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장·5대그룹 간담회]압박 수위 강해진 김상조…"대기업들 자발적 개혁의지 의구심"

[아시아경제 이지은 기자]두 번째로 5대 그룹 최고경영자(CEO)들과 만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2일 기업들의 자발적 개혁의지에 의구심을 표했다. "최대한 인내심을 갖고 자발적 변화를 기다리겠다"던 6월 간담회에 비해 기업 압박 수위가 눈에 띄게 강해진 것이다.

김 위원장은 이날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삼성전자 이상훈 사장, 현대자동차 정진행 사장, SK텔레콤 박정호 사장, LG 하현회 사장, 롯데 황각규 사장 등 5대 그룹 CEO와 가진 정책 간담회에서 "일반 국민들의 입장에서 볼 때, 또한 지난 선거과정에서 국민께 약속한 공약에 비추어 볼 때 기업들의 자발적 개혁의지에 대해 여전히 의구심이 남아있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지난 선거과정에서 기업집단 총수일가 전횡방지 및 소유·지배구조 개선을 공약했다며 ▲총수일가의 전횡방지 및 투명하고 건전한 경영문화 확립 ▲총수일가의 편법적 지배력 강화 및 부당한 경영권 승계 차단 ▲총수일가 사익편취 행위 및 부당내부거래 근절 ▲금융계열사를 통한 지배력 강화 방지 등 금산분리 원칙 준수 등 4가지 목표를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일각에서는 기업들의 소극적인 자세로 인해 새 정부의 개혁 작업이 지지부진함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다"며 "기업의 전략이 시장과 사회의 반응으로부터 지나치게 괴리되어서는 안된다는 의미에서 좀 더 분발해 주실 것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6월 간담회 때만 해도 "대기업이 한국 경제 성공의 증거이며 소중한 자산"이라고 추켜세우며 "최대한 인내심을 가지고 기업인들의 자발적인 변화를 기다리며, 그 과정에서 충실히 대화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던 김 위원장이 5개월만에 발언 수위를 한 층 높이고 기업들에 대한 압박에 나선 것이다. '일반 국민'의 의견이나 '일각'의 의견임을 전제했지만, 이를 굳이 간담회에서 언급한 것은 기업에 메세지를 전달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재벌 저승사자'로 불리는 기업집단국의 다음 목표는 대기업집단 소속 공익재단과 지주회사의 수익구조로, 각각 전수조사를 시행할 예정이다. 김 위원장은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공익재단에 세제 혜택을 부여하고 있는데, 과연 공익재단의 설립 취지에 부합하는 활동을 하고 있는지 점검하고 의결권 제한 등의 제도 개선방안을 강구할 생각"이라며 "브랜드 로열티, 컨설팅 수수료, 건물 임대료 등이 지주회사 수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수익구조를 살펴보고 일감 몰아주기·법 제도 개선 등을 살펴볼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하도급거래 관행 개선을 위해 대기업이 성과평가 기준 변경에 동참해 달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불공정 하도급거래 근절이 큰 성과가 없었던 이유는 실제 구매부서 실무 임직원들의 인센티브 구조가 바뀌지 않기 때문"이라며 "구매부서 실무 임직원들의 성과평가 기준, KPI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도급기업과의 상생협력을 통해 장기적 이익 증대에 기여한 임직원들이 높은 고과평가를 받는 식으로 KPI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이런 건 법으로 규제하기도 어렵고 공정위가 강제할 수도 없다"며 "5대 그룹이 선도적인 역할을 해 주시기를 소망한다"고 덧붙였다.

대기업 관계자가 공정위에 출입할 때는 등록을 강제하는 '로비스트 규정'의 준수도 요청했다. 그는 "내부 대관 담당 임직원들, 그리고 법률대리인들에게 공정위 로비스트 규정의 취지를 잘 전달하고 철저하게 준수하도록 해 달라"고 말했다. '스튜어드 코드'의 취지를 설명하며 "사외이사 선임 등의 주요 현안과 관련, 평상시에 기관투자자들과 대화하는 적극적인 자세를 갖춰 달라"고도 말했다.

이지은 기자 leezn@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