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기의 책보기] 조선의 매화시를 읽다
매화는 장미과 식물이다. 꽃을 강조하면 매화, 과일을 강조하면 매실나무이다. 매실은 해독작용이 뛰어나 식용과 약재로 다양하게 쓰인다. 꽃의 색깔에 따라 백매/홍매/청매, 이른 봄에 꽃이 피어서 조매, 추운 날씨에 핀다고 동매로 불리기도 한다. 봄 들어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나무라 해서 화괴(꽃의 우두머리)로도 불린다. 그 많은 별칭 중에 눈 속에서 고고하게 피어 은은한 향을 풍기는 ‘설중매’를 이길 이름은 없다. 식물 지식에 약한 어떤 사람들은 설중매를 겨울을 견디고 꽃을 피우는 ‘인동초’로 오해하기도 하는데 인동초는 아주 별개의 식물이다.
옛 선조들은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를 일러 사군자라 불렀다. 조선의 군자는 선비였다. 선비는 염치와 체면을 알아 ‘어두운 방에 홀로 있어도 삿된 생각을 하지 않는’ 정신을 품었다. 개인의 부귀영달보다 세상을 먼저 걱정하는 지도자 정신을 가졌다. 비록 가난하거나 벼슬을 못하더라도 체면을 구기지 않는 절의와 기개가 있었다. 그들에게는 추운 겨울을 함께 이겨내는 세 친구로 매화, 소나무, 대나무가 있었으니 곧 세한삼우였다. 매화가 이렇다.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꾸준히 받는 안소영의 소설 ‘책만 보는 바보’의 주인공은 조선의 선비 이덕무가 주인공이다. 양반의 서자로 태어나 차별 받던 그는 같은 처지의 박제가, 유득공 등 실학자들과 친하게 지냈다. 박제가는 수시로 울분을 터뜨렸고, 유득공은 순응했으나, 이덕무는 우울했다. 낙심한 그는 벌꿀의 집인 밀랍으로 매화 꽃을 만드는 일에 흠뻑 빠져들었다. 이른바 윤회매의 시작이었다. 꽃이 꿀을 만들고, 그 꿀이 밀랍이 되고, 밀랍이 다시 꽃이 되는 윤회. 이덕무는 윤회매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우리들의 삶도 저리 피어날 수 있다면!’이라 탄식했다. 그는 ‘청장관전서’의 윤회매십전에 매화에 얽힌 자세한 사연과 함께 박제가, 유득공의 매화시까지 기록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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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익철 교수의 ‘조선의 매화시를 읽다’에는 매화만 가지고 284쪽의 책을 쓸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로 이런 것들이 샅샅이 들어있다. 그것도 어느 한 페이지 대충대충 엮은 데가 없이 탄탄하게 편집됐다. 매화를 중심에 둔 조선 문인들의 ‘시, 서, 화’를 모두 담았다. 유난히 매화를 좋아해 호가 매월당이었던 김시습의 시, 추사 김정희의 글씨, 단원 김홍도의 그림, 삼성미술관 리움의 매화새분재무늬항아리와 국립진주박물관의 백자청화매죽문각병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책이라 생각하면 가장 적당한 설명이 되겠다. 당연히 시와 그림 등에 얽힌 문인들의 궤적과 시대배경 등의 역사공부도 함께 한다. 매화를 사랑했던 조선 문인들의 정신, 분매/윤회매/월사매/빙등조매 등 그들이 매화를 향유했던 방식들, 시를 통해 살펴본 그들의 내면 등 3 개의 큰 주제로 편집됐다.
퇴계 이황은 역대 문인들 중 가장 많은 107 수의 매화시를 남겼는데 절명하는 순간 ‘매화분에 물 주라’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그럼에도 ‘매화시’라 하면 이 책에는 없지만 ‘지금 눈 내리고 매화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던 일제 저항시인 이육사를 빼고 갈 수 없다. (조선의 매화시를 읽다 / 신익철 / 글항아리 /1만 5천 원).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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