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맨 황영기 "엘리엇 이번 공격은 위장된 축복"

황영기 금융투자협회 회장

황영기 금융투자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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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혜원 기자] 검투사는 고대 로마 시대 칼을 가지고 경기장에서 사람이나 맹수와 싸우던 사람이다. 금융투자 업계에서는 황영기 회장을 수식할 때 앞에 검투사를 붙이곤 한다. 낯 뜨거울 법한 수식어인데, 황 회장을 직접 만나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다. 지난 16일 금융투자협회장으로서 출입기자단과 처음으로 외부 행사를 가진 자리에서도 그랬다.


황 회장은 누구나 아는 '삼성맨'이다. 그런 그가 이 자리에서 한 첫 마디는 "삼성을 도와 헤지펀드 엘리엇의 공격을 막고,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통과돼야 한다"였다. 황 회장 스스로도 '피식' 웃음 지었다.

삼성물산은 황 회장의 첫 직장이다. 이후 삼성그룹 회장 비서실과 삼성전자 자금팀, 삼성생명 전략기획실에 이어 삼성투자신탁운용 사장, 삼성증권 사장을 거쳤으니 그가 대놓고 삼성 편을 드는 건 이상할 것도 없다. 그런데 황 회장은 여느 '삼성 바라기'와는 뭔가 달랐다.


양사가 합병에 성공하면 엘리엇의 이번 공격은 '위장된 축복(disguised blessing)'이 될 것이라는 그의 발언은 시사하는 바가 컸다. '불행해 보이지만 실은 행복한 것'. 이번 사태를 계기로 대기업이 학습효과를 얻고 주주 친화적으로 거듭난다면 우리나라 경제와 나아가 자본시장이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을 것이란 얘기를 그는 하고 싶었다.

이번 엘리엇과 삼성 싸움에서 한 쪽에만 무조건적 지지를 보내는 집단 지성을 자극이라도 하는 듯 했다. 그는 대기업이 외국인과 소액주주를 위한 주주 친화적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삼성이 초반에 소홀했던 부분을 꼬집은 셈이다. 황 회장은 "삼성물산 출신 임원과 식사를 했는데 그 사람조차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고 전했다.


이날 황 회장의 입에서는 영향력 깨나 있는 인물이 오르내렸다. 새정치민주연합 전 원내대표를 지낸 박영선 의원, 국민연금 홍완선 기금운용본부장, 한국투자공사 안홍철 사장, 윤용암 삼성증권 사장, 주진형 한화투자증권 사장 등 이번 사태와 직간접으로 엮인 고위층과 그는 언제라도 연락이 닿는 사이였다. 누구와는 이런 이야기를 했고 또 어떤 이와는 이런 고민을 나눴다는 걸 스스럼없이 전했다. '인맥왕' 황 회장의 자신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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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가 '언제적 황영기냐'는 수군거림을 뒤로 하고 금융투자협회장에 앉자, 업계에서는 반신반의했다. 정부는 세수 확보에 혈안인데 줄곧 세제 혜택을 주장하는 그가 아슬해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취임 6개월이 채 안 돼 황 회장은 제한적이나마 해외 펀드 비과세를 따냈다.


'검투사 효과'인지, 금융투자협회는 요새 약간 변했다. 협회 임직원은 창립 이래 가장 '똑똑한' 회장을 만나 힘들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궁금하면 회장이 직접 실무진에 전화를 걸고 보고를 할 땐 날카로운 질문에 늘 긴장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협회엔 묘한 건강한 긴장감이 흐른다.


김혜원 기자 kimhy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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