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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길의 영화읽기]오늘도 그는 톱니바퀴를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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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영화 속으로

[이종길의 영화읽기]오늘도 그는 톱니바퀴를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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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 채플린의 '모던타임스' 보이는 족족 나사 조이는 강박증…산업화 시대 빈곤·불균형 풍자

켄 로치 감독 '네비게이터' 변화에 휩쓸린 노동자들 조명…국내 '파업전야'·'카트' 등 대표적


'슈렉2(2004년)'에서 슈렉(마이크 마이어스)은 대모 요정(제니퍼 손더스)의 성을 방문한다. 정문을 지키는 비서가 출입을 통제한다. "오늘은 아무도 만나지 않으시겠답니다." 슈렉은 거짓말을 한다. "괜찮아요. 우리는 노동조합(노조)에서 왔거든요. 혹시 모욕이나 차별 대우를 받은 적이 있나요?" 비서의 태도는 180도 달라진다. "약간요. 우리는 치과 의료보험도 없어요. (중략) 어서 들어가세요." 미국은 유럽의 여러 나라들보다 노조에 대한 이해가 낮다. 하지만 대통령이 공식석상에서 필요성을 제기할 만큼 우호적이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2015년 9월7일 보스턴에서 열린 노동절 행사에서 "내 가족의 생계를 보장할 좋은 직업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나는 노조에 가입할 거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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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처럼 노동과 투쟁은 노동자의 희망이다. 찰리 채플린이 '모던 타임즈(1936년)'를 통해 증명했다. 급속한 산업화로 대두된 빈곤과 소득 불균형의 문제를 코미디를 엮어 집약했다. 컨테이너 벨트 공장의 노동자(찰리 채플린)는 하루 종일 나사를 조인다. 동그란 물체만 보면 조이려는 강박관념에 빠진다. 몸이 기계 안으로 빨려 들어가 톱니바퀴 사이에 끼여도 스패너를 놓지 않는다. 노동자는 정신병원에서 신경쇠약을 치료받고 퇴원한다. 지나가던 트럭에서 깃발이 떨어지자 냉큼 주워 차를 쫓는데, 마침 노동자 시위대의 행렬이 그 뒤를 따른다. 경찰은 그를 주동자로 오인하고 체포한다. 그 뒤에도 진압에 나서지만 투쟁은 멈출 줄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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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시위는 유럽에서 흔한 일상이다. '뉴욕에서 온 남자, 파리에서 온 여자(2007년)'에서 매리온(줄리 델피)은 오랜 여행을 마치고 부모가 사는 집으로 돌아온다. 어머니는 "왜 이렇게 늦었냐?"고 묻는다. "기차가 9시 도착 아니었니?" "데모 때문에 차가 막히고 난리가 났어요." "불쌍한 간호사들이 파업도 못하니? 여기는 미국이 아니야." 노동자를 비난해서는 안 된다는 꾸지람이다. 응원의 목소리는 '빌리 엘리어트(2000년)'에서도 들을 수 있다. 광부인 재키(게리 루이스)는 아들 빌리(제이미 벨)를 데리고 런던에 있는 왕립발레학교로 간다. 계속된 파업으로 여비가 모자라서 아내가 유품으로 남긴 보석까지 전당포에 맡긴다. 빌리는 실기시험에서 아버지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침통한 표정으로 면접장을 나가는데, 학과장으로 보이는 면접관이 재키에서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파업에서 꼭 승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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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을 깊게 다뤄온 켄 로치 감독은 '빅 플레임(1969년)', '희망의 나날들(1975년)' 등에서 투쟁의 영웅적 면면을 부각했다. 더 높은 임금과 더 나은 근무환경을 요구하는 노동자를 위한 상징적 이미지였다. 그가 1990년대 들어 만든 작품에서는 볼 수 없다. 의미 있는 노동의 부재가 야기하는 변화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네비게이터(2001년)'가 대표적이다. 도입부에서 요크셔의 철도 보수 노동자들은 경영진과 일정한 합의를 이룬 상태다. 새로 나타난 고용주들은 일방적으로 약속을 파기한다. 노조 대표인 제리(벤 트레이시)가 나서지만 변화를 막지 못하고, 이는 차고의 폐쇄와 직장 동료 간 연대의식의 붕괴로 이어진다. 존 힐 런던대 교수는 저서 '켄 로치'에서 "생존력을 지닌 경제실체로서의 노동자들이 점진적으로 분열되어 가는 과정“이라며 "노동자들이 훨씬 악화된 조건 속에서 안정 예방책의 보호를 받을 권리도 박탈당한 채 결국 같은 일을 하게 되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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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균열은 장동홍·이재구·장윤현 감독이 연출한 '파업전야(1990년)'에서도 다뤄진다. 동성금속 단조반원들은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며 잔업과 철야에 시달린다. 월급날 잔업을 거부하면서 노조를 결성하기에 이른다.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은 한수(김동범)는 이들과 한 배를 타지 않는다. 평소 알고 지내던 주임에게 반장 승진을 제안 받고 포섭돼 구사대(회사에서 노조에 대항해 만든 비조합원 단체)가 된다. 고생하는 동료들을 보면서 죄책감에 사로잡히지만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다. "뭐? 이제 와서 그만두고 일을 하겠다고? 이 자식이. 같은 고향 사람이라고 잘해주려고 했더니. (중략) 자, 며칠 있으면 이 일도 해결이 나요. 그 후에 너는 3공장 반장으로 올라가면 되고. 그러니 며칠만 더 고생하자." 한수는 점거 농성에 들어간 동료들이 폭력배들에게 무참히 짓밟히는 모습을 보고 마음을 고쳐먹는다. 그들을 구하기 위해 스패너를 들고 농성장으로 뛰어든다. "나가자!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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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영 감독이 만든 '카트(2014년)' 속 마트 직원들의 사정도 비슷하다. 회사 인사팀으로부터 갑작스럽게 문자 한 통을 받는다. '근로계약 해지 통보서가 발송되었습니다. 직원 게시판을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직원들은 마트를 점거한다. 회사에서 고용한 아르바이트생들까지 쫓아내고 승리를 자축한다. 그러나 정작 회사 측과의 협상은 진전을 보이지 않는다. "정말 안타깝습니다. 여사님들이 왜 이렇게 극단적인 행동을 하시게 됐는지." “그 이유야 회사가 더 잘 알겠죠." "하하하. 이거 반찬값이나 벌자고 나온 여사님들을 누가 꼬셔가지고, 이거 참." "꼬시기는 누가 꼬셨다카노. 다 자기 발로 들어왔지." ”저 생활비 벌어요. 반찬값 아니고." (중략) "지금 불법점거하시고 계시거든요." “불법은 회사가 먼저 저질렀잖아요." ”이거 불법점거에 업무방해인데, 이러면 회사도 여러분들도 감당하기 힘들어요." “응. 걱정하지 마. 점거 푸실 거야. 그치요? 푸실 거죠? 아, 그럼 점거 풀면 협상하기로 하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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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 지배계급은 이익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경제수단과 정치권력 도구, 오랜 경험 등을 자유자재로 활용한다. 각종 선전 수단을 틀어쥐고 사회체계를 정당화하며, 끊임없이 환상과 허위의식을 불어넣는다.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1995년)'에서 피복공장 재단사로 일하는 전태일(홍경인)은 근로기준법을 읽고 노예 같은 상태를 깨닫는다.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피를 토하고 쓰러지는 동료들과 함께 투쟁하고자 마음먹는다. "나는 바보입니다. 열두 살, 열세 살 난 어린 친구들이 먼지 묻고 폐병 들어 1전 한 푼 못 받고 공장에서 쫓겨나갈 때 나는 가만히 있었습니다. 근로기준법을 보면, 우리도 당당히 인간적인 대접을 받고 살아야 한다고 쓰여 있습니다. 우리 재단사들은 모두 다 바보입니다. 우리는 그걸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도 언젠간 인간적인 대우를 받을 수 있을 겁니다." 그는 작업환경의 개선을 요구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고, 전태일은 절망한 나머지 분신자살한다. 불길에 휩싸여 간절하게 호소한다. 노동자의 삶을 그나마 인간적으로 이끈 고귀한 외침이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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