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크 감수 않으려 안전투자 선호
-투자 목마른 벤처는 '울며 겨자먹기'
[아시아경제 권해영 기자] 벤처기업 A사는 지난해 국내 벤처캐피탈(VC)로부터 전환상환우선주(RCPS) 형태로 30억원을 투자 받았다. 사업 확장을 위해 자금이 더 필요했던 A사는 최근 미국 VC의 문을 두드렸지만 돌아 온 대답은 '노(No)'였다. 국내 VC가 선투자한 RCPS는 투자자가 원할 경우 원금에 이자를 붙여 채권처럼 회수가 가능한 '부채'나 다름없기 때문에 후순위로 투자하는 VC의 경우 투자 리스크가 크다는 이유로 투자 제안을 거절했다. 한 벤처기업 관계자는 "RCPS는 재무제표상 자본으로 잡히지만 실상은 부채라 추가투자를 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26일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국내 VC가 올해 8월말까지 신규투자한 1조2785억원 중 RCPS 투자액이 6529억원으로 집계됐다. 보통주 투자액(2255억원)의 약 3배에 달하는 수준으로 전체 신규투자 중 RCPS 비중은 51.1%를 차지했다.
국내 VC의 신규투자 중 RCPS 비중은 2012년 39.6%에서 2015년 42.1%, 올해 8월말 51.1%까지 확대되는 등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국내 VC업계가 신규투자시 RCPS 방식을 활용해 안전판을 마련하려는 경향이 점점 짙어지고 있는 셈이다.
다른 벤처기업 관계자는 "미국 등 해외 VC업계는 RCPS 투자 비중이 국내만큼 높지 않은데 국내 VC업계도 RCPS 투자 일변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내 VC업계가 벤처 투자의 기본인 리스크 테이킹을 기피하는 배경으로 전문가들은 국내 회수 시장이 성숙하지 않았다는 점을 꼽는다. VC들이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통로가 넓지 않기 때문에 안전한 RCPS 투자 형태를 선호한다는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세컨더리 마켓(중간회수 시장)' 활성화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박용린 자본시장연구원 실장은 "국내는 VC의 투자금 회수 시장이 해외처럼 활성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VC 입장에서도 안전장치 마련을 위해 RCPS 투자 방식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며 "인수ㆍ합병(M&A) 시장 등 세컨더리 마켓을 활성화하고 코스닥 IPO 등을 보다 원활하게 해 VC가 엑시트(exitㆍ자금회수)할 수 있는 통로를 확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국내 연기금이 투자 리스크를 적극적으로 감내하고 공격적인 투자에 나서 벤처기업 투자 활성화의 물길을 터줘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연기금은 저금리 시대에 투자 수익률 증대와 벤처 육성이라는 공공성 측면에서 적극적으로 투자 리스크를 감수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연기금이 안전성 위주의 투자 방식에서 탈피해야 연기금의 자금을 운용하는 VC 업계의 투자 문화도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권해영 기자 rogueh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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