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운세풀이 얕보지마…100개 독파 체험기
[아시아경제 박충훈 기자]어린 시절부터 신문을 보면 늘 등장하던 코너가 있었다. 석유 냄새 풀풀 나는 조간신문을 한 장씩 슥슥 넘기다 "으흠…. 어디 한 번…"이라며 훑어보게 만들던 코너. 생년만 알면 하루 일진을 알 수 있는 간편함. "지인과 사이가 틀어짐을 조심"이라는 둥 작은 해프닝이 생길 때마다 어쩐지 기억 속에서 툭툭 불거지던 짧은 문구. 맞으면 용하고 아니면 "대한민국 천지 용띠가 몇 명인데"라고 가볍게 무시할 수 있는 여유. 바로 오늘의 운세다.
그런데 근 서른 몇 해 동안 궁금해오던 게 있었다. 모든 신문에 실리는 오늘의 운세를 모두 합해 보면 한사람의 하루 운세가 좀 더 디테일해지진 않을까? 당연히 어릴 때는 신문을 사서 볼 돈이 안 되고 설사 돈이 있더라도 이런 허접한 연구에 생돈을 날릴 수는 없었다. 요즘에야 신문 스크랩 서비스를 통해 여러 매체에 실린 오늘의 운세를 몰아볼 수 있지만 바쁜 현대인의 한명으로 살고 있는 내가 그럴 여유는 없지.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
오늘 나는 문득 불거진 이 오랜 의문에 지고 말았다. 짬을 내 이 위대한 도전을 감히 시도한 것.
14일자 조간에 실린 오늘의 운세를 종합했다. '운세'라는 키워드로 검색한 '12간지 운세풀이' 지면 코너는 총 56건. 띠 하나당 최대 6개의 연도별 풀이가 있으니 56 곱하기 6 곱하기 12를 하면 총 4032개의 운세풀이가 나온다. 이 많은 데이터를 한 번에 수집 분석하다간 신문 속 운세풀이가 오늘 여러분이 겪을 행·불운과 맞는 지 비교하기도 전에 하루가 속절없이 흘러갈 것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잘 나간다는 조간 신문들의 운세풀이만 골라 모두 뜯어보았다. 엑셀 데이터베이스로 정리하니 다양해 보이던 띠별, 생년별 운세풀이가 한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이것 참 쓴맛이다. 12마리 동물이 돌리는 운명의 수레바퀴 안에서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갈팡질팡한다는 것이다. "자존심이 상하더라도 대들지 말고 대세를 따라야 하는 굽신굽신 라이프를 살아야 하지만, 잃는 것보다 얻는 것 많을 듯 하니, 그걸로 위안을 삼을 수 밖에. 그렇게 팍팍하게 주어진 현실을 잘 살리도록 신중해야 하며, 모든 것은 때가 있는 법이니 우울한 마음은 곧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고 한순간 방심하다간 무언가가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게 2015년 12월 14일(음력 11월 4일 갑자) 내 운명의 요약본이다.
다른 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희비쌍곡선이 하루에도 몇 번씩 교차한다. 72년 쥐띠는 힘든 하루 사소한 시비를 주의해야 하지만, 위에서 밀어주고 아래서 끌어주니 일할 맛이 난다. 각 운세풀이가 정반대인 것처럼 보이지만 또 엮어 내다보면 묘하게 아귀가 맞는다. 재밌는 것은 1920~1950년대 노년층의 경우 후배와 자식들에게 사랑을 베풀 것을 강조하는 운세가 많고 한창 일할 나이인 30~50대는 업무와 관련된 운세풀이가 많다는 점이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20대의 경우는 참고 견디며 일을 성실히 할 것을 강조하는 것도 한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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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 경제의 오늘의 운세는 무척 긍정적이고 좋은 말이 많다. '든든한 응원군'을 만나거나 '소중한 추억'이 가슴에 새겨진다는 식이다. H일보는 좀 성의가 없어 보이고…. C일보 운세는 심혈관 계통 건강을 조심하라는 등 비교적 디테일한 건강 조언이 눈에 띈다. 좀 들어맞는다 싶은 건 D일보 운세풀이다. '쫀심'은 좀 상하지만 대세를 따라야 한다라는 생각이 드는 때가 오늘 분명 있었다.
토정선생을 연구해 소설까지 쓴 모 고전 전문가에게 물어보았다. 신문 운세 어떻게 봐야 합니까? 그분 왈 "운세라는 건 어떠한 방향의 열쇠말을 보고 상상력을 풀어낸 것이야. 그러니 상상력을 동원해 자신의 삶과 연결시켜서 보면 실제로 그렇게 될 수도 있는거지. 비관적인 운세풀이에는 너무 의미를 부여하지 말고 좋은 건 자기 에너지로 쓰거나 활용을 한다면 '운명의 청량제'가 될 수 있을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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