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암살'의 모델 오희옥 지사

▲독립운동가 오희옥 여사(제공=서울시)

▲독립운동가 오희옥 여사(제공=서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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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원다라 기자] "내 눈 앞에서 후퇴하다 일제의 총을 맞고 쓰러지던 어린 학도병들의 얼굴을 평생 잊지 못하고 있다."


일제 치하 독립운동가들의 활약상을 다룬 영화 '암살'의 인기를 계기로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치열했던 삶이 새삼 세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89세 오희옥(사진) 지사가 그 주인공이다. 생존한 단 네명의 여성 독립운동가 중 한 명이다. 그는 직접 독립군들과 총을 들고 전투 현장에서 싸웠던 투사였다. '암살'에서 친일파 암살에 나선 '안옥윤'(전지현)의 모델인 셈이다.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만난 오 지사는 꼿꼿한 자세로 독립운동 시절의 이야기를 어제처럼 들려줬다. 만주에서 김구 선생과 독립운동을 했던 아버지 때문에 그가 살던 집 2층에는 늘 독립군들로 가득했다. 김구는 어린 그에게 서예를 가르치기도 했다. 어머니는 입버릇처럼 "나라가 살아야(독립해야) 우리도 산다"며 독립군을 위해 12가마씩 밥을 지었다.


오 지사는 독립운동 시절을 즐겁고 따뜻했던 때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어릴 때를 생각하면 그때 함께 떠들고 웃었던 언니, 오빠들이 떠오른다"며 "독립군 자금 마련을 위해 중국 극단과 무용이며, 공연을 함께 했을 때는 간간히 근심없이 웃었던 것도 같다"고 회고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후퇴 도중 일본군 총에 맞아 눈앞에서 쓰러진 학도병의 얼굴"이라고 한다. 어린 학도병들을 독립군이 있는 후방으로 후퇴라는 임무를 받고 손을 입에 대고 목청껏 소리치는 것이 그의 임무였다. 하지만 바로 앞까지 당도해 끝내 총에 맞아 쓰러졌다. 그 후로는 독립군 사이에 오가던 편지를 제 때 전달하지 못했을 때, 나 때문에 또 누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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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지사는 독립운동가와 후손들에 대한 푸대접을 개탄하기도 했다. 그는 "독립운동에 대한 보상은 없었고 그냥 각자 알아서 살았다"며 "근데 친일파는 그때 다 미국가서 공부하고 박사학위 받아 와 쌓아 놓은 재산으로 후손들까지 호의호식한다"고 한탄했다. 오 지사는 증손자 뻘인 기자들에게 "다시는 다른 나라가 침략하지 못하게끔 한반도 통일이 되어 강한 나라로 만들어 달라"고 당부했다.


원다라 기자 supermo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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