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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1000미터 막장인생 '15만원 월급'의 분노 폭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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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그사람 - 36년전 오늘 사북사태, 그리고 난쏘공의 작가 조세희

사북의 광부들 (출처 : 침묵의 뿌리)

사북의 광부들 (출처 : 침묵의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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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정선군 사북읍. 카지노의 휘황찬란한 불빛이 거리를 비추고 일확천금을 좇는 사람들이 부나방처럼 모여드는 곳이다. 하지만 36년 전 사북은 지금의 화려함과 거리가 멀었다. 사북은 검다 못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것 같았던 탄광촌이었고 탄진을 들이마시면서도 가족의 생계를 위해 괭이를 들어야 했던 광부들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목숨을 걸고 지하 1000미터 갱도에서 채탄을 했다. 가족들이 기다리는 단칸방과 고된 노동 뒤 동료들과 나눠 먹는 돼지비계에 찬 소주 한 잔이 유일한 낙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목숨 값은 너무 쌌다. 그리고 1980년 4월 '사북사태'가 일어났다.

21일은 36년 전 사북사태가 발생한 날이다. 방현석이 19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우리나라 노동운동의 발자취를 정리한 책 '아름다운 저항'은 한 단락을 할애해 이날의 사북항쟁을 설명하고 있다. 이 책에 따르면 사북의 23개 광구에서 연간 전국 채탄량의 11%에 해당하는 230만 톤의 석탄을 캐냈던 동원탄좌의 노동자들이 그 때 받은 월 평균 임금은 15만5000원이었다.
광부들은 탄광이라면 반드시 있어야 할 목욕탕이 없어서 작업복을 입고 그대로 퇴근했고 사택은 방 하나, 부엌 하나가 전부였다. 화장실은 30, 40세대가 함께 공동변소를 사용해야 했고 물은 공동 수도에 의존하고 있었다고 한다. 생필품은 사주의 친척이 운영하는 유일한 가게에서 시중보다 비싼 값으로 구입해야 했다. 회사는 외부로 나갈 수 있는 버스 노선을 일부러 없애버렸다. 광부들의 근무실태와 생활은 암행독찰대라고 불리는 비밀조직에 의해 감시받았다. 이 와중에 회사는 채탄량을 고의로 줄여 임금을 삭감했고 어용노조는 회사와 결탁하여 조합비를 남용했다.

문제는 임금 인상 과정에서 불거졌다. 전국광노는 79년 민영탄광의 광부 평균임금 15만5700원을 5인 가족 최저 생계비인 24만1200원으로 끌어올리기로 하고 42.17%의 임금 인상을 결의했다. 하지만 동원탄좌 노조지부장은 독단으로 회사와 20%의 임금인상 협정을 맺었다. 이에 분노한 광부들의 항의와 집회가 파업으로 이어졌고 가족들까지 동참해 진압에 나선 경찰과 격렬한 투석전을 벌이면서 사북읍 일대를 장악했다. 노조원들이 어용노조 지부장의 부인을 린치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결국 파업에 참가한 70여명의 광부와 그 가족이 연행됐고 그 중 25명이 군법재판에 회부됐다. 하지만 사북사태는 일신제강, 부산 파이프 등 중화학 노동자들의 연쇄 파업을 가져왔고 그해 5월 광주민주화운동의 도화선이 됐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쓴 소설가 조세희는 당시 사북을 카메라에 담았고 이 사진들이 실린 '침묵의 뿌리'를 펴냈다. 그는 사북에서 일어난 일을 알게 됐을 때 주변의 사진가들에게 그 현실을 담아주길 부탁했다. 하지만 아무도 사북에 가려하지 않았고 결국 그가 처음 산 사진기를 들고 사북을 찍어야 했다고 한다. 36년이 지난 지금 탄광은 쇠락해 문을 닫았고 사진에 담긴 광부들도 모두 어딘가로 흩어졌다.

시간이 지난 만큼 세상은 좋아졌을까. 조세희는 침묵의 뿌리에 이렇게 썼다. "우리 시대의 희망이 한 쪽으로 몹시 기울어져 있는 일을 나는 슬퍼한다. 능력 있는 사람, 많이 배운 사람, 똑똑한 사람, 힘 센 사람, 많이 가진 사람, 적당하게 가진 사람들이 협력해 우리시대의 문제를 바로 짚기만 한다면, 우리는 그 좋은 희망이 여러 곳으로 퍼져 나가는 것을 지금 당장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국민학교에 갓 입학한 어린이까지 아는 민주주의를 더 이상 파괴하지 않으면서 고통 받는 다수를 소수 쪽으로 옮겨놓는 일이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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