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김홍도·김정희 '사군자'의 재발견
조선 중기이후 작품, DDP서 8월까지 전시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사군자'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과거 선비들이 닮고자 했던 인물상인 '군자'는 매난국죽 사군자로 그림에서 자주 묘사돼 왔다. 이번 전시에는 조선 최고 묵죽화가로 이름난 왕실출신 문인화가의 탄은 이정(1554~1626년), 조선후기 풍속화가로 잘 알려진 김홍도(1745~1806년), 추사 김정희(1786~1856년) 등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한기가 가시지 않은 이른 봄에 추위를 무릅쓰고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매화, 깊은 산중에서도 청초한 자태와 은은한 향기로 주위를 맑게 하는 난초, 모든 꽃들이 시들어 가는 늦가을에 모진 서리를 이겨내고 꽃을 피우는 국화, 칼날 같은 눈보라가 몰아치는 한겨울에도 그 푸름을 잃지 않는 대나무. 군자에 비유되며 시문과 그림으로 사랑받던 이 네 가지 식물들은 17세기 이후에는 ‘사군자(四君子)’라는 이름으로 함께 불리기 시작했다. 그 명확한 이유와 유래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사계절을 염두에 두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데 봄-난초, 여름-대나무, 가을-국화, 겨울-매화로 설정한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봄-매화, 여름-난초. 가을-국화, 겨울-대나무로 계절과의 조합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 우리의 계절 감각에 따라 변화를 준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군자 전시에는 조선중기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사군자 그림의 명가들이 남긴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중기부터 사군자가 그려지기 시작하면서 조선시대에 크게 발달했는데, 특히 조선 중기 후반에는 묵죽과 묵매를 중심으로 조선의 고유색이 드러난다. 전시장에는 탄은 이정의 '삼청첩' 이외에도 추사 김정희, 현재 심사정, 단원 김홍도 등 31명 작가가 그린 100여점의 작품이 교체로 비치된다.
작품 가운데 탄은 이정의 '삼청첩(三淸帖)'은 최초로 일반에 공개되는 작품이다. 조선중기 문예의 정수로 불릴만한 화첩으로, 대나무와 매화, 난을 그리고 자작시와 함께 엮은 시화첩이다. 검은 비단에 금니(金泥)로 그린 탄은의 그림 뿐 아니라, 간이 최립, 석봉 한호, 오산 차천로 등 당대를 대표하는 문인들의 시문과 글씨가 함께 실려 있다. 세종대왕의 고손인 탄은 이정은 임진왜란 때 심각한 부상을 입어 다시는 붓을 들지 못할 뻔 했지만, 강인한 의지로 이겨내고 만들어낸 필생의 역작이기도 하다.
김홍도의 '백매'란 작품에는 선비의 절조보다는 시인의 풍류가 더 느껴진다. 낭만적이며 서정적인 정취가 묻어나 있다. 출렁이는 필선, 수줍게 맺힌 흰색 꽃봉오리가 소담하게 그려져 있다. 김정희의 '국향군자'는 추사가 난을 치는 비결을 체득한 그려서 엮은 '난맹첩' 가운데 하나다. 추사 난법의 요체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난초 잎새들 속에서 두 잎이 대각으로 교차하며 거침없이 좌우로 뻗는 화면이 압도적이다.
이번 전시는 간송문화재단이 주관했다. 간송 전형필 선생(1906~1962년)의 소장품들이 비치돼 있다. 간송은 일제 치하의 시기 '문화로 나라를 지킨다'는 신념을 실천하기 위해 사재를 털어 삼국시대 불상, 국보급 고려청자, 조선시대 서화, 훈민정음 해례본 등을 지켜낸 인물이다. 재단의 모태가 되는 간송미술관의 전신은 국내 최초 사립박물관인 서울 성북동 보화각이다. 전시는 오는 8월 30일까지. DDP 배움터 2층 디자인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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