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왜 혁신인가]팬택의 몰락과 노키아의 부활…혁신의 興亡史
[아시아경제 이경호 기자]최근 파산한 한국 휴대전화 제조업체 팬택은 혁신의 대명사로 통했다. 지금까지 투입한 연구개발비용만 3조원이 넘고 직원 10명 중 7명이 엔지니어다. 보유한 특허만 5000여개에 이르고 1만5000개의 특허가 출원을 앞두고 있다. 이런 팬택이 몰락하게 된 이유는 하나로 모인다. 높은 기술력에 비해 브랜드 인지도가 낮아 소비자의 선택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위한 자기혁신이 필요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소비자에 멀어지는 것은 곧 판매감소와 매출하락으로 이어지게 된다. 유통성 위기에 몰리자 팬택의 자랑이던 연구개발투자가 중단되고 기술경쟁에서도 뒤처지는 악순환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제지업체에서 시작해 한때 세계 휴대폰시장을 호령하던 노키아는 팬택과 마주한 상황은 같았지만 명운은 달랐다. 구형 피처폰의 강자였던 노키아는 스마트폰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 삼성과 애플 등에 뒤처지며 2013년 휴대전화사업을 접었다. 여기서 노키아는 휴대폰을 접고 통신장비로 눈을 돌렸다. 지난 4월에는 프랑스 알카텔과 합병함으로써 세계 통신장비업계 2위로 올라섰다.
휴대전화 사업에서 노키아의 몰락을 보며 미소를 짓던 경쟁업체들은 완전히 새롭게 탈바꿈한 노키아의 혁신을 배우고 있다. 노키아는 핵심사업부인 휴대전화사업을 과감히 버리는 등 강력한 구조조정과 내부혁신을 통해 공룡의 부활을 이끌었다. 세계적인 혁신기업 '코닝'을 연구한 게리 피사노 하버드비즈니스스쿨 교수가 고안한 상황별 혁신로드맵에 따르면 팬택은 피처폰→스마트폰의 흐름 속에서 기술경쟁력은 갖추었지만 비즈니스 경쟁력을 강화시키는 데는 실패했다. 반면 노키아는 휴대폰사업 몰락이라는 파괴적 상황에서 기술경쟁력을 강화하는 대신에 반도체장비라는 새로운 비즈니스모델을 만들면서 부활에 성공했다.
피사노 교수는 기업이 이런 일상적ㆍ급진적ㆍ파괴적ㆍ구조적 상황에 따라 비즈니스모델과 기술경쟁력에 변화를 줘야한다고 제언한다. 카셰어링이라는 파괴적 상황을 마주한 택시업계의 경우는 기존 비즈니스모델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고 새로운 모델(카카오택시 등)을 만들어야 한다. 스포츠세단의 표준을 만든 BMW 3시리즈의 경우는 자동차시장의 일상적 상황에서 기존 비즈니스모델을 업그레이드해 성공한 경우다. 2차원 애니메이션이 주도하던 시장을 3차원으로 끌어올린 픽사, 인덱스펀드를 통해 세계적인 자산운용사로 성장한 뱅가드그룹도 비슷한 경우다.
전통산업일수록 혁신은 생존의 도구다. 덴마크 완구업체 레고는 1990년대 저출산과 디지털게임의 부상으로 위기에 빠졌다가 맥킨지 출신의 전문경영인 영입 후 핵심에 집중하는 구조조정과 스마트폰 모바일 게임과 디지털 교육용시장 진출 등을 통해 1년 만에 흑자전환했다. 2005년 이후 2014년까지 10년간 매출이 5배가 늘면서 세계 1위 장난감 회사로 등극했다. 레고 기사회생의 비법은 구조조정을 통해 핵심에 집중하며 '레고다움(Back to the Brick)'을 회복하고 디지털 트렌드에 부합한 변신 노력(클라우드 소싱, 스마트폰 모바일게임 출시, 디지털 교육용 수요 공략, 3D프린팅 기회 모색) 등이 종합적으로 이뤄낸 결과다.
미국과 유럽으로 쪼개진 포드의 최고경영자(CEO)를 맡은 앨런 멀럴리(현 구글 이사)는 신차개발을 일원화하고 브랜드를 과감히 정리하는 원포드(One Ford) 전략을 통해 포드의 경영철학인 포디즘(Fordism)을 부활시켰다. 글로벌 혁신커뮤니티인 이노베이션 엑셀런스(IE)가 제시하고 있는 2015년의 혁신키워드는 기업에 "왜 미래를 위한 혁신이 지금 필요한가"를 일깨워준다. 취업전선에 나서지 않은 젊은이들이 실리콘밸리로 달려가 창업하고, 다니던 기업을 그만두고 창업을 하는 것은 기존 기업들에는 위기이자 기회다.
구글과 페이스북이 만들어가는 증강현실은 소비자의 삶은 물론이고 기업광고, 사내소통과 업무 등을 완전히 새롭게 정의하고 있다. 핸드메이드와 소비자가 직접 물품을 만드는 DIY(Do It Yourself)의 부상으로 기업은 소비자가 원하는 도구와 기술을 제공해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됐다. 직구족(직접구매)의 확산과 아마존이 시작하는 드론 택배 및 배달은 기존의 판매와 유통전략에 변화를 요구한다.
글로벌 기업들도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기술혁신을 가장 큰 위협으로 꼽고 있다. 포천이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현재 당면한 가장 큰 위협(복수응답 가능)'을 조사한 결과, 500대 기업의 72%가 '급속히 진행되는 기술혁신'을 가장 큰 위협으로 꼽았다. 66%가 '사이버보안'을, 61%가 '늘어나는 규제'를, 34%가 '숙련 노동자의 부족'을 위협으로 꼽았다. 이 밖에 ▲다양성 관리(25%) ▲스타트업(벤처기업)과의 경쟁(20%) ▲주주운동(20%) ▲중국ㆍ개발도상국과의 경쟁(4%) 등이 위협 요인으로 나타났다. 특히 응답업체의 94%는 지난 5년간보다 앞으로 5년간 기업이 겪을 변화가 더 많을 것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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