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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국민의당 송기석 "민주화의 성지 광주서 희망의 횃불 들어 구태정치 청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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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당 광주 서구갑 국회의원 예비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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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생정치가 '사람을 살리고 나라를 바꾼다.'는 생각에 정치 입문
참신한 새인물…"희망의 길로 선도하는 정치인이 되겠다." 강조


[대담 아시아경제 문승용·박선강]"희망을 선도할 수 있는 조그마한 능력이나 역할이 있다면 어디라도 찾아가 봉사하고 싶은 게 소망이다."
4·13총선 광주 서구갑에 출마한 국민의당 송기석 국회의원 예비후보는 억울한 사람들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고 싶고, 그들을 위해 '희망의 길'로 선도할 수 있는 것이 민생정치라고 판단해 출마를 결심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송기석 후보는 전남 고흥의 한 시골 마을 농부의 아들로 1963년 10월 28일 태어났다. 6남1녀 중 막내인 송 후보는 넉넉지 않은 가정형편에도 밝고 명랑하게 유년시절을 보냈다. 인성도 나무랄 데 없이 곧게 성장했고 20여 년 간 법관으로 재임했다.

그가 법조인의 꿈을 갖게 된 동기는 부모님의 억울함 때문에서 비롯됐다.
송 후보의 부모님은 공유수면 매립과 관련해 옆 마을 주민들과 분쟁이 일어났고, 이로 인해 부모님이 많은 금액을 변상해야 했다. 유년시절 송기석은 왜, 무엇 때문에 많은 금액을 변상해야 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 당시 부모님의 억울한 마음을 풀고 싶던 강한 마음이 생겨났고 이 때문에 송기석은 법조인이 돼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해야겠다.'는 뜻을 품었다. 고흥에서 초·중·고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 송 후보는 전교 1~2등을 놓치지 않는 우수한 학업성적으로 지역에서 영재로 통했다고 한다.
송기석 예비후보가 최근 민생현장 탐방에서 초등학생을 만나 새끼 손가락을 걸어 무언가를 약속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사진=송기석

송기석 예비후보가 최근 민생현장 탐방에서 초등학생을 만나 새끼 손가락을 걸어 무언가를 약속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사진=송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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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유년시절 마음속에 품었던 뜻을 실천하기 위해 1981년 전남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했으나 1983년 미등록으로 제적됐다. 가정형편상 등록금이 부담이 됐기 때문이다.

이듬해인 1984년 5월 육군 제15사단에 입대해 1986년 11월 병장으로 만기 전역했다.

3년 뒤인 1989년 한양대학교에 입학하려했던 그는 건국대학교에서 전액 장학금과 기숙사제공, 생활비 등을 지원한다는 러브콜로 그해 3월 법과대학에 입학했다.

그러나 송 후보가 법대를 졸업하기까지는 많은 역경을 견뎌내야 하는 어려운 시기도 있었다. 학교측에서 제공한 비용으로는 생활비 등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부모님에게 손을 빌릴 수도 없는 처지라 학자금 대출을 받아야만 했다. 또한 오랜 기간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며 대학시절을 힘겹게 지내야 했다.

이 당시 그는 "장학금이 없었다면 학교도 못 다녔을 것이다"며 "건국대학교 시절 학비와 기숙사비, 생활비를 지원해 준 장학제도 때문에 졸업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건국대를 졸업한 1993년에는 겹경사가 생겼다. 1993년 제35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데 이어 현재의 배우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렸기 때문이다.

96년 사법연수원을 마치고 판사로 임관한 송 후보는 "적어도 억울한 사람은 없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늘 가슴속에 묻어 두고 판결에 이르기까지 피의자의 의견을 듣고 서류를 면밀히 검토하는 일을 20여 년 간 반복해 왔다.
송기석 예비후보가 최근 민생현장 탐방에서 야채를 구매하고 있는 어르신을 만나 덕담을 나누고 있다. 사진=송기석

송기석 예비후보가 최근 민생현장 탐방에서 야채를 구매하고 있는 어르신을 만나 덕담을 나누고 있다. 사진=송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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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관으로 재임하면서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는 대표적 판결은 지난해 10월29일 1981년 용공 누명을 쓴 '광주 횃불회 재심사건'에서 무죄를 선고, 33년 만에 관련자들의 명예를 회복시켰다.

송 예비후보는 "선고한 판결 중 사회적으로 상당한 의미가 있는 판결이었다"며 "사법부를 대신해 피고인들과 가족들에게 사죄와 용서를 구한 흔치 않는 경험 때문에 개인적으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밝혔다.

송 후보는 수사기관의 고문 등 불법행위를 정면으로 인정, 무죄를 선고했다.

송 후보는 또 "비록 33년 만에 명예가 회복됐다고 볼 수 있지만, 저는 과거 재판 당시 피고인들이 재판부에 불법 체포 등을 애타게 호소했었는데, 그 같은 주장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은 사실이 후배 법관으로서 부끄러워 지난날의 사법부 과오에 대해 사죄를 구했다"고 말했다.

더욱이 그는 2008년 1000여명이 공동으로 국가와 공기관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도 의미있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이 사건은 1998년 '영산강 하구원 둑' 건설로 바닷물과 오·폐수가 역류해 인근 지역주민들의 집 안까지 밀려들어가 발생한 피해소송이다. 10여 년 간 지체돼 왔던 사건이기도 하다.

이 당시 주민들은 하구원 둑 건설 이전에는 백중사리 때 만조가 되더라도 해안가 지대에 바닷물이 넘어서 배수구로 역류현상이 일어나지 않고 둑을 넘어서 들어오지 않았으나, 영산강 하구원 둑 건설 뒤 백중(만조) 때만 되면 집 안 방바닥까지 바닷물이 들어온다. 오폐수도 역류가 돼서 침수된다는 것이었다.

이에 주민 1000여명은 국가와 농어촌공사, 건설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했다.

워낙 쟁점도 복잡하고 원고도 많아 재판부들이 열심히 심리한다고 했는데도 마무리가 안돼 10년 이상 지체됐다.

그러나 그는 영산강 하구원 공사와 만조시 수위가 침수와의 연관성이 있는지 중점적으로 조사를 벌였고 인과관계를 찾아냈다. 실제로 하구원 둑이 막혀 바닷물이 배수관을 타고 역류해 주민들에게 피해를 줬다는 결론으로 판단했다.

원고 1000여명의 주민등록과 실거주자를 선별하는 작업을 한 달 정도 거쳐 농어촌공사의 책임을 인정, 원고들에게 위자료 100~1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송기석 예비후보가 최근 민생현장 탐방에서 길거리 상인을 만나 덕담을 나누고 있다. 사진=송기석

송기석 예비후보가 최근 민생현장 탐방에서 길거리 상인을 만나 덕담을 나누고 있다. 사진=송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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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뿐만이 아니다.

여수 GS칼텍스 우이산호 사건으로 여수 앞바다가 원유 유출로 많은 피해를 봤을 당시 도선사의 과실을 물어 금고 2년을 선고하기도 했다.

대형 선박의 경우 도선사로 하여금 접안하는데 도선사가 감속을 소홀히 했던 것으로 파악했다. 도선사의 직업은 일반 직업보다 더 큰 주의의무와 고도의 주의의무가 필요한 데도 주의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과실을 인정, 이례적으로 과실범에게 2년이라는 실형을 선고하기도 했다.

안타깝거나 억울할 법한 일들은 이 후에도 간혹 발생했다. 그럴 때마다 그는 법정까지 와서 억울함을 호소하는데 법정을 오지 않고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고민에 빠져들었다.

"법정에 오느니 꾹 참겠다."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들의 목소리에 더 귀 기울이고 싶었다는 그는 2015년 12월 말 즈음에 "평생 법관이냐 새로운 길이냐?"를 10여 일 동안 고민했다.
송기석 예비후보가 최근 민생현장 탐방에서 유권자를 만나 악수를 나누며 덕담을 나누고 있다. 사진=송기석

송기석 예비후보가 최근 민생현장 탐방에서 유권자를 만나 악수를 나누며 덕담을 나누고 있다. 사진=송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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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석 후보는 "'새로운 길을 선택하자.'는 결심이 섰을 때는 새로운 정당(국민의당)이 탄생한 뉴스를 접했다"며 "2016년 1월1일 순천만에서 떠오르는 해를 보며 민생정치가 '사람을 살리고 나라를 바꾼다.'는 생각에 정치에 입문했다"고 밝혔다.

2016년 정치에 입문한 새내기 정치인 송기석 후보는 현재 밤늦은 시간까지 유권자들을 만나며 민생탐방을 이어가고 있다.

하루 평균 수면 5시간. 고단한 일정에도 5시간의 숙면이면 몸이 가뿐해진다는 그는 사무실에서 근무할 때 느끼지 못했던 것을 현장에서 많이 느낄 수 있어 하루하루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현장에서의 '힘내라'는 유권자의 말 한마디가 큰 힘이 되기도 한다는 그는 지난 일요일 한 교회에서 과거 사건에 대해 무죄판결을 받았던 분이 '고맙다'고 건넨 말 한마디에 "피로가 풀리기도 하더라"며 "응원의 힘이 이렇게 클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기도 했다는 것.
송기석 예비후보가 최근 민생현장 탐방에서 노인복지관을 찾아 급식봉사를 하고 있다. 사진=송기석

송기석 예비후보가 최근 민생현장 탐방에서 노인복지관을 찾아 급식봉사를 하고 있다. 사진=송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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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또 "선거운동을 통해 깨닫고 성숙해져가고 있는 것 같다"며 "더불어 함께 잘살려면 먹고 사는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하고 사각지대라는 말보다 앞서 정책이나 행정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는 게 먼저인 것 같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폐지를 줍는 어리신들, 노숙하는 사람들의 근본적인 문제를 그들의 시선에 맞춰 정책을 만들고 관련 법을 재·개정하는 것이 민생정치라고 생각한다"며 "국회에서 이 같은 서민들의 고충을 해결하는 참신한 정치인이 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송기석 후보는 "20년 이상 법관으로 재임하면서 형사, 행정, 가사 등의 사건을 많이 해결해 봤기 때문에 누구보다 더 해결능력이 뛰어날 것"이라며 "누가 뭐래도 참신하고 희망을 선도하는 새 인물"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미래의 가능성이 풍부한 인물이다"며 "지역사회를 넘어 대한민국의 큰 일꾼으로 역할을 하고 싶은 것이 소망이다"고 피력했다.

특히 "지역민들의 실망감을 희망으로 전도해 총선 승리와 정권교체를 이루는 데 기여할 정치인으로 성장하고 싶다"며 "민주화의 성지 광주에서 희망의 횃불을 들어 사람을 바꾸고, 정당을 바꾸고, 구태정치를 청산하는 대장정에 광주시민들께서 함께 해 주실 것을 믿는다"고 밝혔다.

송기석 후보는 전남 고흥에서 태어나 고흥남양서초, 제일고등공민학교, 고흥영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건국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했다. 177cm의 훤칠한 키를 자랑한다.

육군 병장을 만기 전역한 그는 대학교수인 배우자와 2남의 자녀를 두고 있다. 취미는 등산을 즐겨한다.

1993년 제35회 사법시험 합격한데 이어 1996년 2월 사법연수원(제25기)을 수료, 1996년 광주지방법원 판사로 임관 후 목포지원, 가정지원, 광주고등법원에서 근무했다.

2007년 8월부터 2008년 2월까지 미주리대학교 국제경제연구소 연수를 마치고 2011년 2월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 부장판사, 2013년 광주지방법원 부장판사를 역임했다.

전남 함평군, 화순군, 보성군, 장성군, 광주광역시 북구 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으로도 역임했다.



문승용 기자 ms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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