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나 보험회사 같은 기관투자자들은 연금 가입자나 보험 가입자들의 돈을 수탁 받은 수탁자이면서 동시에 그 돈으로 다른 회사의 주식을 소유한 주주라는 양면의 입장을 갖는다. 이들 기관투자자들은 원래의 주인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할 이른바 '수탁자 책무(fiduciary duty)'를 가지고 있다. 이제까지 수탁자 책무는 단기 투자 이익을 극대화시키는 것으로 이해됐고, 주주로서 기업 경영에 관여하는 일은 거의 무시됐다.
사실 여러 기업에서 부도덕하고 무책임한 행동으로 기업 가치가 훼손되고 그 결과 기관투자자들이 큰 손실을 입는 경우가 많았음에도 우리나라의 주요 기관투자자들은 자기들의 주주권 행사에 지극히 소극적이었다. 2015년도 주주총회 결과를 보면 경영진의 제안 안건에 대해서 국내 민간 기관투자자의 반대 비율은 1%, 국민연금도 10% 수준에 각각 머물고 있다. 주주로서 기업 가치를 높여 돈을 맡긴 고객의 이익을 도모해야 할 기관투자자들이 대상 기업 경영자의 거수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또 현재 특검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경우 당시 의결권 전문기관들의 반대 권유를 무시하고 합병 안에 찬성한 국민연금도 기관투자자의 수탁자 책무에 대한 무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당연한 일이지만 이 '원칙'의 도입에 대한 비판도 많다. 한편에서는 기업지배구조를 실질적으로 개선하기에는 너무 약하다고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기업의 경영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투덜대고 있다. 아직은 여러 미비점이 보이지만 이미 영국과 일본 등 세계 10여개 나라에서 채택하고 있고 투자 의사 결정에 '환경 사회 지배구조 (ESG)' 요소에 따른 위험을 반영하는 세계 추세에 비춰 보면 이번 코드 도입은 대단히 시의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국민연금 등 거대 기관투자자들의 참여 여부에 달려 있다. 새해를 맞아 우리나라 기관투자자들이 이번 코드에 전향적으로 참여해 금융과 기업의 지속가능하고 투명한 운영에 기여하고 금융소비자들의 이익이 충분히 보호되기를 기대한다.
양춘승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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