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목표]물가 적정수준 끌어올리기, 한은 플레잉코치로 뛴다
[아시아경제 이은정 기자] 한국은행이 중기물가목표치를 2% 단일목표치로 잡은 것은 경기 방어를 위해 물가를 적정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강력한 의지로 해석된다. 한은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7% 안팎에 머물며 디플레이션 우려가 나왔을 때만해도 석유 등 소수품목이 물가하락을 주도하고 있다며 물가정책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그러나 0%대의 저물가로 경제외형의 정체가 심각해지자 2% 단일목표치 방식의 중기물가목표치를 설정, 정부의 경기 부양책에 힘을 보태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목표치 달성을 무리하게 물가를 끌어올린다면 서민삶이 위협받게 되는 등 부작용도 우려되고 있다.
◆물가관리로 경기 방어 총력전= 이번에 설정된 중기물가목표치는 정부가 목표로 삼고 있는 내년 경상성장률 4.5%를 달성하겠다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정부가 내년 경제성장률을 3.1%로 잡고 있는 만큼 국내총생산(GDP) 디플레이터가 나머지 1.4%포인트의 몫을 채워야 4.5%의 목표치를 달성 할 수 있게 된다.
이를 위해서는 물가를 적정 수준으로 끌어 올리는 것이 필요한데 '잃어버린 20년'을 경험한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일본 경상성장률은 1980년대 평균 6.0%였으나 1990년대 2.0%로 추락했고, 2000년대에는 -0.7%를 기록했다.
우리의 경우 일본과 비슷한 흐름을 보이고 있으며 특히 경상성장률이 실질성장률에 비해 둔화속도가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 실질성장률이 2000~2007년 평균 5.4%에서 2012~2015년 평균 2.8%로 2.6%포인트 떨어진 데 비해 경상성장률은 같은 기간 평균 7.7%에서 4.0%로 3.7%포인트 하락했다. 특히 2012년 이후에는 구조적ㆍ경기적 요인 등으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크게 낮아졌고, GDP 디플레이터 상승률도 함께 둔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물가목표제 한은 독립성 논란 재연‥서민 부담도 키울 듯= 하지만 한은이 제시한 중기물가목표제가 중앙은행의 독립성 문제를 둘러싼 논란으로 확산될 소지도 있다. 한은은 이번 중기물가목표제 결정 과정에서 실제 물가가 6개월 연속 목표치에서 ±0.5%포인트 초과해 벗어나면 총재가 이에 대해 직접 설명하도록 책임 의무를 높였다. 이 규정대로라면 내년 6월까지 소비자물가상승률이 한번도 1.5%를 넘지못한다면 한달 뒤 총재가 공개 석상에서 이탈원인에 대한 설명을 해야 한다. 유가가 바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저물가 흐름이 고착되고 있는 상황에서 총재의 설명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재의 설명책임의무를 의무화한 것은 기획재정부 등의 상부 주문이나 지시에 의한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어서 한은의 독립성 논란이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이같은 설명책임은 현재 이를 시행하는 다른 국가들 보다 더 엄격한 수준이다. 현재 물가안정목표제를 채택하고 있는 32개국 가운데 설명책임을 시행하는 나라는 영국, 이스라엘, 아이슬란드, 터키, 세르비아, 인도 등 6개국에 그치는데 이들 국가도 이탈 허용 범위를 ±1.0∼±2.0%포인트로 넓게 설정해 두고 있다. 국가별로는 영국ㆍ이스라엘 ±1%포인트, 아이슬란드ㆍ세르비아±1.5%포인트, 터키ㆍ인도 ±2%포인트 등이다.
저물가 탈피에 초점 맞춘 물가안정목표가 서민들의 주머니를 더욱 팍팍하게 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민들의 주머니를 털어 경상성장률을 맞추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중기물가목표치에 맞춰 정부가 내년도 경제정책방향에서 실질성장률과 경상성장률을 병행해 관리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 자체가 당분간 물가를 내리는 쪽이 아닌 일정 목표 수준까지 올리는 쪽으로 정책을 이끌겠다는 의미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윤석헌 숭실대 금융학부 교수는 "지금의 저물가 기조는 석유가 하락 때문으로, 장바구니 물가는 지금도 오르고 있다"며 "극심한 경기침체 속에 경상성장률을 맞추기 위해 0%대인 물가를 무리하게 2%대까지 끌어 올리면 서민들의 사정은 더 나빠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