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반도체 산업에 약 90조원을 투입하며 칩 강국 등극에 사활을 걸고 있다. 정부 주도로 주요 대기업이 출자한 신생 파운드리 기업 '라피더스'를 설립하는가 하면, TSMC를 비롯한 해외 유수 기업 유치에도 힘을 쏟고 있다. 다만 이러한 반도체 육성 프로젝트의 미래에 대해선 엇갈린 전망이 나온다.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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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반도체 산업 활성화를 위해 배정한 예산은 약 4조엔(약 35조원)에 달한다. 민간 출연 규모와 일본 정부의 보조금을 합하면 총 10조엔(약 88조원) 규모의 지원금을 투입할 방침이다. 2030년까지 일본 국내 생산 칩 매출을 3배 이상 늘려 15조엔(약 133조원)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칩 강국 도약을 향한 일본의 야심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존재가 바로 신생 파운드리 벤처기업 라피더스다. 도요타, 키옥시아, 소니, NTT, 소프트뱅크, NEC, 덴소, 미쓰비시UFJ은행 등 일본 굴지의 대기업 8곳이 공동 출자한 이 회사는 일본 정부가 직접 설립을 주도했다. 지난해 9월 홋카이도에서 파운드리 착공식을 개최한 데 이어, 2027년부터 2㎚(나노미터·1㎚=10억 분의 1m) 첨단 반도체 칩을 양산한다는 계획이다. 공장 설립을 위해 약 1조엔 상당의 정부 지원금이 투입된 것으로 전해졌다.


통신은 "일본 칩 산업의 면모를 바꿀 프로젝트"라며 "해외 경쟁업체들과 비교해 반도체 생산부문에서 크게 뒤처진 일본에서 18개월 된 벤처그룹의 믿기 어려운 도전"이라고 보도했다. 시미즈 아츠오 라피더스 전무는 "국가로서 생존을 위해 일본은 기술을 확보한 글로벌 플레이어가 돼야한다"면서 "반도체로 이를 증명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일본은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투 트랙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첫째는 공장 건설비용의 절반가량을 보조금으로 지원하는 등 해외 유수 기업을 적극적으로 유치하는 것이다. 세계 1위 파운드리 업체 TSMC는 일본 남부 구마모토현에 70억달러(약 9조원) 규모의 공장을 건설 중이다. 이달 초에는 제2공장 건설 추진이 공표됐다. 이외에도 삼성전자, 마이크론, ASML이 일본 내 생산 또는 연구 시설에 투자하고 있다. 기록적인 엔화 약세로 해외 기업들의 생산기지 건설비용 부담이 완화된 것도 이들 기업의 투자에 주요하게 작용했다고 통신은 전했다. 두 번째 전략은 자국 기업 육성이다. 라피더스의 사례는 일본 반도체 기업 육성 프로젝트의 대표 격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일본이 대대적인 지원금을 투입하며 반도체 부활에 사활을 거는 이유는 '반도체 공급망 변화' 때문으로 풀이된다. 미래 먹거리로 평가받으며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에서 도태되면 안 된다는 위기감에서다.


니시카와 카즈미 일본 경제산업성 IT산업 국장은 "일본이 과거의 영광을 재연하는 데 목을 매는 이유는 미·중 패권 전쟁에서 생존하기 위함"이라며 "두 국가의 알력이 첨예하게 대립 중인 대만의 칩 공급이 중단되면 전 세계에 수조 달러의 손해가 발생하고 경제가 붕괴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시미즈 전무 역시 "라피더스의 성공에 일본의 지정학적, 경제적 안보가 달려있다"고 언급했다.


다만 일본의 반도체 야심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라피더스 프로젝트의 최종 결과엔 의문표가 따라붙는다. 통신은 "최종 결과가 출혈(투자 금액)에 비해 얼마나 성공적일지 알 수 없고 생산된 제품의 구매자가 있을지도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파운드리 사업은 TSMC와 삼성전자 등이 주도하고 있는데, 후발 주자인 일본이 따라잡기엔 기술력 격차가 크다는 얘기다. 현재 라피더스는 2나노 공정 반도체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현재 일본의 기술력 수준은 40나노급에 머물러 있다고 진단된다. 유노가미 다카시 전 히타치 엔지니어는 "라피더스의 목표는 하루아침에 오타니 쇼헤이가 되려는 꿈나무들의 바람과 같다"고 비판했다.


일본의 고질병인 노동력 부족과 고령화도 라피더스 성공 가도에 걸림돌로 꼽힌다. 일본 채용업체 리크루트 홀딩스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라피더스의 공장이 위치한 홋카이도 지역의 반도체 엔지니어 수요가 2017년 대비 5.4배 증가했다. 반면 공급은 이에 못미친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향후 10년간 일본 반도체 업계에 부족한 인력이 4만 명에 달할 것으로 집계했다. 이와 관련해 시미즈 전무는 "지난해 말 기준 300명 규모의 라피더스 임직원 평균 연령이 10년 뒤 60세를 넘게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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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긍정적인 측면은 일본이 미국과 반덤핑 소송을 벌이던 1980년대와는 달리 글로벌 기업들과 전방위적 협력을 맺고 있다는 점이다. 소프트뱅크가 투자한 반도체 설계 회사인 ARM이 인텔과 전략적 협력 관계를 맺었고, IBM, 구글은 미일 양자컴퓨터 공동 연구 프로젝트에 1억5000만달러를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IBM은 현재 뉴욕주 올버니에서 100여명의 베테랑 일본 엔지니어를 대상으로 최첨단 칩 전문 지식을 교육 중이기도 하다.


김진영 기자 camp@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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