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양낙규 기자]김영삼 전 대통령과 군내 사조직인 '하나회'와의 악연은 길다. 김 전 대통령은 지난 2005년 7월 제주 롯데호텔에서 열린 21세기경영인클럽 세미나에서 "지난 1993년 취임 직후부터 군사문화 청산에 혼신의 힘을 바쳐 그때까지도 여전히 남아 있던 하나회를 숙청했다"며 자신의 업적중에 하나는 하나회 숙청이라고 강조해왔다.
김 전 대통령은 "쿠데타를 주도했던 하나회는 쿠데타 방법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쿠데타를 일으킬 수 있었다"며 "수도사령관 혼자서도 쿠데타를 할 수 있었다"고 술회하기도 했다.
집권 여당의 대표가 된 김 전 대통령은 당 내부에서 자신의 세력을 차분히 키워가면서 군사정권 세력이 중심이던 '민정계'를 압박했다. 그리고 평생의 숙적인 DJ와 경제 신화의 주인공 정주영 후보와 맞붙은 3파전에서 DJ를 193만표차로 꺾고 대통령이 된다.
취임후 김 전 대통령은 하나회를 본격적으로 숙청하기 시작한다. 1993년 3월 당시 김진영 육군 참모총장과 서완수 국군 기무사령관을 전격 교체한 것이 시발점이다. 1980년 신군부세력 등장이후 군요직을 독점하다시피 해온 육군 내 하나회 인맥의 대수술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군부 쿠데타'를 걱정하던 시대였다. 국방부를 비롯해 전 정부가 보름동안 밤샘 비상 대기를 하며 군부 동향을 살폈다. 임기 중반인 95년에는 노태우 전 대통령과 전두환 전 대통령을 모두 구속시키고 1980년 쿠데타에 가담했던 신군부 인사들을 검찰이 기소하지 않자, 5ㆍ18 특별법 제정을 지시해서 결국 전원을 법정에 세우기도 했다.
하나회는 육사 11기생의 친목모임인 '칠성회'로부터 시작됐다. 전두환, 노태우, 정호용 등 영남출신 육사 11기생 7명이 초급장교시절이던 1958년 결성한 칠성회는 5ㆍ16 이후 박정희 대통령의 특별한 배려로 군부내 요직을 장악하면서 후배들을 끌어들여 1962년에 하나회로 발전했다.
양낙규 기자 if@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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