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어떤 시골목사가 새끼를 못 낳는 소에게 정성을 다해 성경을 읽어줬더니 진짜 새끼를 낳는 기적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소가 성경을 알아들었단 말인가. 성경을 알아듣는 소라면 불경이나 코란인들 못 알아들을 리 없다. 경전을 알아듣는 소라면 인간의 말이나 갖가지 소통체계 따위도 알아듣지 못할 리 없다.
예전에 어느 친구가 영어회화 공부를 일주일간 열심히 했더니 영어가 들리기 시작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놀란 얼굴로, 그렇게 단기간에 가능하냐고 다시 물었더니, 그냥 들리기만 할 뿐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더라고 말한다.
우스개이지만 우리가 듣는다고 말할 때, 단순한 청각적인 수용과 인식적인 수용이 모두 포함된다는 사실을 환기시켜주는 예화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쇠귀에 경 읽기'란 속담. 쇠귀에 경을 읽으면 효과가 없다는 게 속담의 취지이지만, 나는 그 말이 틀렸다고 생각한다. 시골목사의 경 읽기가 통한 까닭은, 경의 내용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경을 읽는 사람의 목소리에 실린 마음과 기운이 통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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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는 경을 해석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읽는 사람의 마음에 감응하여 어떤 결과로 나아간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완전한 소통인지 모른다. 우리가 같잖은 문자니 언어들로 소통을 자부하지만 실은 그보다 더 크고 훌륭한 소통이 이미 있었는지 모른다.
신영복선생이 왜 '쇠귀'란 호를 썼을까. 쇠처럼 단단한 귀이기도 하지만, 저 경 읽기의 역설도 포함하고 있지 않을까. 외숙모는 늘그막 몇 십년을 거의 절간에서 살았다. 외숙모도 거의 그렇지만, 수십년 동안 절에서 불경을 외워온 보살들은 그 불경이 무슨 의미인지 알지 못한다. 그런데 그것을 읊기만 하여도 효험이 있다고 절에서는 말한다고 한다. 이거야 말로 쇠귀에 경 읽기가 아니겠는가. 그래도 그들은 만족하며, 뜻하는 바를 훌륭히 이룬다. 이게 무슨 뜻이겠는가. 아무 것도 모른다 해도, 마음을 다해 무엇인가를 읽는다는 것. 그것. '쇠귀에 경 읽기' 속담처럼 꼭 헛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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