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구조조정 한파]"구조조정에 연말인사까지"…뒤숭숭한 재계
#1. 삼성SDI(케미칼사업부)에서 근무하는 이모씨(41)는 최근 15개월새 직장을 두 번 옮길 처지에 놓였다. 지난해 7월 그룹내 합병으로 제일모직에서 삼성SDI로 옮긴 그는 최근 삼성-롯데간 '빅딜'로 1년 남짓 만에 또 다시 직장을 옮기게 됐다. 이씨는 "내뜻과 상관없이 하루 아침에 '삼성맨'에서 '롯데맨'이 된 것도 서러운데, 지방으로 가야할지도 모른다고 하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2. 대우조선해양에 30년 가까이 다닌 최모씨(53)는 최근 지인들로부터 '잘지내느냐'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신경이 곤두선다. 회사가 지난 2분기에만 3조원 이상의 적자를 내는 등 사상 최악의 경영난에 빠졌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안부를 묻는 이들이 부쩍 늘어난 것. 상대방은 인사치레로 안부를 묻지만, 최씨는 연말인사를 앞두고 구조조정이 한창 진행 중인 회사에서 '나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크다.
[아시아경제 고형광 기자] 연말 인사철을 앞두고 재계가 뒤숭숭한 분위기다. 무엇보다 올해는 기업별로 인수합병(M&A)과 대규모 구조조정의 회오리가 더해져 그 어느때보다 어수선하다. 실적악화에 따른 문책성 인사도 뒤따를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실적난에 허덕이는 계열사와 사업부서 임직원들은 좌불안석이다.
직원들의 동요가 가장 심한 곳은 삼성그룹이다. 연말 정기인사를 앞둔 시기에 사업구조 재편작업이 한창 진행중인 데다, 여기에 계열사별로 확인되지 않는 본사 이전설까지 나돌고 있어 삼성 내부 분위기는 어수선하기만 하다.
우선 롯데그룹으로 넘어가게 될 삼성SDI의 케미칼부분과 삼성정밀화학, 삼성 BP화학 등 화학 계열사들 임직원들은 한 순간에 조직과 신분이 바뀌는 상황에 처하면서 상실감과 불안감이 높다. 특히 삼성SDI 케미칼 사업부의 경우 15개월새 제일모직에서 삼성SDI로, 다시금 롯데로 두 번이나 옷을 갈아입게 돼 상실감이 크다. 이 회사의 한 직원은 "직원들 사이에서 고용 보장과 처우 수준에 대해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다"며 "롯데가 회사 임직원들의 고용을 보장하겠다고 밝혔지만, 향후 롯데케미칼과의 합병 등을 통해 직원들의 처우가 달라질 게 뻔하지 않겠냐"며 불안감을 드러냈다.
아직까진 '삼성맨'으로 남았지만 전자, 금융 등 주요 사업군에서 벗어난 계열사 임직원들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룹내 구조조정은 여전히 진행형이고, 이재용 부회장이 주력 분야와 맞지 않는 사업은 과감하게 쳐낼 것이란 시각이 팽배해 사업재편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계열사의 직원들은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이다. 삼성 계열사의 한 직원은 "지배구조 개편작업이 여전히 진행형이라 추가적인 사업재편과 인력 조정은 계속되지 않겠느냐"며 "어느상황에 어떻게 될지 모르니 불안한건 사실"이라고 전했다.
이런 상황에 연말 인사와 맞물려 성과가 저조한 사업부를 중심으로 대규모 감원이 단행될 것이란 얘기가 나오면서 불안감을 더욱 키우고 있다. 삼성물산은 지난달부터 통합 후 첫 희망퇴직을 실시하고 있고, 삼성디스플레이·전기 등은 '인력 재배치'라는 명분 아래 인력을 줄이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 임원 1200여명 중 최소 20~30% 가량이 줄어들 것으로 전해져 임원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삼성물산이 서초사옥에서 태평로 삼성본관으로 옮기고, 을지로에 있는 삼성화재가 서초사옥으로 이동하는 등 확인되지 않은 계열사별 사옥 이전설도 직원들의 불안 요인 중 하나다. 삼성물산의 한 직원은 "전세 만기를 앞두고 회사가 이전한다는 소문은 파다한데 (회사내에선)확정된게 없다고만 하니 답답하기만 하다"고 전했다.
삼성 외에도 재계 곳곳에서 M&A와 구조조정의 이슈가 불거지며 연말 분위기를 더욱 무겁게 만들고 있다. 수 년간 적자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국내 해운업계 1위 한진해운과 2위 현대상선이 정부 주도로 합병한다는 설이 나오자 양사 임직원들은 순식간에 동요했고, 앞서 지난달 말엔 SK그룹이 유선방송사업자 1위인 CJ헬로우비전을 인수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CJ헬로비전 직원들을 중심으로 SK로 고용승계된 뒤 논란의 알뜰폰사업 매각 과정이나 겹치는 유선방송 분야에서 인원 감축을 당하지나 않을까 우려하는 분위기가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사상 최악의 경영난을 겪고 있는 조선업계는 해양 플랜트 부실 여파에 따른 구조조정과 인적 쇄신이 연말까지 이어질 것으로 관측되면서 우울한 연말을 맞고 있다. 올 상반기 감원 칼바람이 이미 한차례 지나간 터라 더욱 그렇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고참급 부장과 임원들을 중심으로 퇴직을 유도하는 경우가 많다"며 "연말로 갈수록 적자폭이 커지면서 조선업계 분위기는 그 어느때보나 우울하다"고 전했다. 앞서 대우조선해양은 본사 임원 30%를 이미 줄였고, 현재 근속 20년이 넘은 부장급 직원 300~400명을 대상으로 희망퇴직과 권고사직을 진행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전체 사무직의 15%인 1500명을 명예퇴직시켰고, 삼성중공업도 상시 희망퇴직을 진행 중이다. 부실 덩어리인 대우조선해양을 처리하기 위해 모그룹에 떠넘기는 식의 구조조정 시나리오가 제기돼 발칵 뒤집히기도 했다.
글로벌 경기침체로 이익 규모가 급감하고 있는 철강업계도 연말 분위기가 어수선하기는 마찬가지다. 철강업계 맏형인 포스코는 지난 7월 경영쇄신 차원에서 2017년까지 50개에 달하는 국내 계열사를 절반으로, 180개 정도의 해외 계열사는 30% 가량 줄이기로 결정했고, 1차적으로 올해 말까지 20여개의 부실 계열사를 털어내기로 했다. 정리될 계열사의 발표 시점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오자 그동안 경영실적이 부진했던 법인들은 혹시나하는 마음에 초조하기만 하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인사와 실적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만큼 기업에 다니는 직원들에게 연말은 유난히 추운 시기"라며 "특히 올해는 구조조정이라는 이슈와 맞물려 있기 때문에 기업들 입장에선 예년보다 불확실성이 더욱 커진 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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