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에서 지난해 최고의 시청률을 올렸던 '동백꽃 필 무렵'을 시청하신 분이 많으셨을 것이다. 에피소드2에서 주인공 동백이가 소소한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동백을 짝사랑하는 용식에게 그녀는 철도청 공무원이 되어 분실물센터에서 일하고 싶다며 우울하거나 삶의 기운을 얻고 싶을 때 기차역을 찾는다고 이야기한다.
이유를 묻는 용식에게 분실물센터에서 물건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두 번이고 세 번이고 고맙다고 인사 한다며, 고맙다는 인사를 받는 사람은 바로 천사가 되는 거라고 말한다. 자신의 가게를 찾는 사람들에게 베푼 위로와 친절로 마음을 다치는 동백을 향해 용식은 동백이가 덜 친절했으면 좋겠다고 하자 동백은 '다정은 공짜니까 서로 좀 친절해도 되잖아요'라며 서로 위안이 될 수 있으면 그렇게 해주면 되지, 그게 뭐가 그리 어려운가 하는 표정으로 용식을 바라본다.
지난주 토요일에 가족 모임이 있어 큰집에 다 모였다. 우리 가족이 제일 먼저 도착했고, 10분이 지나 다른 가족들도 마스크로 얼굴을 절반 이상 가린 모습으로 속속 도착했다. 매년 있는 연말 가족모임으로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식탁 테이블에 상차림이 좀 특이했다. 테이블 위에는 개인 접시와 수저만 놓여 있었다. 저녁 식사는 세미 뷔페식으로 진행된다고 형님께서 이야기하시며 큰 곰 솥에서 국을 떠서 각각의 자리에 놓아주셨다.
국은 미역국이었다. 나는 웬 미역국인가 의아해하면서도, 고소한 냄새와 진한 국물을 보며 맛있겠다고 생각했다. 형님이 내 앞에 미역국을 놓으시더니 빙그레 웃으시며 "동서, 생일 축하해!"라며 말을 건네셨다. 짧은 2~3초 동안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웃고 있는 형님 얼굴만 바라보았다.
'오늘이 내 생일이었나?' 매년 누군가의 생일을 기억해주고 축하해주고 간단한 선물을 주던 나였지만 정작 내 생일은 잊고 산지 좀 된 것 같다. 그런 내 생일을 기억해주고 손수 미역국을 끓여 주시다니 내 마음은 추운 찬바람이 무색하게 훈훈해졌다. "형님이 미역국을…"하고 말을 흐리니 형님은 웃으며 "맛있게 먹어!" 하시고 돌아서서 주방으로 가셨다.
뒤이어 내가 입에서 "고맙습니다. 잘 먹겠습니다"라고 하자 형님은 등을 보이신 채로 "고맙긴, 맛있게 먹어주면 내가 고맙지"라고 이야기했다. 자그마한 형님의 모습이 커다랗게 보였고, 등에서는 하얀 날개가 펄럭거렸다. 그 순간 형님은 내게 천사였다. 미역국은 진하고 맛났다. 고마웠다. 이날 가족들이 전해준 에너지는 올 한해 지쳐 방전된 나를 새롭게 충전해주었다.
고맙다는 말은 방전된 누군가를 일으켜 세울 수도 있다. 고맙다는 말은 외로운 누군가에게 자기편이 있다고 느낄 수 있게 해줄 수도 있다. 고맙다는 말은 열심히 일하고 있는 누군가에게는 소신을 갖게 해 줄 수도 있다. 고맙다는 말은 새로운 도전을 하는 누군가에게는 용기일 수도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은 밤 9시부터 새벽 6시까지 근무하기 때문에 우리는 코로나19를 피해 아침 7시에 나오고 밤 9시 전에 귀가해야 한다는 우스개 이야기가 있다. 마스크로 얼굴 절반을 가리고도 서로 다가갈 수도 없는 상황들이 연속되고 있다. 서로에게 천사가 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철도역 분실물센터에서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주며 고맙다는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천사라고 생각하듯이 우리는 누군가를 천사로 만들 수도 있고 우리가 천사가 될 수도 있다. 공짜니까 서로 좀 더 많이 친절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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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란 동아TV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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