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무기계약직 '업무확대+야근+승진부담'에 "정규직 전환 싫다" 거부…임금체계 개선 병행돼야

은행권 정규직 전환? '호봉제'에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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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손선희 기자] 은행권 정규직 전환 움직임이 '호봉제(근무 연한에 따라 임금이 자동 상승하는 제도)'라는 벽에 가로막혔다. 일부 연차가 높은 준정규직(무기계약직) 직원의 경우 정규직보다 오히려 임금이 높은 사례가 발생, 전환을 거부하고 있는 탓이다. 정규직 '일괄 전환'을 압박하기보다는 유연함을 발휘하는 동시에 은행권의 숙원 과제인 임금체계 개선이 병행돼야 한다는 현장의 목소리가 나온다.


31일 은행권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전 산업분야에 걸쳐 '정규직화(化)' 바람이 불자 가장 고민이 깊어진 곳은 IBK기업은행이다. '기타공공기관'으로 분류되는 기업은행에는 변호사 등 전문직을 제외하고 현재 약 3000여명의 무기계약직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일선 영업지점에서 수신업무를 담당하는 창구직 직원이다.

문제는 이들 준정규직 인력 중 일부 고연차 직원을 중심으로 '정규직 전환이 싫다'며 거부하고 있는 점이다.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먼저 정규직으로 전환될 경우 기존 수신업무 외에 여신까지 업무 영역이 넓어지게 되는데 '뒤늦게 복잡한 대출업무를 위한 업무교육을 원치 않는다'는 주장이다.


또 기존 창구직은 별도 야근이 거의 없었는데 정규직 전환될 경우 근무시간이 늘어나는 데 대한 우려도 나온다. 육아를 해야 하는 '워킹맘' 직원의 경우 연장근로에 대한 부담이 클 수 밖에 없다.

근무 연한이 높은 일부 창구직원의 경우 '호봉제'를 적용받아 같은 업무를 하는 정규직보다 임금이 훨씬 높다는 점도 원치 않는 이유다. 정규직 전환으로 임금이 되레 낮아질 수도 있고, 기존에 없던 승진시험 등 부담도 더해지는 탓에 전환을 반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부의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방침에 발맞추려는 기업은행 측도 난감한 상황이다. 이미 지난해부터 노사 합의 하에 관련 정규직전환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으나 논의에 진척이 없는 상태다.


기업은행의 한 고위 관계자는 "정규직 전환 대상의 20% 안팎 직원은 이미 고임금을 받고 있는데다 신규 업무에 대한 부담이 커 스스로 거부한다"며 "은행이 강제로 전환할 수도 없고 난감하다"고 토로했다.


민간은행도 상황은 비슷하다. 이달 중순 시중은행 중 처음으로 "일반사무 전담직원 및 전담텔러(창구직원) 약 300여명에 대해 정규직으로 일괄 전환하겠다"고 밝힌 한국씨티은행도 일부 무기계약직과 정규직 행원이 '임금 역전' 된 상태여서 일괄 전환 가능성은 낮다.


씨티은행 노조 관계자는 "호봉제로 (임금을) 쌓다보니 별도 직군신설 없이 동일하게 전환될 경우 거부하는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며 "근속연수에 따라 급여에 대한 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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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권은 지난해 이 같은 '호봉제'를 뜯어고치기 위해 성과연봉제 도입을 시도했으나 노사 합의 없이 정부의 '밀어붙이기식 도입'으로 소모적 논쟁만 벌인 채 흐지부지됐다. 문재인 정부의 '정규직 전환' 방침도 현장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성적표'에만 급급하다가는 같은 결과를 초래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정규직 전환을 시켜준다고 해서 무조건 환영하리라는 것은 착각에 불과하다"며 "기업별 고용 체계가 상당히 복잡한 만큼 충분한 시간을 두고 세부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손선희 기자 shees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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