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필' 같은 정치인은 현실 정치에서 안 보일까?
[아시아경제 나주석 기자] 연애이야기 등을 쏙 뺀 채 바람직한 정치, 올바른 정치의 모습을 그리는데 집중했던 드라마 어셈블리가 17일 끝났다. 모두가 수긍하듯 드라마속 이야기는 현실과 괴리된 먼 이야기였다. 우리는 진상필(정재영 분) 의원 같은 정치인을 꿈꿀 수 있을까? 드라마와 현실 정치의 간극을 좁힐 수 있기를 희망하며 현실과 드라마의 차이를 살펴본다.
1) 총리 임명동의안 저지를 위한 무제한 토론은 허구
많은 사람들이 꼽은 어셈블리의 명장면 가운데 꼭 빠지지 않는 장면이 진상필의 필리버스터(의사진행방해) 장면이다. 진상필은 여느 정치인들처럼 위장전입, 다운계약서 등 불법을 저지르고도 '당시에는 그게 관행이었다'는 논리를 내세우는 총리 후보자의 임명동의안 처리를 막기 위해 25시간 동안 무제한토론을 벌였다. 우리 국회에서도 실제 이같은 모습을 볼 수 있을까?
답은 아니다.
우리 국회는 국회선진화법 불리는 국회법 개정을 통해 현행 법체계에서도 무제한토론은 가능하다. 드라마에서 소개되듯 국회의원 3분의 1이 의장에 요구하면 의장은 안건에 대해 무제한 토론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회선진화법 시행이 된 이후 무제한토론이 실제 성사된 적은 없다.
사실 국회선진화법 체제 이후 우리 국회 역시 단 한차례 무제한 토론 요청이 있었다. 사안도 비슷했다. 총리와 마찬가지로 국회 본회의 의결이 필요한 감사원장 임명동의안이었다. 하지만 무제한 토론은 성사되지 않았는데 이같은 무제한토론을 가로막은 사람은 강창희 전 국회의장(당시 무소속, 현재 새누리당)이었다. 강 의장은 "인사관련 안건은 토론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 국회의 오랜 관행"이었다며 야당의 무제한 토론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다.
당시 강 의장의 이같은 판단은 국회의장이 국회법 대신에 관행을 따랐다는 문제제기에서부터, 과거에도 인사 관련 사안에 대해 토론한 경험이 있었다는 주장(즉, 예외가 있으므로 인사관련 안건은 토론은 하지 않는 게 관행이라는 주장은 성립될 수 없다는 뜻)에 이르기까지 여러 형태의 반론이 제기됐다. 반대로 국회측에서는 반대로 일반법에 우선하는 특수법인 인사청문회법에 무제한토론 관련 규정이 없다는 논리로 반박하기도 했다. 결국 강 전 의장이 결정으로 국회는 첫번째로 제출된 무제한 토론은 결국 열리지 않았다.
만약 인사 문제에 있어서 무제한 토론이 가능했다면 감사원장 외에도 6월항쟁 당시 고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담당해 사건을 축소 은폐 의혹이 제기된 박상옥 대법관 임명동의안에서도 무제한토론이 벌어졌을 것이다. 이 자리에서는 역사와 정의, 검사와 법관의 신념 등을 둘러싸고 무제한토론이 펼쳐졌을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강 전 의장과 국회사무처의 법 해석으로 인해 이같은 순간을 지켜볼 수 없었다.
드라마에서 하루를 꼬박 쉼 없이 연설을 한 탓에 쓰러지기 직전이었던 진상필은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속기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속기사분들은 지금까지 제 말은 기록 안 하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이 말은 꼭 기록해주세요. 총리후보자가 혹시 총리로 당선되더라도 국민들은 그 사람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을 거라고. 우리 국민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반대했었다고. 우리 국민들은 그런 불법과 비리를 저지른 그런 사람을 단 하루도 단 일 분 일 초도 우리들의 지도자로 인정하지 않을 거라고. 앞으로도 그럴거라고." 드라마와 현실 정치는 달랐다.
2) 배달수법 통과는 불가능에 가깝다
진상필은 정치인생을 걸고 배달수법(패자를 위한 두 번째 기회 지원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드라마에서도 배달수법 처리는 쉽지 않았다. 법안이 정식 발의되기 위해서는 국회의원 10명의 서명이 필요한데 여기에서 부터, 상임위 의결을 거쳐 본회의로 가는 과정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본회의와 대통령 거부권 행사 이후 재의과정을 드라마틱하게 다뤘다. 하지만 현실은 어떨까?
드라마에서 나온 대로라면 배달수법은 극히 이례적으로 빨리 처리된 경우다. 하지만 드라마와 현실이 다른 것은 한 개인의 힘만으로는 각각의 상임위를 뚫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수많은 법이 국회에서 발의되고 소관상임위에 상정되지만 실제 법안 처리를 위한 심사조차 거치지 못하는 법들이 부지기수다. 상임위에서 해당 법안을 상정하면 이 법안을 실질적으로 논의하기 위해서는 상임위 내부에 설치된 법안심사소위원회에 회부되어 심의를 거쳐야 한다. 상정은 법적으로 규정됐기 때문에 시간만 지나면 이뤄지지만 심사부터는 해당 상임위 여야 간사와 당 지도부의 의지에 따라 진행여부가 결정된다.
법안심위를 위해서는 법안소위 회부가 이뤄져야 하는데 이 과정 등은 모두 여야 간사간의 의견 조율 속에 이뤄지기 때문이다. 즉 여당과 야당을 각각 대표하는 각각의 상임위 간사가 실질적으로 상임위 법안 처리를 좌지우지하는 셈이다. 이 때문에 진상필 아무리 노력을 하더라도 여야 지도부 또는 간사들이 동의하지 않을 경우에는 법안 심사가 이뤄질 수 없다. 그리고 국회 선진화법 때문에 이 같은 절차를 뚫기 위해서는 여당이나 야당 어느 한쪽의 반대에 직면하더라도 진행하기 어렵다. 특히 어셈블리에서처럼 여당이 151석으로 간신히 과반을 차지한 경우에는 상임위 의석에서도 여야 어느 한쪽이 과반을 차지하지 못해 법안 처리가 더더욱 어려워지게 된다.
이 때문에 여당 비상대책위원장이었던 박춘섭(박영규 분)이 배달수법을 반대한다면 본회의장으로 가기도 전에 해당 상임위에서 심사 자체를 틀어막을 수 있는 것이다. 한명의 국회의원은 이처럼 거대한 여당과 야당의 틈바구니 속에서는 작아질 수밖에 없다.
아울러 현실정치에서는 드라마에서처럼 상임위에서 의결할 때는 찬반으로 처리하는 일도 거의 없다. 대부분 합의의 형태로 처리되며 반대할 경우에는 반대의 뜻으로 퇴장을 하거나 소수의견으로 법안 반대 의사를 밝히는 식이다. 더욱이 찬반을 안거나 일어서서 하는 식은 더더욱 없다.
설령 어찌어찌 해당 상임위를 통과하더라도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통과는 장담하기 어렵다. 법사위는 다른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이 헌법 또는 다른 법률과 충돌하는지 여부에서부터 법률 상 오류 등을 점검하기 위해 일반 상임위에서 올라온 법들에 대해 자구 수정을 행사할 수 있다.
다만 법안심사 과정에서 논란의 소지가 있는 경우에는 다른 상임위의 법을 심사할 수 있는 곳인 법안심사2소위에 회부할 수 있다. 특히 법사위는 위원 중 단 한명의 의원이라도 반대를 하면 법안의 무덤이라 불리는 법안심사2소위로 회부토록 한다. 배달수법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법률 심사를 어떻게 통과하더라도 법사위에서 단 한명이라도 좀 더 논의해야 한다며 처리에 반대하면 법안심사2소위에 회부되는 것이다. 법안심사2소위에 회부된다면 배달수법은 다른 법들과 함께 언젠가 심의되기를 기다리며 묻혀버리게 된다. 그리고 끝내 법안심사2소위에서 논의가 되지 않으면 그 법은 자동 폐기절차를 거치게 된다.
상임위-법사위를 넘어선 다음에야, 본회의에서 법안 표결 처리가 가능해진다. 딴청계 의원 2명으로는 거대 여당과 야당, 상임위 간사와 법사위 등의 장애물을 통과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것이다.
3) 한국 정당정치 구조에서는 소신 있는 정치인의 탄생을 가로 막는다
진상필은 여당 소속 의원이면서도 당론 등에 있어서 자유로운 인물로 나온다. 법률안에 대해서도 당론과 달리 야당의 법안을 지지하는 등 소신 투표를 하고, 당론 의결 과정에서도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처럼 나온다. 진상필이 이같은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은 사실 151석의 의석에 숨어 있다. 진상필이 만약 탈당이라도 할라치면 여당의 과반 의석이 무너지는 식이다. 결국 진상필이 아무리 문제를 일으키더라도 과반 의석 붕괴라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당에서 내쫓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통상적으로 이렇게 여 151석, 야 또는 무소속 149석 식으로 선거가 결론나지는 않는다. 가령 새누리당은 심학봉 의원의 탈당으로 159석의 의석을 보유하고 있다. 어떠한 경우에도 당론에 반대하는 의원이 9명 이상이 나오지 않는 이상에야 과반의석이 필요한 본회의 법률안 처리 등에서 밀리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더욱이 우리나라처럼 당지도부가 공천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나라에서는 진상필 처럼 소신 정치를 하기도 어렵다. 당론과 다른 길을 걸어간다면 정치적 탄압 대상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현실 정치에서 당론과 다른 자기 목소리를 내는 정치인은 등장하기 어렵다.
드라마에서처럼 진상필은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건 결국 151석이라는 특수한 환경 덕분이다. 여야 어느 한쪽이 일방적인 승리를 거둘 경우 한 명의 정치인이 보일 수 있는 소신정치는 제한되고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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