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희 북 칼럼니스트ㆍ 고려대 미디어학부 강사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ㆍ 고려대 미디어학부 강사

AD
원본보기 아이콘
‘올해의 책’ 시즌이 돌아왔다. 연말이면 각 신문사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올해의 책’을 선정해 문화면을 장식하는 관행 덕분이다. 거의 유일한 취미가 독서이다 보니 자연히 ‘올해의 책’ 리스트에 눈길이 간다. 집에서 읽는 신문 말고도 따로 인터넷을 통해 여러 신문사의 리스트를 챙기기도 한다. 미처 알지 못했던, 흥미로운 책을 발견할 수도 있고, 그 중 몇 권을 읽었는지 살펴 혼자 자부심을 느낄 수도 있어서다.


독자의 입장이야 그렇다 쳐도 이 목록에 은근히 신경을 쓰는 출판인들도 적지 않다. 책 홍보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물론 ‘올해의 책’에 선정된다 해서 영향력이 크지는 않다고 들었다. 그러기에 예전처럼 책 표지에 띠지를 새로 둘러 ‘올해의 책’임을 내거는 출판사는 줄었다. 하지만 이게 출판인에게는 명예훈장 구실을 하는 터라 ‘올해의 책’ 선정에 맞춰 묵직한 책을 내는 출판사도 있는 형편이다.

이처럼 주목받는 ‘올해의 책’은 한 번은 짚어볼 필요가 있다. 우선은 기준의 문제다. 대부분의 ‘올해의 책’은 많이 팔린 책인지, 재미나 감동의 크기인지, 사회적 혹은 학문적 의의인지 그 기준이 명료하지 않다. 뿐만 아니라 선정위원들끼리 한 번이라도 그 기준에 대해 토론하고 합의를 거쳤는지 의문이다. 그저 막연히, 이심전심 ‘좋은 책’을 고르는 것 아닌가, 짐작할 따름이다. 하지만 ‘좋다’는 것도 세대에 따라, 취향에 따라 다르다. 또 흔히 하는 말로 ‘재미’가 굳이 ‘의미’의 밑에 놓일 이유도 딱히 없는 터라 ‘올해의 책’ 목록은 언제나 아쉬워하는 이들이 생길 수밖에 없다.


선정위원도 이견의 여지가 있다. 대개 각 언론사에서 위촉하는 선정위원들은 출판인, 평론가, 기자 등 일반 독자보다 책을 가까이할 기회가 많고 눈 밝은 이들이긴 하다. 하지만 그런 만큼 그 수준이 일반 독자의 눈높이와 거리가 있을 수 있다. 여기에 선정위원이 스스로의 지적 ‘품위’를 염두에 둔다면 추천에 ‘거품’이 끼어들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예컨대 댄 브라운의 『오리진』을 감명 깊게 읽은 이라도 막상 추천 때는 유발 하라리의 『호모데우스』을 택하는 경향이 있다는 이야기다.

추천방식도 문제일 경우가 많다. ‘올해의 책’은 대체로 개방형으로 추천을 받는다. 이른바 전문가들이 본인 생각에 ‘올해의 책’이라 여겨지는 책을 추천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선정위원들은 미리 청탁을 받아 일년 내내 사명감을 가지고 출판시장을 주시하지는 않는다. 연말에 닥쳐 추천을 받는 게 보통이다. 개인이 3만 종에 이른다는 신간을 두루 살피는 것은 애당초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니 이들이 살핀 책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사회과학이나 과학 관련 책에 이르면 인문학을 전공한 이들이 그 수준이나 성과를 제대로 평가하기 어렵기도 하다. 결국 선정위원의 성의, 능력, 취향이 크게 작용하고, 선정에 임박해 출간되는 책이 상대적으로 유리한 방식으로 ‘올해의 책’이 선정될 가능성이 크다. 심하게 말하자면 ‘장님 코끼리 더듬기’의 결과에 가깝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AD

물론 각종 추천도서제는 쏟아지는 신간 홍수 속에서 일정한 독서가이드 역할을 할 수 있다. ‘올해의 책’ 또한 척박해지기만 하는 출판시장에서 출판인들을 위한 작은 격려의 표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올해의 책’을 발표하는 각종 기관이나 매체는 그 이름값에 걸맞은 관심과 품을 들이는 건지 스스로 물어야 한다. 담당 기자 또는 담당 조직 차원에서 연례행사로, 설렁설렁 습관처럼 꾸려내는 목록이라면, 자칫 ‘그들만의 리그’가 될 우려가 있다. 그토록 성글게 만들어지는 리스트에 일희일비하는 책꾼들을 부디 한번이라도 떠올려봤으면 한다.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ㆍ고려대 미디어학부 강사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