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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詩] 단식광대에게/나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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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단식을 일종의 예술이라고 생각하나요?
당신의 무위는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아무것도 먹지 않는 것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
당신은 도망치고 있습니까?

삶으로부터
식어 가는 밥알과
미역국의 마늘 냄새로부터
링거액과 주삿바늘과 약봉지로부터
사랑하는 피붙이들과
호기심에 찬 눈동자들로부터
동전들과 지폐들로부터
즐겨 부르던 노래와
끝내 하지 못한 말로부터
어슬렁거리는 개들과
광장으로 몰려가는 사람들로부터
떠도는 비눗방울들로부터
꽃병에서 시들어 가는 몇 송이 꽃들로부터

도망자 야곱처럼
피난민으로 소년병으로 탈영병으로 필경사로 실업자로 도망치고 도망치고 도망치고 도망치고 도망치다 마침내 도망자의 삶을 완성하려는 당신
당신은 삶이 예술이 되는 순간을 정말 알고 있습니까?
단식은 당신이 택한 마지막 도망의 형식입니까?

그 출구가 당신의 눈에는 보입니까?

[오후 한詩] 단식광대에게/나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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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웃지 말자. 이 시는 그런 시가 아니다. 이 시에는 아무래도 저 카프카의 '어느 단식광대'가 배면에 깔려 있고, 성경의 어떤 끔찍한 사건이 그 위를 어슬렁거리고 있다. 그리고 시인의 글('그는 도망 중이었다')에 따르자면, 시인 자신의 근래 체험과, 그로부터 촉발된 생의 보편적 형식으로서의 '도망'에 대한 인식과, 한국시에 연면한 "예민한 영혼들이 현실 속에서 수납할 수밖에 없는 도망자의 운명"이 정말이지 묵직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그런 시다. 그런데, 그렇기는 하지만, 살짝 웃음이 나는 것도 사실이긴 하다. 시 때문이 결코 아니다. 시인에게는 참 큰 결례인 줄 잘 알고 있지만, 그런데도 좀 그러고 싶다. 부디 용서해 주시길. 여하튼 당분간은 그냥 좀 웃고 싶고, 그리고 솔직히 묻고도 싶다. "그 출구가 당신의 눈에는 보입니까?" 보였습니까? 참고로 이 시는 올해 일월에 발표된 시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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