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계의 코미디언' 김원근…낙산공원 이화벽화마을서 전시

작고 배나온 비만형 남자조각상들
겉으론 강한 체 해도 속으론 다정
"평범한 우리 모두를 비추는 작품"
웃게 만드는 작품 만들기 7년째


김원근 작 '권투선수'

김원근 작 '권투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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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근 作, '봄' '프로포즈' '파티'

김원근 作, '봄' '프로포즈' '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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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서울 대학로 오른편 언덕길 이화벽화마을. 이곳에 있는 작은 갤러리에서 인물조각 전시가 열렸다. 작품은 모두가 '깍두기 머리'를 한 남성상(男性像)이다. 배가 나온 정도가 아니라 전형적인 전신비만 체형이다. 작은 키에 통통한 체구, 그리고 거의 무표정하거나 멍한 얼굴. 그런데…낯이 익다.

주머니에 손을 꽂은 남자나 글러브를 낀 권투선수 모두 모란 꽃무늬 셔츠나 권투 가운을 입었다. 한 남성은 누군가에게 프로포즈를 하려는지 선물할 꽃다발을 들고 있다. 우습고 귀엽고, 그렇다, 재미있다!


이 전시를 지난 20일 낙산공원에 있는 벽화마을 골목을 누비다가 '발견'했다. 평일인데도 동네는 젊은이들로 무척이나 붐볐다. 특히 중국인 관광객들이 많았는데, 이 작품을 접한 중국 중년 남성 무리들은 "나랑 똑 같다"며 신기한 듯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갤러리를 통해 이 작품을 김원근 조각가(44)가 제작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다음날 작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요즘 충남 보령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작업실은 원래 경기도 양평에 있지만, 보령 모산조형미술관이 개최하는 국제문화예술제에 참여하게 돼 그곳에서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그곳에서도 전시에서 봤던 그 아날로그적 감성 그윽한 인물상을 규모만 더 키워 대형조각으로 만드는 중이다. 김 작가의 대형 조각상은 스튜디오에만 있지 않다. 서울 세종문화회관, 경기도 양평역, 경기도 남양주 팔당호의 '봉주르 까페' 앞, 강릉의 하슬라아트월드 야외 공원 등 구석구석에서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세종문화회관 야외 공원에 자리한 김원근 작가의 작품

세종문화회관 야외 공원에 자리한 김원근 작가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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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이 캐릭터로 조각을 한지 벌써 7년이 됐다고 했다. "한국적이면서 유머스럽고 정감있는 인물을 만들고 싶었어요. 세상에 예쁘고 키 큰 사람들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특히 그 인물상을 통해 전형적인 한국 남성에 대해 이야기 하려 했죠." 시골 동네의 착한(?) 건달 같기도 하고, 겉으론 강한 체 하면서도 속은 정 많고 순진한 사람처럼 보이는 인물상. 작가는 "시골이든 도시든 어디에서든 능력은 안 되는 데 참견은 잘 하는 남자들의 출세에 대한 욕망이 담겨 있다. 꼭 그걸 비판하려는 건 아니다"라며 "넓게는 여자, 남자를 떠나 우리들의 모습을 그리려 했다. 열심히 일하고 각박한 현실을 잘 버텨나가는 그런 군중들의 모습"이라고 했다.


그는 조각을 전공하긴 했지만, 꽤 늦깎이로 미술시장에 입문한 편이다. 대학 졸업 후 바로 작가로 활동하고 싶었지만, 녹록치 않았다.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도 거의 이 같은 작품을 하면서 부터다. 그 전까지는 13년 동안 가구점 점원, 치킨집 사장으로 일했다. 작가는 "힘들더라도 꿈을 버리지 않았기에 뒤늦게나마 작가의 길을 걷게 됐다"며 "처음엔 쓸쓸하고 고통스러운 인간의 내면을 표현한 인물상을 만들다가, 이렇게 작업하면 보는 사람들이 더 힘들어질 것 같아 재밌고, 웃기게 하는 작품으로 전향했다. 그리고 '조각계의 코미디언'이 꿈이 됐다"고 했다. 그는 또 "조각이라고 하면 멋있고 웅장하고 세련되고 번쩍거린다는 느낌이 있을 텐데, 그와 다르게 내 조각의 키워드는 '웃음'"이라고 했다.


인물의 의상에 모란꽃을 많이 넣는 까닭을 물었다. 작가는 "모란은 예부터 부귀와 다산, 풍요를 의미했다. 권투 글러브를 낀 남자가 모란꽃무늬 바지를 입은 모습이 대조적이면서도 재밌다"며 "고향이 충북 보은인데 속리산 법주사에 자주 들렀다. 그곳에 우리나라 1세대 조각가 김복진 선생이 시멘트로 만든 대형 부처상이 있다. 절의 단청이나 목탑, 사천왕상과 탱화도 많이 봤다. 그런 것들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작가는 시멘트나 합성수지 속에 섬유기재를 혼합한 'FRP(Fiber Reinforced Plastics)'를 재료로 애용한다. 특히 작은 작품에는 FRP가 주재료다. 그는 "캐릭터 구상을 한 뒤 스케치하고, 이를 바탕으로 흙으로 우선 만든다. 돌이나 나무보다는 흙이 질감이나 표정 표현에 유리하다. 그리고 그것을 석고로 캐스팅한 뒤 FRP 액체를 부으면 딱딱하게 굳는다"고 했다.


이태호 교수와 김원근 작가(왼쪽부터)

이태호 교수와 김원근 작가(왼쪽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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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 벽화마을에 북적이는 관광객들

이화 벽화마을에 북적이는 관광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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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근 작가는 전시장인 '예술공간 낙산'의 주인 이태호 경희대 교수(64)와의 인연에 끌려 벽화골목에서 작은 조각 전시를 했다. 둘은 사제지간도 아니고, 연결고리가 없다. 미술평론가이기도 한 이 교수는 오랫동안 김 작가의 작품을 유심히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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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수는 지난 2006년 말 이화마을을 미술을 통해 새롭게 변신하게 만든 '낙산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총괄 기획자다. 그는 프로젝트가 끝난 뒤 이곳으로 돌아올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벽화나 설치작품들을 유지ㆍ보수해야 하는 까닭에 지난 2013년 마을 주민들의 연락을 다시 받았다. 그 일을 계기로 작업실 겸 업무 공간으로 쓸 공간을 구했는데, 점차 이 마을을 오가는 관광객의 발걸음이 잦아지자 생각이 달라졌다. 작가들에게 전시기회를 주는 대안공간으로 쓰기로 결심했다. 지난해 말부터 전시를 열기 시작해 이번이 다섯번째 전시였다.


이 교수는 "공공미술은 단순히 예쁘고 장식적으로 마을을 꾸민다는 것 말고도, 그 지역의 특성과 주민들의 자부심을 가져다 줄 수 있는 다양한 모습들이 미술과 함께 녹아들어간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했다. 또한 김원근 작가의 작품세계에 대해서는 "우리네 삶과 풍속을 느끼게 하는 김 작가의 인물 조각은 여러 사람의 관심을 자극하고 재미를 더한다. 단조로운 한국 조소예술계의 지평에 또 하나 새로움을 더한다"고 평가했다.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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