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된 '구라', 황석영처럼 되고 싶다면

[아시아경제]

우리 역사는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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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황석영의 ‘구라’는 철저히 준비된 것이라고 한다. “모임에 참석하기 전에 알맞은 ‘소재’를 미리 정해 연습하고 간다”는 그의 발언을 언젠가 읽은 기억이 뚜렷하다. 원래의 입담에 연습까지 마친 그를 누가 이길 수 있겠는가. 오해하지 말 것은 여기서의 구라란 믿거나 말거나의 ‘썰’을 푸는 정도가 아니라 실제 사실과 교양으로 좌중을 압도하는 능력이다. 이제 그를 모방하고 싶은데 마땅한 ‘소재’를 찾을 방법이 없어 고민이던 사람에게 ‘우리 역사는 깊다’를 권한다.
저자가 우리 역사는 ‘깊다’고 한 이유는 5천년 유구해서가 아니다. 과학, 경제, 경영 등 실용학문만 지나치게 강조해 대학에서마저 인문학을 몰아내려는 신자유주의 인간들의 ‘얕음’을 경계하려는 의도다. 저자에게 역사란 ‘시간, 공간, 인간의 유기적이고 총체적인 변화. 현재와 과거의 관계를 앎으로써 현재의 선택이 미래를 결정한다는 사실을 조금 무겁게 받아들이도록 내면을 성찰할 수 있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19세기 후반 개화기부터 해방 직후까지, 1월부터 12월 중에 일어났던 사건들을 탐사했다. 그 중 흥미로우면서 역사적 의미가 있는 일들을 골라 날자 별로 배치했다. 역사 교과서가 겉만 핥거나 미처 다루지 못한 사건들의 전후좌우 배경과 전개, 현재의 비슷한 사건들에서 우리가 되새겨야 할 역사적 교훈까지 잡아냈다. 교훈이 설득력이 있기 위해선 ‘사실’에 근거해야 한다는 저자의 의지가 기록이 풍부한, 가까운 역사를 탐사한 이유로 보인다.
조선 말 병자년에 큰 가뭄이 들었다. ‘병자년 건방죽이다’는 말은 이때 방죽이 마른 것에 빗대 건방진 사람을 비꼬는 속담이다. 1925년 을축년에는 서울 일원에 홍수가 터져 특히 망원리의 피해가 컸다. 망원리 주민 중 절반 가까운 45가구가 인근 합정리로 옮겨야 했다. 그런데 평소 망원리 사람들은 합정리 사람들을 상놈이라 깔봤었다. 견원지간이던 양쪽은 1927년 구장(동장) 임명을 놓고 맞붙었다. 망원리 이주민들이 상놈을 구장으로 받들 수 없다며 합정리 출신 구장을 반대하는 집단민원을 제기했던 것이다. 망원리 주민들은 ‘물에 빠진 사람 건져줬더니 보따리 내 놓으란 격’이라 맞섰다. 차별에서 비롯되는 이런 ‘억지’는 지금의 서울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서문에 ’배 고프다는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는 결국 역사학도의 길을 선택했다. 그런 사람을 남편으로 맞아 20년 넘게 한결같이 곁을 지켜준 아내가 없었다면, 내 선택은 아마도 후회로 귀결되었을 것이다. 아직 다 살지는 못했지만, 후회 없는 삶을 살게 해 준 아내 인애에게 감사한다’고 썼을 만큼 행복한(?) 역사학자의 책이라면 이것저것 다 접고 그냥 읽어도 손해 볼 것 없겠다는 느낌이 팍 오지 않을까?
저자의 실명이 ‘전우용’이라서 그런지 ‘전우치 전’이 자꾸 연상되는데 그도 무리가 아니게 재미있다. ‘하릭교 다리 북편 개천에서 동으로 가다가 좌편 첫 골 들어 좌편 둘째 집 이판윤 댁’이라 우편주소를 쓰던 시절의 이야기들이라서 그렇다. 이런 류의 역사 편력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그들이 살았던 오늘’(김형민 지음. 웅진지식하우스)도 함께 읽을 만하다. (우리 역사는 깊다 1. 2 / 전우용 지음/ 푸른역사 펴냄).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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