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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논리다] ‘뜻 모르겠는 이야기’ 하지 마세요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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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우진 디지털뉴스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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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백우진 기자]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뜻 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 우리는 헤어졌지요.’

대중가요 ‘잊혀진 계절’ 가사의 시작 부분이다. 노래 제목은 깔끔하지 않다. ‘잊다’의 피동사는 ‘잊히다’다. 여기에 피동의 뜻을 나타내는 ‘~어지다’를 더 붙일 필요가 없다.
제목은 아쉬워도 이 가사의 한 문구는 요즘 사람들의 말투와 비교하면 바르게 쓰였다. ‘뜻 모를 이야기’다. 요즘에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뜻 모르겠는 이야기’라고들 한다.

‘겠’의 원말은 ‘것이’다. 여기서 ‘것’은 ‘가능함’을 나타낸다. ‘겠’ 대신 ‘것이’를 넣으면 ‘뜻 모르겠는 이야기’는 ‘뜻 모를 것인 이야기’가 된다. 어색하다. ‘것인’이 군더더기이고, 따라서 이를 지운 ‘뜻 모를 이야기’가 자연스러움이 확인된다.

‘뜻 모르겠는 이야기’의 반대는 ‘뜻을 알겠는 이야기’다. ‘뜻을 알겠는 이야기’는 이해가 가능하다는 의미다. 그래서 ‘뜻을 알 수 있는 이야기’로 어법에 맞게 변환 가능하다.
그럼 ‘뜻 모르겠는 이야기’도 마찬가지로 풀어서 쓸 수 있을까? ‘뜻 모를 수 있는 이야기’라고 하면 될까? 이 표현은 논리에 맞지 않다.

왜 그런가? 아는 데에는 능력이 필요하지만 모르는 데엔 능력이 필요 없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를 예로 들면, 이 문장은 ‘무슨 말인지 모를 것이다’는 말이다. 모르면 모르는 것이지 ‘가능함’을 덧붙일 필요가 없다. 그러나 ‘모르겠다’는 표현은 이미 자리잡았다. 이미 굳어진 표현이니 바로잡히기는 어렵겠다.

그래서 ‘뜻을 알 수 있는 이야기’는 말이 되지만 ‘뜻을 모를 수 있는 이야기’는 어색하다. 이런 측면에서도 ‘뜻 모르겠는 이야기’는 어긋난 표현이다.

다음 예문은 아래와 같이 쓰는 게 더 났다.

이용 '잊혀질 계절' 표지

이용 '잊혀질 계절'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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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많은 생각을 하다 보면 결국 뭐가 맞는지 잘 모르겠는 순간이 오잖아요.
▲너무 많은 생각을 하다 보면 결국 뭐가 맞는지 잘 모를 순간이 오잖아요.

한편 다음 두 문장의 ‘모르겠는’은 ‘모르겠다는’으로 바꾸면 어색함이 줄어든다.

△왜 무대에 나왔는지 모르겠는 표정으로 서 있었다.

△미래를 위해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는 청춘이라면, 불리한 조건을 이겨내고 싶은 젊은이라면, 이 책에서 가장 실전적인 조언과 가장 현실적인 희망을 얻게 될 것이다.

몇 가지 예를 더 생각해보자.

△극장이 많지 않아 안타까운 상황이다. 한 관이라도 하루 몇 회 정도 정해진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는 마음이다.

그냥 ‘좋겠다’고 끝내면 될 문장이다. 굳이 마음으로 마무리하려면 ‘한 관이라도 하루 몇 회 정도 정해진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다는 게 내 마음이다’라고 늘여 빼야 한다.

△여기 내 앞에 놓여있는 이 시간 또한 십년이나 이십년 뒤 짐작도 못 하겠는 그 시간들로 가는 길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나는 이제야 내 것으로 받아들인다.

‘짐작도 못 하겠는 그 시간들’은 ‘짐작도 못할 그 시간들’로 충분하다.

아시겠는지 모르시겠는지, 알쏭달쏭하신지…. 노래 가사만 기억하면 된다. ‘뜻 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이지 ‘뜻 모르겠는 이야기만 남긴 채’는 아니다.



백우진 기자 cobalt10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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