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신범수 기자] 관공서 냉방온도 기준은 28도다. 건물이 낡거나 해서 냉방이 잘 안 되는 곳은 26도에도 에어컨을 틀 수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정한 것이다. 그런데 정부 시책을 무시하고 따르지 않는 이상한 관공서도 있다.


청와대 직원들이 근무하는 위민관은 낡고 좁기로 유명하다. 26도에 에어컨을 틀어도 모자랄 건물의 시설팀은 산업부 기준보다 오히려 2도 높은 30도에 에어컨을 튼다. 에너지 절약 솔선수범 차원이라고 한다.

참다못한 직원 한 명이 내부 자유게시판에 "더워서 일을 못하겠다. 많은 직원들이 힘들어 한다"는 글을 '용감하게' 실명으로 올렸다. 말이 자유게시판이지 정부 출범 2년 반 동안 공지사항 수십 개가 전부인 곳이다. 한 사람이 '총대'를 메자 "온도만 높은 게 아니라 불쾌지수도 높다"고 거드는 글도 올라왔다. 하지만 "너그러이 이해하고 협조해달라"는 시설팀 직원의 일축에 게시판은 다시 조용해졌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담화를 발표한 6일 청와대 춘추관 기자실에 오전부터 에어컨이 가동됐다. 춘추관은 위민관과 달리 냉방을 잘 해주는 편이지만 그날 인심은 꽤 후했다. 몇 시간 뒤 박 대통령은 춘추관에서 담화문을 읽고 기자실을 방문했다. 기자들 얼굴에 더워하는 기색이 전혀 없으니 "날씨가 덥죠?"와 같은 인사말은 나오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취임 후 한 번도 위민관을 방문한 적이 없다고 하는데, 위민관도 기자실처럼 시원할 것이라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위민관의 '나홀로 30도' 기준은 솔선수범 차원이라기보다 사실 2년 전 박 대통령 말 한 마디 때문이다. 취임 첫 해 여름 전력난이 심해지자 박 대통령은 "요즘 에어컨을 전혀 틀지 않고 지낸다. 수석들도 가급적 에너지 절약에 앞장서 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즉각 모든 에어컨이 꺼졌다. 청와대 직원들과 기자들은 그해 여름을 잊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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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부문 개혁에 대한민국의 미래가 걸렸고 청와대 직원들은 다시 바빠졌다. 대통령의 대국민담화문을 분석하고 해석해 일을 나누고 회의를 소집하느라 정신이 없다. 폭염주의보 속에서 불쾌지수는 하늘을 찌를 것이다. 대통령 마음은 급한데 좋은 정책은 여름이 끝나야 나올런지 모르겠다.


"이건 좀 심한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가진 청와대 직원들은 많을 테지만 누가 선뜻 나서지 못해 그렇게 3년째 괴로운 여름이 지나가고 있다. 동료를 대신해 용기를 낸 직원을 칭찬해도 모자를 판에 "왜 쓸데없는 글을 올렸느냐"고 타박이나 안 했으면 좋겠다. 대놓고 상 주기도 어려울 테니 정부 시책에 따라 에어컨을 틀어 동료들의 박수나 받게 하면 충분하다.


신범수 기자 answ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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