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라루스, 야권운동가 체포위해 외국 여객기 강제착륙시켜
당국, "기내 폭발물 신고에 비상착륙 시킨 것"
반정부 인사 프라타세비치 현장 체포
그리스 "국가의 납치행위"…EU "절대 용납할 수 없어"
[아시아경제 김수환 기자] 벨라루스가 야권 운동가 체포를 위해 전투기까지 동원하며 외국 국적의 여객기를 강제착륙시켰다. 이에 유럽 국가들이 "국가에 의한 납치행위"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어 파문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23일(현지시간) 외신에 따르면 이날 벨라루스 당국이 자국 영공을 비행하던 아일랜드 국적의 라이언에어 소속 항공기 기내에 폭발물이 설치됐다는 신고를 받아 여객기를 수도 민스크의 공항에 비상착륙시켰다고 밝혔다. 이 여객기는 그리스 아테네에서 출발해 리투아니아 빌뉴스로 향하던 중이었다.
벨라루스 반정부 인사인 라만 프라타세비치를 비롯해 170여명이 탑승하고 있던 해당 항공기는 리투아니아 영공에 진입하기 직전 항로를 변경해 수도 민스크로 향했다. 벨라루스 현지 매체에 따르면 당국은 이 여객기의 강제착륙을 위해 미그(MiG)-29 전투기까지 출격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민스크 공항에 착륙한 이 여객기는 7시간 넘게 발이 묶였으며 이 과정에서 당국은 기내에 탑승하고 있던 프라타세비치를 체포했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라이언에어와 벨라루스 보안당국 모두 해당 여객기에 폭발물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에 벨라루스 측이 프라타세비치 체포를 위해 항공기를 강제착륙시킨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프라타세비치는 벨라루스내 최대 반정부 매체인 넥스타(NEXTA) 텔레그램 채널의 전직 편집장이다. 지난해 발생한 대규모 반정부 시위 이후 정부는 야권 세력 탄압을 위해 수많은 언론사들을 강제 폐쇄했는데 넥스타가 사실상 유일한 야권 매체로 남아 가장 영향력 있는 야권 소통의 플랫폼으로 자리 잡은 바 있다.
지난해 벨라루스 당국은 당시 시위를 주동했다는 혐의로 프라타세비치를 '테러 활동 가담자' 목록에 올렸으며 넥스타도 극단주의 단체로 지정했다. 이에 프라타세비치는 벨라루스 정부의 탄압을 피해 리투아니아로 망명을 한 상태였다.
이 같은 벨라루스의 조치에 유럽 국가들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리스 외무부는 "국가에 의한 납치행위"라며 벨라루스를 비판했다. 유럽연합(EU)의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이날 "(벨라루스의 조치는)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사안"이라며 "국제 항공법을 위반하는 모든 행위는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경고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옌스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도 이날 트윗을 통해 "매우 심각한 사안"이라며 국제사회의 조사를 촉구했다.
프라타세비치가 거주하는 폴란드의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총리는 이번 사건을 "국가 테러리즘 행위"라고 규탄하며 오는 24일 열리는 EU 회원국 정상회의에서 벨라루스에 대한 즉각적인 제재에 대해 논의할 것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NYT는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이 자신의 정적을 탄압하기 위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라며 "야권 운동가에게 안전하다고 여겨졌던 인근 국가의 영공까지 루카셴코 대통령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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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유럽의 마지막 독재자로도 불리는 루카셴코 대통령은 지난해부터 발생한 반정부 시위 이후 야권 세력에 대한 탄압의 고삐를 죄고 있다. 지난해 8월 대선에서 30년 가까이 장기집권 중인 루카셴코 대통령이 80% 이상의 득표율로 압승한 것으로 나타나자 부정 선거 의혹이 나왔고 이에 항의하는 야권의 시위가 몇 개월 동안 이어졌다. 시위 발생 후 지금까지 3만2000명이 넘는 시민들이 체포되고 4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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