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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일제 잔재'와 '청산'을 다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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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참 지긋지긋하기도 하다. 일제(日帝) 이야기다. 3ㆍ1운동 100주년을 맞은 올해까지도 일제 잔재의 청산이 새삼 화두가 될 지경이니 말이다. 때가 때인 만큼 이는 다시 떠오를 문제이긴 했다. 그래도 여기 불을 지핀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1일 광화문광장에서 있은 기념행사에서 축사를 통해 "친일은 반성해야 하고, 독립운동은 예우 받아야 한다는 가장 단순한 가치를 바로 세우는 것이 일제 잔재 청산"이라고 밝혔다.


왜 지금 일제 잔재 청산을 '빨갱이 유래론'과 연결해 거론했는지는 뒤로 하고 문 대통령의 지적은 맞다. 우리 민족사에 깊은 상흔을 남긴 일제의 흔적을 지우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기에 오히려 때늦은 감마저 있기 때문이다. 한데 여기서 생각할 것은 '일제 잔재'의 기준이다. 이것이 분명하지 않으면 자칫 엉뚱한 '청산'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인적 청산의 대상으로 거론되는 '친일(親日)' 인사에 대한 평가도 그 하나이다. 한 사람을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오로지 한길만 꿋꿋이 걷기란 어렵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과(功過)가 어지럽게 섞인 삶을 살기 때문이다.

한 세대가 넘도록 일제의 강압에 시달렸던 만큼 젊은 시절 독립운동에 몸 바쳤던 이가 말년에는 학병 권유에 적극 나서는 등 훼절한 사례가 드물지 않다. 그런 이들을, 일신의 영달을 위해 평생 친일 행위에 매진한 이들과 동렬에 세워 단칼에 재단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아 보인다. 그저 나중의 친일 행적을 감추고 이전의 독립운동만 내세워 애국과 민족을 독점하는 이들의 꼴사나운 실체를 까발리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을까. 일본 선승(禪僧)들의 일화를 모은 '힘들 때 펴보라던 편지(최성현 글ㆍ불광출판사)'에는 다이큐 소규라는 이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런 구절이 눈길을 끌었다.


"100퍼센트 착한 사람도 나쁜 사람도 없다…누구에게나 닦아야 할 자기 똥이 한두 개가 아니다. 어떤 이는 제 똥은 보지 않고 남의 똥 이야기에 바쁘고 어떤 이는 열심히 자신의 똥을 닦아 간다."


'일제 잔재'도 논란의 여지가 크다. 일제를 통해 근대화의 물결을 맞이했던 만큼 그 흔적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예를 들면 사회 각 분야에서 지금도 마치 전문용어처럼 일본식 용어가 쓰인다. 심지어 사회(社會), 철학(哲學), 낭만(浪漫), 안내(案內)처럼 일본이 고심해서 번역해낸 한자어들이 우리 학계는 물론 일상에서 두루 쓰인다. 이건 '일제 잔재'인가 아닌가. 일제 잔재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청산' 방식도 문제다. 지난달 27일 서울 성북구 성북천 앞 도로에서는 고려대 학생, 항일운동단체 관계자 등 200여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도로명판이 바뀌었다. 친일 행위를 한 인촌 김성수의 호를 딴 '인촌로'란 명판이 28년 만에 내려지고 '고려대로'란 명판을 새로 달았다. 주민들의 동의를 얻었으니 도로명 변경 자체야 문제가 없다. 또 많은 시민들이 잊고 있는 '인촌'보다는 바뀐 도로명이 시민들에게 더 친절하다. 게다가 인촌의 친일행위는 2017년 대법원 판결로 확인된 바 있으니 명분도 있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인촌의 친일행위가 분명한 만큼 그가 육영사업이나 언론사업 등을 통해 우리 민족에 기여한 바도 크다고 믿지만 말이다.


그렇다 해도 도로명 교체가 과연 '청산'인가 나아가 이것이 떠들썩한 행사를 치를 만큼 의미 있는가 하는 점은 의문이다. 도로명보다 사고방식이라든가 제도 등 일제의 흔적을 지우는 것이 더 중요하고 시급한데 우리는 지엽말단에 치우쳐 이를 놓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사실 일제 잔재 청산은 뜻하지 않은 반민특위(反民特委)의 좌절로 때를 놓쳤다. 한데 70년이 지난 지금 이런 방식이라면 알맹이마저 놓치는 것 아닐까 걱정된다.


김성희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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