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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재호 교수의 외교 오딧세이] 하영선 명예교수 "中, 美 세계질서 주도력 대체 어려워"

최종수정 2021.06.17 16:00 기사입력 2021.05.0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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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영선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김현민 기자 kimhyun81@

하영선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김현민 기자 kimhyun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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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사랑의 세계정치학자' 하영선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



대담/황재호 한국외대 교수

황재호 한국외대 국제학부 교수는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글로벌전략협력연구원장을 맡고 있다. 런던정경대(LSE)에서 국제관계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영선 교수는 국제정치 이론과 역사를 반세기 동안 연구해 온 한국의 대표적인 국제정치학자이다. 현재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이며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이다. 그에게는 매 현안들에 대해 개별적 즉답 풀이식 반응보다는 큰 역사적 흐름에서 읽어내려는 긴 호흡이 느껴진다. 치열한 국제정치를 비관적, 비판적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의 최근 저서 제목인 '사랑의 세계정치' 처럼 밝고 따뜻하게, 건설적으로 해답을 찾으려는 진지한 학문적 접근이 돋보인다. 그런 그를 지난 4월 14일 오후 동아시아연구원 회의실에서 만났다.


-교수님께서는 오랫동안 세계질서 재건축론을 말씀해 오셨습니다. 현재 세계질서에서 재건축이 진행되고 있는 것인지, 진행 중이라면 전면적인 신축인지 부분적 개축인지, 또는 여전히 설계 단계에 불과한 것인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세계질서의 신축, 재건축 그리고 해체에 관한 국내 논의는 세력 전이론의 시각에서 패권국과 도전국의 갈등 위험성과 회피 가능성을 다뤄 보려는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러나 21세기 세계질서의 재건축은 한반도뿐만 아니라 인류의 운명이 걸려 있는 문명사적 문제이기 때문에 보다 깊이 있게 따져봐야 합니다. 16세기 이래 근대 세계질서 건축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100년 주기로 세계 규모의 전쟁에서 승리한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미국 등의 세계국가가 다섯 차례에 걸쳐 세계질서를 신축했습니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신흥국가가 등장하여 기성 질서의 정당성을 비판하면서, 세계질서는 재건축 국면을 겪게 되고, 결국 힘의 비집중화 단계를 거쳐 전쟁을 통해 해체국면을 맞이했습니다.

20세기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통해 영국 주도의 세계질서가 해체되고 미국은 다섯 번째 세계질서 신축을 주도했습니다.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는 21세기에 들어서서 소련의 뒤를 이어 신흥국가로 등장한 중국의 도전에 직면해서 재건축 국면을 겪고 있습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재건축의 첫 번째 특징은 21세기 상반기에는 미국이 중국을 군사 무대에서는 계속해서 우위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되므로 두 나라의 직접적인 군사 충돌이 일어날 위험성은 낮고, 중국 주변 지역에서 미중이 핵심 국가이익을 지키려는 과정에서 간접적 군사 긴장을 높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둘째, 미국과 중국은 군사 무대 이외에 경제, 기술, 규범 무대에서 기존 질서의 정당성을 둘러싸고 치열한 경쟁과 갈등을 벌이면서 보다 많은 입주국을 확보하려는 재건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셋째, 과거 세계질서의 장주기 변화를 보면, 주도 질서의 재건축에 만족하지 않은 도전국이 군사력을 계속 강화하여 결국 최종적으로 전쟁을 일으켜서, 기존 질서가 해체되고 새로 등장한 주도국이 신질서를 건축해 왔습니다.


그러나 21세기의 세계질서에서는 미국과 중국이 군사력의 비집중화 국면을 거쳐 본격적 전쟁을 치를 때에는 과거와는 달리 지구 질서가 회복 불가능하게 파괴될 위험성에 직면해 있습니다. 따라서 미중뿐만 아니라 무대의 모든 주인공은 21세기 세계질서가 전쟁으로 종말을 맞이하는 대신 협력과 공생의 길을 찾아야 하는 문명사적 난제를 풀어야 합니다.


하영선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김현민 기자 kimhyun81@

하영선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김현민 기자 kimhyun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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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중국에 대해 말씀해주셨는데 이 두 국가 이외 또 주목할 만한 국가가 있을까요?


▲시기를 어떻게 전망하는가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세계 경제 통계를 기반으로 전망해 보면 장기적으로 인도가 주목할 만한 국가입니다. 인도는 현대 국가 건설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21세기 중반에 들어서면, 인도는 세계 최대의 인구 보유국으로 미국, 중국과 함께 세계 3대 국민 총생산국 중의 하나가 될 거예요.


-트럼프 대통령 4년 동안 미국은 고립주의를 심화시켰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세계질서에서 미국의 지도력을 회복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트럼프와 바이든 시기가 세계사 또는 미국외교사에서 어떤 평가를 받을까요?


▲1945년 이후 세계질서를 주도해 온 미국은 1970년대 이후 국력의 상대적 쇠퇴를 겪으면서 미국의 주도적 역할을 유지하기 위해서 다양한 노력을 계속해 왔습니다. 21세기에 들어서서, 중국의 빠른 부상과 함께,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우선주의와 힘을 통한 평화라는 2대 원칙에 따른 외교정책을 추진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단기적으로 국내적 호응을 얻을 수 있으나 미국 지도력의 장 주기적 변화의 시각에서 보면 두 가지 면에서 대단히 부정적 효과를 가져 올 수밖에 없습니다.


첫째로, 미국의 상대적 쇠퇴를 막으려면 미국의 독자적 노력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다른 국가들과의 공동 지도력이 불가피한 데, 미국 우선주의는 오히려 부정적 효과를 가져옵니다. 둘째, 21세기의 국력은 군사, 경제력뿐만 아니라, 기술력, 생태균형력, 문화력, 공치(共治)력을 포함하는 복합력을 필요로 하고 있는데, 힘을 통한 평화는 무대를 지나치게 좁게 활용하는 한계에 직면합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외교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동맹과 함께 미국 지도력을 회복하고, 미국식 민주주의의 규범력을 상대적으로 강조하는 새로운 외교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이 세계질서의 지도력을 제대로 발휘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과거 지향적으로 회복할 것이 아니라 보다 미래지향적으로 혁신해야 합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대중 정책을 단순히 인도-태평양 차원의 봉쇄적 시각에서 머무르지 않고 동시에 공동 진화하는 길을 과감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어요. 그리고 민주주의라는 규범력도 미국식 민주주의를 넘어서서 지구적 민주주의라는 정당성을 확보해서 지구적 규범력을 확대해 갈 필요가 있어요.


하영선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김현민 기자 kimhyun81@

하영선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김현민 기자 kimhyun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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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인도-태평양이라는 용어가 나왔을 때, 미국의 수세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미국이 가지고 있던 아시아-태평양 개념으로는 더 이상 중국을 억지하기 어렵다는 점을 반증하기 때문입니다. 교수님이 생각하시기에 중국이 제시하는 신형 국제관계는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질서 체제와 어긋나는 측면이 강한가요. 아니면 보완되는 측면이 강할까요?


▲중국 시진핑 정부의 신형국제관계론은 신형대국관계와 신형주변국 관계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먼저 신형대국관계의 불충돌과 불대항, 상호존중, 그리고 협력 공동번영이라는 3원칙은 현재 미국과의 전면적인 군사 대결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어요. 중국이 최근 2021년 국방 예산으로 공식 발표한 2,100억 달러는 대체로 2,500-3,000억 달러로 추산되기 때문에 미국의 금년도 국방 예산 7,500억 달러의 3분의 1 수준입니다. 따라서 중국은 현 단계에서 미국과 군사 무대에서 정면 대결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은 신형 주변국 관계에서는 주권, 안전, 발전의 3대 핵심 이익을 반드시 지키겠다는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타이완, 신장, 티베트 같은 지역의 문제는 국내 주권 문제라고 특별히 강조하고 있어요.


현재 미중관계를 축약적으로 보여 준 최근 미중 알래스카 회담을 조심스럽게 복기할 필요가 있어요. 첫날의 격돌하는 모습을 보여 준 공개 회의에 비해서 실무적으로 진행된 둘째 날 비공개회의에서 우선 주목할 것은 중국이 미국에게 신형대국관계와 신형주변국 관계의 두 원칙을 동시에 강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중국은 미국과 군사적으로 정면충돌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하나의 중국’ 같은 핵심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는 일정한 군사적 긴장도 각오하고 있다는 신호를 바이든 정부에게 강하게 전달하고 싶었던 것이죠.


다음으로 주목해야 할 것은 경제 무대와 기술 무대에서 보여주고 있는 미중 간의 갈등과 협력관계입니다. 세계 경제질서의 양대 강국인 미국과 경제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만약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처럼 관세를 25% 부과하게 되면 미국 역시도 상응하는 경제적 손실을 입게 됩니다. 또한 최근 무역 전쟁에 이어 미국이 상대적 우위에 있는 첨단 디지털 기술의 공급사슬 분리를 추진하면서 중국은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계의 첨단 기술이 빠르게 그물망 되어 가고 있는 속에서 지구적 공급 사슬을 완전히 분리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을 거예요. 세 번째로, 미국과 중국은 코로나바이러스 백신, 기후변화, 코로나 이후 세계경제회복 같은 지구적 문제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협력할 것에 합의했어요.


따라서 현재의 미중관계는 피상적으로 관찰하는 것보다는 복잡해서, 경쟁, 갈등, 협력 그리고 공생의 복합적 성격을 보여주고 있어요. 따라서 미국과 중국이 향후 어떻게 경쟁과 갈등 요소를 완화하고 협력과 공생 요소를 키워나갈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황재호 한국외대 교수./김현민 기자 kimhyun81@

황재호 한국외대 교수./김현민 기자 kimhyun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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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한국은 재건축 초기부터 공동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아니면 상황을 지켜보고 마지막 순간에 참여하는 것이 좋을까요?


▲재건축 참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제대로 된 예비 타당성 검토를 거쳐서 최대한 신속하게 설계 단계에 참여해서 공간 확보를 해야만 해요. 우리는 두 가지 면에서 모두 뒤늦어지고 있습니다. 우선 21세기에 맞는 예비 타당성 검사를 위해서는 냉전과 탈냉전 수준의 미국과 중국의 이분법을 빨리 넘어서야 해요. 미국, 중국 또는 복합세력이 주도하는 설계가 우리 삶에 미치는 손익계산을 장기적이고 복합적으로 하는 과정에서 특히 조심해야 할 두 가지가 있어요.


첫째로, 장기적 시각에서 보면 미국은 국력의 상대적 쇠퇴를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21세기 세계질서 주도력을 여전히 유지해 나갈 것으로 전망되고, 중국은 빠른 국력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질서 주도력을 대체할 것으로 전망하기는 어려워요. 따라서 21세기 한반도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서는 여전히 한미일의 네트워크를 필수적으로 심화시켜나가되, 동시에 한중의 네트워크를 품어 나가야죠. 중국 때문에 미국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거나, 미중사이에서 우왕좌왕하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 아니죠. 미국과 일본을 활용하면서, 동시에 중국의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고, 더 나아가서 중국의 긍정적 영향을 키워나가려는 노력은 어렵지만 불가능한 길은 아녜요.


둘째로, 21세기 국력은 과거처럼 단순히 군사력과 경제력만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기술력, 생태균형력, 규범력, 공치력과 같은 신흥력을 동시에 필요로 하고 있으므로, 예비 타당성 검토는 훨씬 복합적으로 해야 해요. 이런 21세기 예비 타당성을 기반으로 하루라도 빨리 재건축의 설계 단계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21세기 아태 질서 건설의 공동 주역이 돼야 해요.


하영선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김현민 기자 kimhyun81@

하영선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김현민 기자 kimhyun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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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정치의 체제 중 단극체제, 양극체제, 다극체제 중 한국에게 가장 유리한 체제는 무엇일까요?


▲세계질서의 이상과 현실을 생각한다면, 한반도를 포함한 모든 주인공이 보람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단극, 양극, 다극을 넘어 선 복합체제겠죠. 내가 얼마 전에 출간한 '사랑의 세계정치'에서 우리가 꿈꾸는 세계정치는 사랑의 세계정치의 국제정치적 표현인 복합의 세계정치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강조했어요. 미움의 현실정치에서는 내가 살기 위해서는 남이 죽어야 하는 것이라면, 사랑의 미래 세계정치에서는 나도 살고 남도 살아야 합니다. 이런 사랑의 세계정치가 꿈의 세계정치가 되기 위해서는 질서의 주인공, 무대, 연기가 단순화에서 복합화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이러한 복합성을 갖추지 못한다면 다가오는 세계질서는 궁극적으로 비극을 맞이할 것입니다.


-이번 정부의 대외정책, 대북정책은 세계사나 한국사 차원에서 어떤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요?


▲현재 정부는 물론이고, 과거 정부들 역시 21세기 세계질서의 변환을 바라보는 안목에 대해서는 합격점을 주기 어렵습니다. 이번 정부는 미중관계의 21세기적 변환을 제대로 전망하고 있지 못하고, 국제정치 문제를 지나치게 남북문제 해결 중심으로 풀어나가려 해서, 세계질서의 복합적 변화를 적극적으로 읽어내고 미리 앞서가려고 하는 노력이 부족합니다.


이러한 낮은 평가에 대한 근본적인 책임은 한국 현대사 자체에서 기인합니다. 한국이 민주주의 체제를 확립하기 위해 1970-80년대 권위주의 정권과 투쟁했던 세대들이 현재 한국 정치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21세기 세계질서를 20세기 안목에서 바라보는 한계, 남북문제를 소박한 탈냉전 시각에서 풀어보려는 노력, 국내 정치권력의 양극화를 이분법적으로 풀어보려는 시도로는 21세기 한반도 생존번영 전략을 현실적으로 마련하기는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1980년대에 한국 현 대사의 축약적 변화를 겪어야 했던 세대가 21세기를 맞이해서 다시 태어나지 못한 채 21세기 문제를 20세기적으로 풀어보려는 데서 오는 불가피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거죠.


특히 오늘을 미래사의 시각에서 보면, 미국과 중국을 선두로 해서 벌어지고 있는 천하통일, 그리고 한반도의 남북통일에 대한 미래지향적 예비 타당성 검토가 이미 충분히 이루어졌어야 합니다만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천하통일과 관련해서 미국이 주도하는 쿼드 또는 쿼드 플러스의 한국 참여 문제는 해답을 제출해야 할 때가 이미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아직 풀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북한의 비핵화를 포함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문제는 아직 문제가 제대로 준비되지 않았는데도 미리 풀어보려는 조급함을 보이고 있습니다. 한반도 문제를 제대로 풀 수 있는 문제로 만들려면 진화생물학이 제시하고 있는 답안처럼, 먼저 북한의 자생적 노력과 한국을 포함한 주변의 공동진화적 노력이 지속해서 진행되어 공생의 가능성이 열리면서 비로서 가능해요.


-북한의 경우 어떤 평가를 받을까요?


▲100년 후에 2021년 상황을 평가한다면 한국 정치세력들의 세계질서 파악 능력은 낮은 점수를 받을 수밖에 없지만, 북한 정치세력은 더 심각하게 낮은 점수를 받을 거예요. 21세기 북한이 세계질서를 바라보는 안목의 기본 지평은 1960년대 3대 혁명역량 강화라는 틀을 여전히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북한은 국제역량의 강화를 반외세, 자주적인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어요. 그러나 말씀드렸듯이 21세기는 반외세 자주만으로는 생존할 수 없습니다. 21세기는 모두가 주인인 공주(共主)의 시내로 들어서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분법적 시각을 벗어난 복합적 논리와 안목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북한의 핵 무력 강화는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생존을 담보하는 것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생존을 위협하게 될 거예요. 왜냐하면 현실적으로 비핵화 없는 본격적 고도 경제성장은 불가능하니까요. 통일문제도 우리 민족의 근대적인 과제로서 반드시 풀어야 하나, 단순한 근대적 통일을 맹목적으로 추진할 것이 아니라, 국내외적 여건의 진화에 따라 통일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다가올 때, 이를 21세기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는 준비가 필요합니다.


하영선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김현민 기자 kimhyun81@

하영선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김현민 기자 kimhyun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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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교수님께서 책과 인터뷰에서 말씀하신 링커(linker) 국가라는 표현에 크게 공감되었습니다. 말씀에 따르면 링커 국가는 대국과 소국을 연결하는 국가를 의미하는데 역사적으로 어떤 국가가 이러한 모습에 가장 근접했을까요?


▲현대사의 경우에는 유럽의 냉전 질서 해체과정에서 보여 준 핀란드의 역할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1975년 유럽에서 전후 냉전 질서를 넘어서기 위해 헬싱키 프로세스(Helsinki Process)가 합의되고, 유럽안보협력회의(CSCE)가 발족하고, 유럽안보협력기구(OSCE)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핀란드는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오늘날 헬싱키 프로세스는 유럽의 냉전 종식과 신뢰 구축 노력의 하나로 높게 평가받고 있습니다. 핀란드는 동유럽과 서유럽을 대표하는 국가도 아니고, 북유럽의 작은 나라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역사적 협약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물론 헬싱키 프로세스의 최종적인 성공에는 미국과 소련의 동의가 필요했으나 전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것이 핀란드이며, 이 사례가 바로 중견국 혹은 소국이 국제역량을 발휘한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동아시아연구원에서 젊은 세대들을 위한 사랑방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계십니다. 지난 사십 년간 청년들을 가르쳐 오신 입장에서 특히 요즘 20, 30대 청년들이 보는 국제정치는 어떤가요? 또 어떤 말씀을 해주십니까?


▲한국 근현대사를 숨이 가쁘게 달려 온 기성세대들은 갈등, 전쟁과 같은 이분법적 사고에 익숙한 것에 비해서 21세기 미래사를 담당할 젊은 세대들은 경쟁, 협력, 공생 같은 복합적 사고를 비교적 저항감 없이 받아들입니다. 구한말 박규수의 사랑방이 19세기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서양 근대 국제질서를 차가운 눈으로 제대로 읽고 대비책을 마련하라고 가르쳤던 것처럼, 동아시아연구원의 사랑방도 오늘의 젊은이들에게 21세기 복합세계정치의 미래를 제대로 이해하고 생존번영 전략을 구상할 수 있도록 함께 공부하고 해외 답사를 합니다. 이 과정에서 특별히 강조하는 것은 21세기의 한반도와 세계를 위해서는 21세기에 걸맞은 복합 인으로서 하루빨리 성장해서 시대에 뒤떨어진 20세기의 단순인들 대신 새로운 질서를 설계하고 건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황재호 한국외대 교수./김현민 기자 kimhyun81@

황재호 한국외대 교수./김현민 기자 kimhyun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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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을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는 단어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호(號)가 만청(晩靑)이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만청은 늙은 젊은이라는 뜻으로 한문 선생님이 환갑 넘어서도 세월 가는지 모르고, 뒤를 돌아보고 정리하기보다 앞을 내다보고 꿈꾸기만 좋아하는 나에게 지어 준 호예요. 몇 년 전에 고희(高稀)를 맞이했을 때, 함께 공부모임을 하는 후학들이 너무 앞만 보고 달리지 말고, 지난 반세기 동안 걸어왔던 국제정치학 공부의 여정을 되돌아보고 정리해서 같은 길을 걷는 후배들에게 도움을 줬으면 좋겠다는 강권으로 한 학기 동안 강의를 했습니다. 당시 강의 제목이 ‘사랑의 세계정치’였어요. 이 화두가 나의 머리와 가슴에 처음 찾아온 것은 1960년대 후반 대학 시절에 겪었던 적응과 반항의 두 갈래 길에서 헤매다 만난 제3의 길에서였어요. 그 이후 나와 남을 이분법으로 나누는 미움의 국제정치에서 나와 남이 함께 사는 사랑의 세계정치를 찾아 나섰던 것이죠.


이러한 여정의 중간 결산으로 탈냉전 이후 단순 국제정치학 대신 복합 세계정치학을 강조해 왔어요. 대학에서 은퇴할 때 마지막 대학원 세미나 강의 제목도 ‘사랑과 전쟁’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내 꿈은 한반도와 세계를 미움의 국제정치에서 구원하는 길을 찾는 사랑의 세계정치학자예요.


정리/이지은기자

녹취/신의찬 글로벌전략협력연구원 연구원


이지은 기자 leez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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