩을 구속했다. 이 회사 대표이사 두 사람은 리베이트를 알았다면 법적으로 책임져야 하고, 몰랐다면 주주들에게 책임져야 한다.
리베이트 사건은 인센티브 배분에 앙금이 오래 쌓인 내부자 제보로 늦게 터진다. 그래서 단속기관이 들이닥칠 때의 경영진과 리베이트를 제공하던 시기의 경영진이 다른 경우가 적잖다.
공정거래위원회는 B제약사의 2014~2018년 리베이트를 지난해 적발해 사상 최대 과징금 305억원을 매기고 법인과 현직 대표이사를 검찰 고발하면서, 리베이트를 개시한 2014년 대표이사 두 명은 고발 대상에서 뺐다. 후임자에게 대표직을 넘겨준 두 사람은 자신들 재임 중 진행된 리베이트에 대해 면책이다. 2011년부터 7년간 리베이트를 제공한 C제약사는 5년 뒤인 지난해에야 과징금이 부과됐다.
리베이트는 어설픈 실무자 처벌로 사라지지 않는다. 최고경영자를 일벌백계해야 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을 준용하면 된다. 중대재해 발생 기업은 이 법에 따라 대표이사가 처벌된다. 리베이트 제약회사는 제공 기간의 대표이사 전원을 처벌하도록 약사법에 못을 박자. 재임 중 불법에 나중에라도 반드시 책임지게 하면 아무리 달콤한 리베이트 유혹이 와도 거부하라고 최고경영자가 먼저 나서서 막을 것이다.
이동혁 바이오중기벤처부장 do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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