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와 데이터 기반의 ‘과학 방역’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시들해져 버렸다. 사실 새 정부 출범 5개월이 지난 지금도 대통령이 장담했던 과학·정밀 방역의 실체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실내 마스크 의무 착용과 확진자의 격리를 빼고 나면 굳이 방역 정책이라고 부를 만한 것을 찾을 수 없다. 오히려 지난 정부의 실패한 방역 정책을 무분별하게 ‘표절’하는 질병관리청이 국민들을 각자도생의 위험에 내몰고 있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정부가 침이 마르도록 자랑하던 ‘K방역’은 참혹한 실패로 끝났다. 현재 우리나라의 누적 확진자는 2500만 명을 넘어섰다. 미국, 인도, 프랑스, 브라질, 독일에 이어 세계 6위다. 인구의 48.8%가 확진 판정을 받았다. 사망자가 2만8723명으로 세계 37위라는 사실이 그나마 위안이다.
질병청의 K방역 실패에 대한 진단은 어설프다. 전문가 의견을 무시한 편향된 정책과 통제 중심의 과도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K방역을 ‘정치 방역’으로 변질시켰다는 지적은 너무 표피적이다. 획일적인 통제가 합리적이지 못했고, 부작용이 지나치게 심각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갑자기 등장한 맹독성의 코로나19에 대해 충분히 합리적이고 적절한 방역 정책을 실시한 나라를 찾아보기 어려웠던 것도 사실이다.
오히려 정치 방역의 핵심은 따로 있었다. 빠르게 다가오는 대선에 다급해진 지난 정부가 민간 위원장까지 앞세워 밀어붙였던 ‘일상 회복’이 K방역의 성과를 무색하게 만들어버렸다. 청와대 방역담당관과 사회수석이 실질적인 방역 콘트롤타워라는 소문도 무성했다. 국무총리가 앞장서서 정은경 질병청장을 뒷전으로 밀어내버린 여파다.
결과는 참담했다. 유럽의 백신 패스를 흉내 낸 ‘방역 패스’를 대단한 아이디어로 포장해 국민들을 무장해제 시켜버렸다. 여름부터 번지기 시작하던 델타와 때마침 유입되기 시작한 오미크론이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3월 대선 무렵에는 하루 확진자가 40만 명을 넘어서고 말았다.
코로나19 상황은 여전히 불안하다. 지난 2월과 7월에 이어 최근 유럽의 확진자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지난 10일에는 49만 명을 넘어섰다. 유럽보다 한 달 늦은 3월과 8월에 확진자 폭증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우리도 걱정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과학·정밀 방역을 강조하고 있는 질병청이 국민적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행정 경험이 전무한 질병청장의 리더십이 의심받고 있다. 질병청 상황을 신문을 보고 파악하고 있다는 국회 답변은 황당하다. 실내 마스크 착용과 획일적인 격리 의무를 고집하는 이유를 설명해주지 못하고 있다. 항체 양성률이 98%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와도 맞지 않는 쇠고집이다. 백신 부작용을 경험한 국민들에 대한 합리적인 대책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언론에서 국무총리의 중대본과 보건복지부 장관의 중수본이 사라진 것은 다행이다. 그러나 정체불명의 ‘국가감염병 위기대응 자문위원회’와 껍데기만 급조한 ‘코로나19 특별대응단’은 명백한 실패작이다. 자신을 한국의 ‘파우치’로 착각한 위원장의 망언은 과학 방역과 거리가 먼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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