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다음 정권에서라도 뒤엉킨 남북관계를 풀어보기 위한 물밑 논의가 관료,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뤄지고 있다. 그런데 다음 정권은 누가 잡더라도 남북관계를 개선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론이 만만치 않다. 북한의 끊임없는 핵보유 시도와 이에 따른 국제사회의 고강도 제재 아래에서는 운신의 폭이 너무 좁기 때문이다. 사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도입 결정 등을 둘러싼 극심한 남남갈등 사례가 보여주고 있듯이 우리 사회에서는 북한 문제를 둘러싼 내부 갈등이 너무 첨예하다. 보수 정권들은 북한과의 대화나 협상을 통한 문제해결 시도보다는 정치적 리스크가 훨씬 적다고 판단되는 국제사회와의 공조를 통한 제재와 압박을 선호했다. 이는 가뜩이나 피포위의식(被包圍意識)에 사로잡힌 북한을 더욱 자극했고, 핵과 미사일로서 대응하게 만드는 악순환을 초래했다.
누구라도 핵을 개발하고 주민들의 인권을 유린하는 김정은 정권을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결단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핵개발과 인권유린 행위를 막기 위해서라도 북한 정권을 인정하는 것이 불가피해 보인다. 북한 정권은 고립이 심화될수록 생존 전략으로서 핵과 주민들의 노동력 착취에 더 의존할 것이기 때문이다. 불편한 진실이지만 제재와 압박은 핵과 인권 문제의 악화로 귀결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북한 정권을 먼저 인정하지 않고서는 실질적인 대화와 협상은 추진할 수가 없다. 상대를 섬멸하는 전략이 아니라 항구적인 평화 건설의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남북한이 해야 할 일은 어느 강대국의 논리에도 휘둘리지 않는 어느 정도의 자주적인 평화공존 메커니즘을 구축하는 것이다.
자주라고 해서 주변국과 결별한 상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남북한이 직접 만나 상호 평화공존을 약속하고 이것을 남북한이 주변국에 설명해 동의를 얻어 내는 것이다. 주변 국가들과의 관계를 탄탄한 우호의 반석 위에 올려놓아야 그 연장선상에서 대북정책의 성공이 가능할 것이다. 우선 북한의 추가적 핵개발을 막고 전쟁 등 심각한 안보위기를 피할 수 있는 신뢰구축 방안부터 논의해야 한다. 북한을 향해 분노하고 규탄하고 압박하는 것만으로는 해답이 나오기 어렵다. 이제는 정책적 합리성과 실리를 우선시하는 대북 정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해야 할 때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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