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길의 영화읽기]남성? 여성? 나는 나!
셀린 시아마 감독 '톰보이'
이사 가는 길. 열 살 소녀 로레(조 허란)가 승용차 지붕 창 위로 고개를 내민다. 두 눈을 감고 오른손을 들어 청량한 가로수 바람을 느낀다. 자유로움을 만끽할 듯하나 안색은 영 밝지 않다. 햇살이 얼굴에 드리우자 눈살을 찌푸리고 만다. 운전하던 아버지는 불편한 기색이 느껴졌는지 딸을 무릎 위에 앉히고 핸들까지 맡긴다. "왼쪽으로 가요?" "아니, 오른쪽으로. 핸들을 살짝 틀면서. 그렇지, 잘했어." 그제야 로레의 얼굴에 웃음꽃이 핀다. 걱정과 두려움을 잠시 잊었다.
영화 '톰보이'는 도입부터 로레의 복잡한 심경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그는 여성의 몸으로 태어났으나 남성으로 행세한다. 처음 인사 나누는 친구 리사(진 디슨)에게 자기를 미카엘이라 소개한다. 리사와 친구들은 짧은 머리카락과 수준급 축구 실력을 보고 남성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거짓말은 오래 가지 못하고, 로레는 여성성을 강요당하기에 이른다. 셀린 시아마 감독은 네 가지 소재 또는 설정으로 문제의식을 구체화한다. 소설 '정글북'과 축구공, 자연, 임신이다.
준엄한 규율
로레는 여동생 잔(말론 레바나)에게 소설을 읽어준다. 영국 소설가 러디어드 키플링(1865~1936)의 '정글북'이다. "갑자기 신음 소리가 나더니 정글에서 이런 소리가 났다. '두비 두비 두비.' 모글리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입을 딱 벌린 채 바라봤다. 덩치가 어마어마하게 크고 털이 덥수룩한 곰이 나타났다. 갈색 눈으로 모글리를 바라봤다." 곰의 이름은 발루. 모글리의 친구이자 스승이다. 썩은 가지와 튼튼한 가지를 구별하는 법, 벌집으로 다가갈 때 벌들에게 공손하게 말하는 법 등을 가르쳐 준다.
시아마 감독은 모글리를 처음 마주한 동물들의 시각을 아이들에게 반영한다. 리사는 발루와 같은 존재다. 로레를 숲속으로 데리고 들어가 친구들에게 소개한다. 즐겁게 어울려 노는 법도 알려준다. 로레를 경계하던 아이들은 조금씩 마음을 연다. 그러나 그가 여성이라는 사실을 알곤 폭력성을 드러낸다. 포용과 이해보다 경쟁과 응징이 앞선다. ‘정글북’ 속 동물의 세계에서도 준엄한 규율이 작동한다. 아무리 무리의 대장이라도 사냥감을 놓치면 오래 살아남을 수 없다. 살아남더라도 ‘끝난 늑대’라 불린다.
남성의 전유물
로레는 축구를 곧잘 한다. 가벼운 발재간으로 아이들의 시선을 집중시키더니 멋진 골로 주역이 된다. 축구는 물론 럭비ㆍ복싱 같은 인기 운동은 한동안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실제로 축구ㆍ럭비에서 여성 팀이 창설된 것은 1980년대 중반이다. 학교에서 여자아이들은 테니스, 네트볼, 라크로스 정도만 했다. 물리적 접촉이나 그런 식으로 몸을 사용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영국의 인류학자 주디스 오클리는 저서 '자신의 문화 또는 타자의 문화(Own or Other Culture)'에서 "여성이 절대 공을 차서는 안 됐다. 남성을 발로 차서는 안 됐기 때문이다"라며 이렇게 이어갔다. "다리를 올리거나 발길질하는 여성은 지배적인 남성 이데올로기에서 자기 성기를 은유적으로 드러내는 것으로 여겨졌다. 목표물이 없을 때 이런 움직임은 흥을 돋우는 캉캉 춤처럼 제도화했다."
남녀의 스포츠 차이는 서로 다른 신체적 경험으로 연결된다. 로레의 경우 비슷한 체격의 남자아이까지 때려눕힌다. 몸에 대한 규제에서 스스로 벗어난다.
섹스와 젠더
'톰보이'의 주 무대는 푸른 숲이다. 로레는 숲에서 온갖 감정을 느낀다. 마지막은 슬픔이다. 엄마(소피 카타니)가 강제로 입힌 파란색 원피스를 벗어 던진다. 자연적인 것, 다시 말해 생물학적 남녀 구분인 성(Sex)를 거부하는 행위다. 사회학적 의미의 젠더(Gender)를 표방하는 시발점일 수도 있다.
프랑스의 작가이자 철학자 시몬 드 보부아르(1908~1986)는 저서 '제2의 성'에서 여성이 만들어진다고 주장했다. "사람은 여성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 어떤 생물학적ㆍ생리학적 또는 경제적 운명도 사회에서 인간이 드러내는 모습을 결정하지 않는다. 거세된 인간과 남성 사이에 여성이라는 창의적 비결정체를 만들어 낸 것은 바로 문명 전체다."
여성성과 남성성이라는 이원적인 사회 속성은 서구 계몽주의 사상에서 나온 특징이다. 생리ㆍ출산ㆍ수유 같은 여성의 특정한 생물학적 속성이 남녀 차이와 열등성의 근원으로 받아들여졌다. 자연적인 것으로 간주돼 여성을 몸이라는 덫에서 탈출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변화하는 몸
로레의 엄마는 임신 상태다. 그래서 딸의 변화에 다소 무관심한 듯하다. 사실 엄마만큼 로레를 이해하는 가족은 없다. 임신으로 몸의 변화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임신은 몸을 또 다른 존재의 공간이자 자신의 것으로 경험하게 한다. 그래서 습관에 익숙한 몸의 연속성을 무너뜨리기까지 한다. 평소처럼 의자에 앉으려다 몸이 제약받는다는 사실을 체감하는 경우가 대표적인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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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레의 엄마는 딸의 고통을 인지한다. 그러면서도 딸에게 상처를 준다. 로레가 남자아이를 때리자 여자라는 사실까지 밝히면서 사과하도록 윽박지른다. 몸의 변화를 겪고 있는 엄마는 딸의 삶이 얼마나 극단적으로 불편해질 수 있는지 잘 안다. 하지만 모든 신체적 변화는 이중적 성격을 내포한다. 임신만 하더라도 몸은 짐이 되기도 하지만 기쁨이 되기도 한다. 어느 쪽으로 기울지는 사춘기와 제도권을 통과할 로레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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