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제림 시인

윤제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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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에 반짝이는 물무늬가 무척 아름답습니다. 물의 실핏줄까지 들여다보입니다. 투명하기는 고려 불화(佛畵)의 '하늘 옷(天衣)'자락을 닮았습니다. 깊은 물은 거울 행세를 합니다. 나무들이 제 얼굴을 들여다봅니다. '가을 물은 소발자국에 괸 물도 먹는'다지요. 그냥 엎드려서, 입을 대고 마시고 싶어집니다.


 산과 물이 잘도 여물었습니다. '춘 마곡, 추 갑사(春麻谷 秋甲寺)'라 했으니, 가을 경치는 아무래도 '갑사'가 낫지 않을까 하던 생각이 부끄러워집니다. 마곡사는 지금 골짜기 가득, 가을입니다. 단풍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남하하고 있습니다. 곧, 땅 끝까지 내려가겠지요.

 당신께서 이 절에 들어, 머리를 깎으신 것도 이맘때였습니다. 열여덟에 동학의 무리 수천 명을 이끌던 '아기 접주(接主)'. 국모를 시해한 원수를 서슴없이 처단하고 사형수가 된 열혈남아. 죽음도 그 뜨거운 피를 식히지 못할 것임을 알고 탈옥을 감행한 사내. 나라와 백성을 위해 걸어야 할 길을 운명처럼 맞이했던 사람.


 김창암 아니, 김창수입니다. 김구입니다. 백범(白凡)입니다. 저는 지금 1896년, 청년 김창수가 스님 원종(圓宗)이 되어 걷던 길에 서 있습니다. 이름 하여 '백범명상 길'. 백범이 명상하고 다닌 길의 의미보다는, 백범을 생각하며 걸으라는 뜻으로 읽힙니다. 영화 '대장 김창수'의 속편을 찍는다면 첫 장면이 되어도 좋을 곳입니다.

 백범의 길은 여기 말고도 두 군데나 됩니다. 둘 다 제가 자주 다니는 길입니다. 하나는 용산 백범로. 선생의 묘소와 기념관이 있는 효창공원을 중심으로 펼쳐진 길이지요. 또 하나는, 인천 백범로입니다. 당신을 두 번이나 가두었던 인천이, 그 일을 어찌 잊겠습니까. 연안부두 축항(築港)공사 노역까지 했던 당신 아닙니까.


 남산 기슭에 사는 저는, 동상으로도 당신을 만납니다. 비둘기들이 당신 머리와 어깨에 올라앉은 것을 볼 때면 여간 송구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저런 못된 것들!' 소리가 절로 나오지요. 하지만, 이내 생각을 고칩니다. '백범이니까, 새들도 스스럼없이 날아와 앉는다. 백범이니까 저런 미물도 쫓지 않고 내몰지 않는다.'


[윤제림의 행인일기 64]공주 마곡사에서 원본보기 아이콘
 생애 대부분이 풍찬노숙(風餐露宿)의 날들이었던 당신이, 어찌 떠돌이의 슬픔과 고통을 외면하겠습니까. 백정(白丁)과 범부(凡夫)의 벗이기를 자처한 당신이 어떤 목숨들에 차별을 두겠습니까. 누가 뭐래도, 당신은 타고난 휴머니스트지요. 중국 '절강성 가흥'에 피신해 계실 때 함께 지낸 여인과의 이별 장면이 떠오릅니다.


 "남경서 출발할 때 '주애보(朱愛寶)'는 본향인 가흥으로 보냈다. 그후 이따금 후회되는 것은 송별 때 여비 '백 원' 밖에 더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근 5년 동안 한갓 광동인으로만 알고 나를 위했고 …(중략)… 뒷날을 기약할 수 있으리라 믿고 돈으로라도 넉넉히 돕지 못한 것이 유감천만이다."


 선량한 인연은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잊지 않은 백범이었습니다. 광복이 되어 전국을 돌며 조국과 백성의 현실을 살필 때, 이 절에도 들르셨지요. 하룻밤을 묵고, 기념식수도 하셨습니다. 그 향나무가 저토록 기품 있게 자라서, 당신 대신 문안을 받습니다. 나무 앞에는 당신의 마곡사 시절을 기리는 집 한 채도 들어서 있습니다.


 동그란 안경을 쓰고 파안대소하는 사진이 큼지막하게 걸려 있습니다. '백범당'. 당신의 옛날 처소, '심검당(尋劍堂)'을 본떴습니다. '칼 찾는 집'. 당신의 칼은 말할 것도 없이, 조국을 일으켜 세울 '지혜의 검'이었을 테지요. 훗날, 당신이 이룬 대업(大業)의 동력도 그 칼의 기운이었을 것만 같습니다.


 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이 절이 한 위대한 인간에 지극한 경의를 표하고 나선 것은 백번 잘한 일입니다. 마곡사가 빛나는 까닭은 현판 글씨를 신라의 '김생(金生)'이나 근대의 '김규진(金圭鎭)' 같은 명필이 썼대서가 아닙니다. 탑과 전각과 경전과 불화… 보물급 문화재가 즐비하기 때문만도 아닙니다.


 이 절에서 두어 계절을 났을 뿐이지만, 마곡사는 대한민국 주석(主席)을 낳은 절. 당신이 평생 품었던 시를 읊조려봅니다. 김대중 대통령 신년휘호에도 등장했던 글이지요. 서산대사가 지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정조 때 사람 이양연(李亮淵)의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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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 덮인 들판 걸어갈 제,/함부로 어지럽게 걷지 말지어다./오늘 내 가는 길이/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터이니." 그의 길이 이 시와 같았습니다. 길은 평생 어지러웠으나, 걸음걸이는 공명정대했습니다. 일흔 네 해 동안, 발자국 하나도 함부로 찍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옮긴 걸음걸음에서 이정표를 봅니다.


 어쩌면 당신의 체온과 체취가 남아있을, '심검당' 툇마루에 앉아봅니다. 백성을 부처로 섬겼던, 젊은 승려 '원종'이 제 앞에 다가와 서는 것을 느낍니다. 두루마기 차림에 지팡이를 짚고, 미소합니다. 당대의 고승과도 같은 풍모입니다. 백범대사(白凡大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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