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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석은 왜 이병훈의 코미디를 그렸나

최종수정 2016.09.17 20:41 기사입력 2016.09.17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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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 연출…조선 후기 지리학자 김정호의 삶 그려
"전체적인 분위기 침울해 코미디 필요…김정호, 전문가·지식인보다 개척자로 표현"

강우석 감독[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강우석 감독[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는 추석 특수를 누리지 못했다. 16일까지 누적관객 67만9034명. 박스오피스마저 4위로 내려앉아 반등이 어려워졌다.

이 영화는 신분, 가계 등 역사적 기록이 거의 없는 조선 후기 실학자이자 지리학자 김정호의 삶을 그린다. 뼈대는 박범신 작가(70)의 소설 '고산자(2009년).' 김정호의 지도 제작을 향한 열정과 조선 말기의 사회 분위기를 동시에 담는다. 그러나 전자는 '덕후', 후자는 코미디 무대에 가깝다. 몰입을 유도하려고 전반에 배치한 코미디 장치가 예능프로그램 '삼시세끼'를 대사에 인용할 만큼 섬세하지 못하다. '허준(1999년)', '상도(2001년)', '대장금(2003년)', '이산(2007년)' 등 이병훈 프로듀서(72)의 드라마에서 임현식(71), 이희도(61) 등이 선보인 애드리브 섞인 연기의 반복에 머문다. 그래서 이야기 구성은 헐겁고, 주제는 모호하다. 차승원(46)의 연기도 '선생 김봉두(2003년)', '이장과 군수(2007년)' 등 그가 출연했던 코미디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더구나 고산자, 대동여지도는 김정호가 가진 지리학자로서의 면면을 깊게 파고들지 않는다. 지도에 대한 전문성, 철학 등을 생략해 실학자로서 의미를 부각하는데 그치고 만다.
강우석 감독(왼쪽)과 배우 차승원[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강우석 감독(왼쪽)과 배우 차승원[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강우석 감독(56)은 "전체적인 분위기가 침울하다 보니 전반에 코미디가 필요했다. 관객이 '그냥 재미있는 영화네'라고 생각한 순간 큰 의미를 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가 많은 것을 놓치면서까지 나타내고자 한 것은 지도의 대중화에 깃든 민주주의다. 김정호가 각고의 노력 끝에 완성한 대동여지도를 흥선대원군부터 천민까지 모두가 모인 곳에서 펼쳐 보인다. 강 감독은 "김정호를 전문가나 지식인이 아닌 개척자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도를 만들려면 어마어마한 학식과 노력이 필요하다. 개척자의 모습이 잘 그려지면 나머지 면면도 함께 부각될 것 같았다"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박범신 작가의 소설을 뼈대로 삼았다.
"소설처럼 무겁게 다룰 생각은 없었다. 박 작가도 그러더라. "편안하게 그려 달라"고. 당부대로 만든 것 같다. 시사회를 마치고 만났는데 "조선 팔도의 풍광을 아주 멋지게 담았다"며 고마워했다."

팔도의 아름다운 풍광을 거의 초반에 몰아넣었다.
"김정호가 어떤 인물인지를 뚜렷하게 보여줘야 했다. 드라마의 몰입도 높여야 했고. 그래서 장엄한 음악과 함께 비교적 길게 편집했다. 그가 팔도를 돌아다녔다는 사료는 없다. 하지만 여정에 백두산, 마라도, 금강산 등을 꼭 넣고 싶었다. 이 곳들을 놓치면 후반 대동여지도를 펼치는 신에 감동이 덜할 것 같았다."
박범신 작가는 눈물을 보였다고 하던데.
"관료들이 지도를 짓밟는 신에서 그랬다고 한다. 김정호의 유년기를 많이 찍었는데, 모두 담았다면 더 큰 감동이 전해졌을 것이다. 지도에 집착하는 이유 등도 더 잘 나타났을 테고. 시간의 제약에 부딪혀 아쉽다."

강우석 감독(왼쪽)과 배우 차승원[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강우석 감독(왼쪽)과 배우 차승원[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차승원 등 출연 배우들이 김정호와 닮았다고 입을 모으더라.
"슬레이트에 '감독 강산자'라고 적어서 그럴 거다. 자료를 정리하다보니 김정호가 지도에 미친 사람인 것 같더라. 영화를 1/3가량 찍었을 때 스스로에게 '김정호처럼 영화를 찍어본 적이 있나'라고 물었다. 마냥 닮고 싶었다. 그래서 제작진에 "'강산자'라고 불러줘"라고 했다."

개봉 전 식민사관 논란이 있었다.
"영화를 만들면서 가장 조심한 부분이다. 대동여지도 원판이 발견된 1995년 이전만 해도 흥선대원군이 김정호 부녀를 옥사시키고 원판을 불태운 것으로 전해졌다. 원판이 발견되면서 그것이 역사왜곡이자 식민사관이 됐다. 그 전에 영화를 찍었다면 식민사관을 그대로 따랐을 것이다. 천만다행이다."

김정호를 조명하는데 있어 지리학자보다 실학자의 면면에 주목했다. 그러다보니 인간적인 모습에 치중한 느낌이 강하다.
"실학자의 면모를 제대로 드러내면 모두 해결될 것 같았다. 그래서 대사에 신경을 많이 썼다. "점 하나가 수십 리인데, 잘못 찍으면 사람 하나 잡는 거여" 같은 대사만 해도 말투는 투박하지만 그의 여러 가지 면을 보여준다. 흥선대원군 앞에서 "제 나라 백성을 못 믿으면 누굴 믿습니까"라며 자신의 소신을 밝히는 대사도 그가 어마어마한 학식의 소유자임을 짐작하게 한다."

강우석 감독[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강우석 감독[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이병훈 프로듀서의 사극에 나올 법한 코미디가 너무 많은 것 같은데.
"초반 50분을 최대한 가볍게 만들었다. 관객이 '재밌는 영화구나'라고 생각하다가 큰 의미를 얻고 돌아가길 바랐다. 그동안 여러 편을 연출했지만 재미가 없으면 관객이 못 버틴다. 이 영화처럼 내용이 침울하면 더 그렇다. 따지고 보면 김정호의 전문적인 면면을 아예 생략하지 않았다. 목판을 만드는 과정 등을 꽤 자세히 그렸다."

차승원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는 '삼시세끼' 대사에 많은 관객이 웃더라.
"촬영 당시만 해도 삼시세끼 고창 편이 계획되지 않았다. 차승원에게 "대중이 잊었을 것 같으니 서비스 차원에서 단어를 대사에 한 번 넣어보자"고 했다. 흔쾌히 허락해서 바로 응용했다.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셔서 다행이다."

이런 코미디는 독이 될 수 있다.
"엄숙한 영화가 아니다. "편안하게 보라"는 감독의 당부 정도로 받아줬으면 한다."

김정호의 파트너인 바우 역을 김인권에게 맡겼다.
"주위에서 하도 아이돌 출신 배우를 추천해서 짜증이 났다. 대동여지도를 말하는 영화에 그런 배우를 쓰고 싶지 않았다. 그들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마음이 끌리지 않은 거다. 내가 원한 것은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동생 같은 얼굴이었다. 뾰족한 생김새에 러브라인마저 육체적으로 이어질 것 같은 느낌의 아이돌에게 기회를 줄 리 만무했다. 김인권이 연기를 아주 잘 해줬다. 특히 마지막 신을 평범하고 투박한 얼굴로 잘 표현해서 구상했던 감동이 잘 전달된 것 같다."

강우석 감독(왼쪽)[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강우석 감독(왼쪽)[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김정호를 보다 진지하게 접근했다면 어땠을까.
"엄숙한 흐름은 나랑 안 맞는다. 감독마다 스타일이 있지 않나. 누가 내게 '곡성(2016년)' 시나리오를 주면 아마 도망갈 거다. '아가씨(2016년)' 같은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면 이민을 갈 테고. 다른 감독들도 다르지 않다. 원래 '실미도(2003년)'의 메가폰을 다른 감독에게 주려고 했다. 그런데 약 스무 명이 모두 거절하더라. 자기 스타일이 아니었던 게다."

'공공의 적(2002년)', 실미도 등의 구성이 여전히 충무로에서 재현된다. 그래서 제자리걸음이라는 인상을 주고.
"어디 공공의 적뿐인가. 23년 전 '투캅스(1993년)'와 흡사한 영화들도 많이 나온다. 가끔 내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다. 한때 다양한 스타일의 감독들이 등장했지만 언제부턴가 흐름이 뚝 끊겼다. 후배들이 박찬욱(53)처럼 뚝심 있게 한 길만 파고들었으면 한다."

대중이 당신에게 기대하는 작품은 '공공의 적' 후속편이 아닐까 싶다.
"당연히 만들 것이다. 코미디를 향한 갈증이 심해졌다. 제작에 들어간다면 주인공 강철중은 무조건 설경구(48)에게 맡길 거다. 그게 안 된다면 감독을 바꿔야 할 거다. 내가 다른 배우를 택한다면 부도 직전에 하는 돈벌이에 지나지 않을 테니까."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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