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윤 대한변호사협회 수석대변인

허윤 대한변호사협회 수석대변인

AD
원본보기 아이콘



2014년 11월 28일 ‘靑비서실장 교체설 등 VIP 측근(정윤회) 동향’이라는 ‘정윤회 문건’이 공개됐다. 청와대는 문건내용을 모두 부인했고 사건의 성격을 국정농단 의혹에 대한 확인이 아니라 국가기록물 유출이자 국기문란 행위로 규정했다. 안봉근 등은 기자들을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하기도 했다.검찰은 명예훼손 부분은 형사부, 문건 유출은 특수부에 배당해 수사를 투트랙으로 진행했다. 그러나 문서의 진실성을 확인해야 정윤회, 안봉근, 이재만 등이 국정을 농단했는지가 밝혀질 것이나, 검찰은 누가 문건을 가져갔고 누가 그것을 언론에 전달했는지에만 초점이 맞춰졌다. 필자는 기자들의 변호인으로 수차례 검찰청을 방문해 조사를 받았는데, 가장 많이 들은 것도 "문건은 어디서 입수했나"라는 질문이었다. 이 과정에서 문건 유포자로 지목돼 수사를 받던 한 경위는 목숨을 끊었고 감찰보고서를 작성한 박관천 행정관과 조응천 비서관은 공무상 비밀 누설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그렇지만, 검찰의 결과는 모두가 예상한 그대로였다. 당시 보도를 한 기자들은 수사가 시작된 지 2년 6개월만인 2017년 6월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조응천 비서관의 경우 7년이 지난 2021년 1월이 돼서야 문건유출 혐의에 대해 무죄판결을 받았다.


정윤회 국정농단 문건사건이 명예훼손과 국가기록물 유출 등 2개만 있는 것이 아니다. 문건에 대한 진위공방이 거세지는 와중에 안봉근 비서관은 청와대 파견경찰 인사에 개입한 혐의로, 정호성, 이재만 비서관 등은 공무상 비밀누설죄 혐의로, 정윤회는 특가법상 알선수재 혐의로 고발됐다. 청와대 실세 비서관들이 공무원 관련 범죄를 저질렀으니 수사해 처벌해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안봉근, 정호성, 정윤회 등에 대한 수사가 어떻게 진행됐는지는 언론에서 보도된 적이 없고 검찰에서 공식적으로 밝힌 적도 없다. 정윤회 문건 사건으로 조사를 받던 기자들은 수차례 이 문제를 지적했다. 국정농단의 주범들에 대한 조사가 왜 제대로 안 되는지, 만약 제대로 조사가 되지 않는다면 우리도 조사를 거부하겠다고 맞섰다. 그러나 검찰은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로부터 2년 뒤인 2016년 12월 최순실(개명 후 최서연)의 국정농단 사건이 터졌다. 당연하게도 최씨의 국정농단은 이미 정윤회 국정농단 문건에 상세하게 적혀있었다. 2014년 검찰이, 정윤회와 안봉근, 정호성 등 청와대 비서관들에 대한 수사를 제대로 했다면, 최씨의 국정농단은 이미 2년 전에 발각되었을 것이고, 2016년 2017년 우리사회를 휩쓴 국정농단 사건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아가 보수와 진보 간 극단적인 대립도 없었을 가능성이 크다. 지난 달 28일 헌법재판소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관련 법률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이로서 26년 간 필요성만 제기되던 공수처가 정식으로 출범했다. 공수처는 그동안 검찰이 제대로 손을 대지 못했던 고위공직자범죄와 권력형 비리를 수사하기 위해 발족했다. 물론, 기존 검찰이 그랬던 것처럼, 정권에 따라 중심을 잃고, 이리저리 흔들릴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조직의 중립성, 독립성에 의문이 제기되면 더 이상 존재할 수가 없다는 점을 누구보다 공수처가 잘 안다. 죽는 길이 정해져있는데 그 곳으로 발을 디딜 사람은 없다. 쏟아지는 우려들을 마음에 새겨, 조심스럽고 천천히 올바른 길을 가기를 기대한다.

AD

허윤 대한변호사협회 수석대변인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