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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광대형 작가"…민중미술 1세대 주재환 회고전

최종수정 2016.03.11 20:17 기사입력 2016.03.11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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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환 작가

주재환 작가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오래된 양은 냄비 속에 돌맹이들이 들어 있다. 상단에는 영국작가 데미안 허스트의 '해골' 작품이 엽서만한 종이에 담겼다. 여기엔 다이아몬드가 빼곡하게 박힌 '해골'의 작품 설명과 함께 918억5000만원이라는 작품가격이 쓰여 있다. 냄비 아래쪽 글귀에는 브라질 북부 판자촌 이야기가 적혀있다. "주부들은 저녁이면 냄비에 돌을 넣고 물을 끓이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다. 어머니들은 배가 고파서 보채는 아이들에게 '조금만 기다리면 밥이 될 거다'라고 말하면서, 아이들이 기다리다가 그냥 잠들기를 바라는 것이다." 자본이 최고의 권력이 된 시대, 작가는 적나라한 대비로 인간의 탐욕을 상기시킨다.

가로로 긴 세 개의 작품이 아래로 나란히 걸려 있다. 전쟁으로 폐해가 된 지구의 곳곳. 영화 '피아니스트'의 장면들을 차용했다. 하늘에는 UFO와 헬기가 날고 있다. 베트남전쟁 때 분신을 통해 평화를 외친 한 스님의 모습과 우리나라 국보 반가사유상이 마주하는 모습도 보인다. 서울 종로 파고다공원 인근 일렬로 들어선 점집들을 덧붙이기도 했다. 인간이 야기한 재난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무기력함이 스며들어 있다. 지난 2005년 국회 앞에서 전시되기도 했던 작품. 층층이 쌓아 올린 빨랫대 그리고 그곳에 매달린 수없이 많은 패트병과 깡통. 그 앞엔 물이 담긴 표주박이 생경하게 놓여있다. 자연과 인공의 대비다.
모두 민중미술 1세대 작가 주재환(76)의 작품들이다. 그는 민중미술계열 작가들 중 누구보다 설치작품을 여럿 보여주고 있다. 사회적 메시지와 풍자가 다분하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1000원 예술'이라 칭하고, 스스로를 '광대형 작가'라 부른다. 그저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재료나 폐품을 가지고, 다양한 방식으로 작업하기를 즐겨해서다. 독특하지만 비판적인 시각, 우리네 현실을 톺아보게 하는 힘을 가진 그의 작품들에선 어떤 해방감이 느껴진다.

현기증 시리즈 작품, 2012년.

현기증 시리즈 작품, 2012년.


물vs물의 사생아들, 2005, 빨랫대, 캔, 패트병, 실, 가변설치

물vs물의 사생아들, 2005, 빨랫대, 캔, 패트병, 실, 가변설치


짜장면 배달, 2003년, 판화, 52x42.5cm

짜장면 배달, 2003년, 판화, 52x42.5cm


현실과 발언 창립전 출품작 확대 복사, 2000, 태풍 아방가르호의 시말(1980년 창립전), 81x136.3cm

현실과 발언 창립전 출품작 확대 복사, 2000, 태풍 아방가르호의 시말(1980년 창립전), 81x136.3cm


작가 주재환은 예순이 돼서야 첫 개인전을 가졌다. 지금까지 숱하게 작업을 해왔지만, 개인전은 불과 아홉 번에 그친다. 그런 그가 이번에 열 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작품 50여 점으로 꾸린 회고전 형식의 전시다. 전시를 개최한 학고재갤러리 관계자는 이번 전시 의도를 "한 예술가의 작품 세계를 그의 삶과 그가 살았던 시대와 완전히 분리해서 이해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작품을 이러한 맥락 속에서만 이해하는 것은 작품의 의미를 부분적으로 규정하는 오류를 범하게 한다. 이번 전시는 더욱 넓은 의미에서 미학적으로 주재환의 작품 세계를 바라보고자 하는 시도"라고 했다.

전시 주제는 '어둠 속의 변신'이다. 작가에게 '밤'은 사회 질서와 규율 밖에 존재하는 예술의 존재 방식이 드러나는 미학적 공간이다. 이성, 질서, 규율의 의미를 상징하는 '낮'과 반대하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오랫동안 일상과 예술을 파괴하고, 일상에서 익숙한 것에 새 의미를 부여해 온 작가의 작품 세계를 만나볼 수 있다.
서울 토박이인 주재현은 중학교 시절 반 고흐에 반해 미술가로써 꿈을 키웠다. 그 시절의 작가를 기억하는 친구는 '너는 귀 언제 자를 것이냐'며 지금도 농을 던지곤 한다. 1960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 입학했다가 한학기만에 중퇴했다. 그는 "그때 한학기 등록금이 9800원이었다. 꽤 비쌌다. 학비때문에 졸업안한 친구들이 많았다"고 회고했다.

이후 작가는 20년간 미술과 상관 없는 다양한 직종을 전전했다. 20대에는 피아노 외판원, 창경궁 아이스크림 장사꾼, 파출소 방범대원 등으로 일했다. 30대에 들어 민속학자 심우성을 도와 잡지사, 출판사 일을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 사회 현실을 읽을 수 있었다. 더불어 문화예술계 인사들과 어울림도 많았다. 대학로 학림다방, 르네상스, 명동 은성, 송석 등 다방과 술집이 주로 모이는 장소였다. 대학교 선후배부터 미술평론가 이일, 시인 김수영 등을 만났다. 작가는 1970년대 초반 김인환이 운영했던 광화문 술집 쪽샘에서 작은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그의 본격적인 작품 활동은 1979년 사회비판적인 미술인 단체 '현실과 발언' 창립에 참여하면서부터다. 1980년 창립전에 작품을 출품했다. 이 시기 역사적, 정치적 주제와 연관있는 작품들을 남겼다. 이후 그는 작가로서 또한 진보적 지식인, 활동가로서 살아왔다. 1986년 장준하 선생 새긴돌 건립일, 1990년 4.19혁명 30주기 기념행사를 꾸리는 데 힘을 썼다. 1990년대 들어서는 자본구조에 대한 비판을 주제로 한 작품을 발표했다. '미제점 송가', '짜장면 배달', '쇼핑맨' 등이 대표작이다. 2000년대 그의 작업들은 보다 활발해진다. 2001년 아트선재센터 개인전 '이 유쾌한 씨를 보라', 2007 대안공간 사루비아 다방 개인전, 2003 제 50회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전 등에서 작품을 보여줬다.

전시는 다음달 6일까지. 서울 삼청로 학고재갤러리 본관. 02-720-1524~6.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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