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주의 책피카]역설과 반전의 대륙, 라틴아메리카

혁명에 불타고 정치에 시든 슬픈 라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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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女대통령 탄핵·민주화…한국과 많이 닮아
국내시각 상당부분 왜곡
호세프 대통령 탄핵 진실은 부패보다 정치 싸움

국가 흥망성쇠, 정치에 좌지우지
한국,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아시아경제 박미주 기자]라틴아메리카는 우리의 관심영역에서 상대적으로 멀리 떨어진 곳이다. 그곳에 대한 정보도 비교적 제한적이다. 하지만 알고 보면 한국과 닮은 곳이 많다. 식민지였다가 독립했고 이후 미국의 영향력에 휘둘렸다. 쿠데타와 독재정권, 민주화 운동을 겪었다. 외환위기 후 신자유주의 정책이 도입됐고 빈부격차가 발생했다. 여성대통령이 탄생했고 최근엔 좌파 정권이 집권했다.

콜롬비아의 게릴라 진압부대원들. 1960~1970년대 라틴아메리카는 '게릴라의 대륙'으로 불리며 게릴라활동이 전성기를 이뤘다. 그들은 폭력적으로 집권한 군사정권에 맞서는 방법으로 무장투쟁을 택했고 정부군과 게릴라 사이의 내전은 한때 라틴아메리카의 한 특징이 된다. /사진 개마고원

콜롬비아의 게릴라 진압부대원들. 1960~1970년대 라틴아메리카는 '게릴라의 대륙'으로 불리며 게릴라활동이 전성기를 이뤘다. 그들은 폭력적으로 집권한 군사정권에 맞서는 방법으로 무장투쟁을 택했고 정부군과 게릴라 사이의 내전은 한때 라틴아메리카의 한 특징이 된다. /사진 개마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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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아메리카를 향한 국내의 시각은 상당 부분 왜곡됐다. 지난해 8월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의 탄핵과 노동자당의 몰락은 부패 때문으로 알려졌다. 사실은 정치 싸움이 이유였다. 브라질은 원내 정당이 20~30개에 달해 정당연합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국민들의 부패 문제 해결을 위해 정치 개혁을 요구했고 호세프 대통령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정치권 전체를 대상으로 수사를 확대했다. 이에 불만을 품은 우파 정치인들이 호세프 대통령을 역공한 것이다. 탄핵 사유는 국영은행에서 돈을 빌려 국가재정으로 사용했고 빌린 돈을 제때 갚지 않았다는 것이었는데 이는 과거 정부에서도 관행적으로 해오던 일이었다. 이것이 박정훈 씨가 저서 '역설과 반전의 대륙'에서 알려준 사건의 본질이다.

저자는 2000년부터 8년간 멕시코시티에 거주했고 현지 전문 프리랜서 기자로 일한 '라틴아메리카 통'이다. 그런 그가 라틴아메리카를 역설과 반전의 대륙이라 일컬은 이유는 진짜 그런 드라마들이 일어나서다.


"극우마초 독재자들이 즐비한 나라들에서 진보적 여성 대통령들이 등장하기도 하고(1장), 밀림과 도시 뒷골목에서 암약하던 극좌 게릴라들이 진정한 민주주의자로 변신해 국민의 존경을 한 몸에 받기도 한다(2장). 실패한 쿠데타 주동자나 아웃사이더들이 난세를 맞아 도탄에 빠진 빈민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기존 정치체제를 무너뜨리는 일도 벌어지고(3장), 최악의 불평등을 자랑하는 나라에서 스웨덴과 같은 사민주의 복지국가를 꿈꾸는 정당들이 등장하기도 한다(4장). 몇 년 전만 해도 지구상에서 가장 인기 많은 대통령을 배출하며 전성기를 구가하던 정당이 추락하기도 하고(5장), 오지 중의 오지에 거주하는 원주민들이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지구적 저항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6장). 22년간 무장게릴라에서 자치운동단체로, 다시 정치세력으로 끊임없이 진화하는 사회운동집단이 존재하는가 하면(7장), 미국을 넘보던 부자나라가 하루아침에 부도가 나기도 한다(8장). 미국의 코앞에서 살아남은 서양 유일의 공산주의 국가도 있고(9장), 하느님에게선 너무 멀고 미국과는 너무 가깝다고 탄식하던 대륙에서 미국이 고립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10장)."


여성정치인 얘기가 인상적이다. 한국이나 미국보다 앞선 2006년 마초적인 국가 칠레에서는 미첼 바첼레트가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됐다. 2007년에는 아르헨티나에서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가, 2010년에는 브라질에서 지우마 호세프가, 코스타리카에서 라우라 친치야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그 전에도 여성 대통령이 있었지만 위 언급한 이들은 남편 등의 정치적 후광 없이 대통령 자리에 오른 인물들이다.


여성정치인들이 자리 잡은 이유는 라틴아메리카에서 군사정권에 저항을 개시한 사람들이 바로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남성들은 감옥에 갇히거나 살해당하는 경우가 많았고 홀로 남아 자녀들을 돌보던 여성들이 저항에 앞장섰다. "민주 정부가 들어서고 주변 남성들이 '이제 됐어. 이제 집으로 돌아가도 돼'라고 말했다"지만 가정으로 돌아가지 않고 적극적으로 사회운동과 좌파정당에 가담했다. 미첼 바첼레트의 경우도 민선 정부의 공군 장성이던 아버지가 체포된 뒤 고문으로 사망한 다음 저항운동을 지원했고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훗날 의사가 돼 군사정권에 피해 입은 아동을 치유하고 정치활동에도 관여했다. 군사학을 공부하고 최초로 국방부 장관이 돼 군대를 개혁했다. 호세프는 극좌 게릴라 활동으로 군사정권에 저항했고 이후 정당 지도자가 됐다. 국내 첫 여성대통령의 행보와 비교되는 대목이다.


브라질의 복지 도입 사례는 복지를 늘리려는 현 정부가 참고할만하다. 2003년 브라질 대통령이 된 노동자당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는 초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한 평범한 선반공이었다. 그는 스물여섯의 젊은 나이에 산재와 해고, 아내와 아이의 죽음을 모두 겪었고 친형의 권유로 가입하게 된 노동조합 활동을 통해 노조 지도자가 됐다. 노동자당 정부에서 그는 노사정위원회의 확대판인 경제사회발전위원회를 만들었고 민간부문보다 높은 공무원 연금제도를 개혁했다. 그 재정을 가족수당으로 활용, 빈곤가구에 생활 보조금을 지급했다. 그 결과 2003년 인구 전체의 25%였던 빈민수가 2011년 11%로 줄었다. 브라질 국민 3200만 명이 중산층으로 편입됐다. 그러나 이념이 다른 정치세력들과 타협하다가 정치개혁을 하지 못했다. 룰라의 뒤를 이은 호세프가 좌파와 우파 모두의 불만을 사 탄핵당하며 노동자당은 실패를 맛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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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이밖에도 부유한 국가였던 아르헨티나가 정치 문제로 한 순간에 몰락하고, 미국이 경계한 쿠바가 경제적 성과를 이룬 점, 미국으로 인해 라틴아메리카에 우파적 군사독재가 득세했다는 점 등을 세세히 적어나갔다. 이를 통해 민주주의, 포퓰리즘, 정치의 역할, 미국과의 관계 등에 대해 생각해볼 거리를 제공한다. '세계 정치의 실험실' 라틴아메리카를 한국의 타산지석으로 삼자는 것이 저자가 책을 쓴 의도다. "그들의 열정과 아이디어를 지구 반대편에 자리한 이 나라에 조금이라도 전달하는 계기이기를 바랄 뿐이다. 부족한 글이 그런 상상력의 불씨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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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과 반전의 대륙: 라틴아메리카 정치사회의 현장에서 캐낸 10가지 테마
박정훈 지음/개마고원/1만5000원


박미주 기자 beyon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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