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에게 쓴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요구'
전태일 열사 46주기에 다시 읽는 그가 남긴 글
청계5가에서 청계6가 방향으로 걷다보면 청계천을 건널 수 있는 다리가 하나 있다. 이 다리 위에는 한 남자의 동상이 있다. 바로 앞의 평화시장에서 46년 전 분신해 숨을 거둔 전태일 열사다.
13일은 전태일 열사의 46주기다. 그는 1970년 11월13일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분신했다. 스물두 살의 청년은 왜 스스로 몸을 불사르며 이렇게 외쳐야 했을까. 17살부터 평화시장에서 일한 전태일은 어린 여공들이 열악한 작업장에서 폐병에 걸려 해고되는 것을 보고 노동운동에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전태일은 당시 평화시장 실태를 조사해 작업환경에 대해 이렇게 썼다. "시장 안의 구조는 현대식 3층 건물로서 1층은 점포, 2~3층은 공장임. 1만 명 이상을 수용하는 건물이면서도 환기 장치가 하나도 없으며, 더구나 휴식시간 오후 1시부터 2시까지에도 햇빛을 받을 장소가 없음." 그러면서 덧붙였다. "작업정도는 우리나라의 어떤 노동보다도 제일 힘과 정신이 빨리 피로해지는 노동임. 정신적, 육체적 최하 노동. 공임은 우리나라에서 여기보다 더 싼 데가 없음. 경영주들은 서로 경쟁을 직공들의 공임에서 함."
전태일의 꿈은 근로기준법 준수였다. 그는 1969년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일'이라며 "무엇을--제품계통에서 근로자를 위해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는 일, 누구와--제품계통에 종사하는 어린 기능공들과, 언제--1970년. 음력 6월달 이전에, 어데서-- 서울평화시장에서"라고 썼다.
1969년 12월 전태일이 근로감독관에게 쓴 편지에는 그의 절절한 호소가 담겨있다. "성장해 가는 여러분의 어린 자녀들은 하루 15시간의 고된 작업으로 경제발전을 위한 생산계통에서 밑거름이 되어 왔습니다. 특히 의류 계통에서 종사하는 어린 여공들은 평균 연령이 18세입니다. 얼마나 사랑스러운 여러분들의 전체의 일부입니까? 가장 잘 가꾸어야 할, 가장 잘 보살펴야 할 시기입니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어느 면에서나 성장기의 제일 어려운 고비인 것입니다. 이런 순진하고 사랑스러운 동심들을 사회생활이라는 웅장한 무대는 가장 메마른 면과 가장 비참한 곳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태일이 대통령에게 쓴 편지에 있는 요구사항들은 당시 열악한 노동환경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그는 "저희들의 요구는 1일 14시간의 작업시간을 단축하십시오. 1일 10시간~12시간으로. 1개월 휴일 2일을, 일요일마다 휴일로 쉬기를 희망합니다. 건강진단을 정확하게 하여 주십시오. 시다공의 수당 현 70원 내지 100원을 50%이상 인상하십시오. 절대로 무리한 요구가 아님을 맹세합니다.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요구입니다. 기업주 측에서도 충분히 지킬 수 있는 사항입니다."
하지만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고 1970년 11월13일 그는 누구도 지키지 않는 근로기준법을 들고 죽음을 선택했다. 그러면서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고 했다. 46년이 지난 지금은 얼마나 바뀌었을까. 여전히 우리나라의 노동환경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나라 중 가장 열악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올해 1월 발표된 2014년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전체 노동자의 연간 근로시간은 멕시코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저임금노동자 비중도 미국 다음으로 높았고 비정규직 노동자(임시직) 비중은 관련 통계가 있는 나라 중 4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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